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정해진 일정을 놓치지 않고 해내는 것만도 버거운 일상이었다. 사전예약된 **읍 방문상담, @@대 상담 등을 비롯한 상담스케줄뿐만 아니라 외부 강의에, 거기다 서류 작업에 야간에는 친정어무니 밀착 돌봄까지...
2월 말 퇴사 후 책방 겸 심리상담소를 준비하면서도 강의며 상담 일을 꾸준히 했으니 쉴 겨를이 없었고 7월 오픈 이후에는 책방을 여는 시간과 별도로 강의며 상담 일을 계속해 나가느라 정신없이 달려왔다.
좀 쉬엄쉬엄 살자고 퇴사하고 홀로서기한 것인데 외려 더 바쁜 나날을 지낼 수밖에 없는, 발로 뛰지 않으면 수입이 제로여서 어렵게 꾸민 책방 공간을 유지할 수도 없는 내 처치가 안쓰러워 혼자 눈물 흘릴 때도 종종 있었다.
큰애가 가을 학기를 휴학하고 방문학생 신분으로 독일로 갈 때만 해도 정말로 내가, 남편과 둘째를 데리고 비행기에 탑승할 줄은 몰랐다.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큰애가 영상통화를 해올 때마다 본인이 다 알아볼 테니 걱정 말고 경비만 준비해서 지불만 하고 오라고 성화였다. 거기다 내년에 고3이 되는 둘째의 간절한 바람까지 더해졌다. 남편과 나는 '그래, 우리가 언제 독일, 프랑스에 가보겠어'의 마음으로 11월에 비행기좌석을 예매했다. 큰애가 찾아서 보내준 링크로 들어가서 숙소를 예약했고, 어제 저녁에야 부랴부랴 짐을 쌌다. 미리 하나씩 준비해서 싸 둔 게 아니니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잔소리 대마왕의 입은 쉴 틈이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예민한 나로서는 그의 잔소리가 달갑지 않았을 것이고 뭐라 말대꾸하다 언쟁으로 이어졌겠지만, 여행을 앞둔 설렘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친절하게 말해달라는 요청만 했다. 큰애도 톡으로 여행준비물 목록을 보내주고 확인까지 하는 정성을 보여줬다. 덕분에 짐 싸는 것도 무사히 마무리했다
제주를 떠나야 가능한 휴식.
큰애를 볼 겸 가족여행을 떠나는 1일 차.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신김치볶음과 따뜻하게 데운 두부, 알맞게 남아있던 세공기의 밥과 소고기뭇국을 데워서 든든하게 먹고, 베란다 식물에 물을 뿌려주고 문단속을 했다. 김포행 비행기 탑승시간은 넉넉히 남았지만 여행용 가방을 부쳐야 하니 서둘러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가족여행으로 해외를 가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큰애 중학교 입학 전 2월에 캄보디아를 짧게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그때는 더운 나라이다 보니 아이들이 걷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더위에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가는 독일은 반대로 추운 겨울이니, 돌아다니는게 어떨지 모르겠다. 영어도 하지 못하는 나와 남편은 아마 구경은 뒷전이고 인파에 길 잃을까 애들 뒤꽁무니만 눈치껏 졸졸 따라다니지 않을까. 그런들 어쩌랴, 아이들이 엄마아빠랑 같이 다니자고 내민 손이 고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