지리산 묘향암
3월 우중충한 날씨임에도 길을 나섰습니다. 물병 하나와 바나나 몇 개를 짊어지고 자박자박 산길로 걸어 들어와 스님과 차 한잔을 나누는데 봄비가 내립니다. 양철 지붕을 적시는 빗소리에 안온해집니다. 마당에서는 삐죽삐죽 생명들이 돋아 산바람을 마시고 있습니다. 이 비 그치면 숲은 연초록 잎을 틔우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오늘 밤부터 뒤척임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보채듯 짙어지는 산의 모습에 시끄러움이 없는 고요함으로 새들도 찾아듭니다. 야트막한 개울가에도 봄물이 채워질 것이고 물 따라 헤집고 올라오는 고기들의 발랄한 몸동작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늘처럼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자꾸만 대문 밖을 바라보게 됩니다. 올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누군가가 꼭 올 것만 같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날은 대문밖에 등불 하나 걸어 두고 심한 몸살을 앓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