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퇴사 준비기2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올해 저는 한국 나이로 쉰 살입니다. 앞자리수가 바뀌었죠. 우선 남(의)편의 반대에 부딪혔어요. 노후를 대비해야 할 타이밍에 직장을 그만두면 막막하다고요. 하지만 “더 늦으면 홀로서기 할 타이밍을 놓쳐서 못한다”라고 몇 달동안 끈질기게 설득했고, 마침내 허락을 받았어요. 물론 노후에 자기에게 기대지 말라는 조건부 허락이긴 했지만 건강만 따라준다면 제주에서는 밭에 가서 작업(일당벌이) 다니는 것만 해도 제 한 입은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한창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둘째 아이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죠. 아직 미성년자이고 학생이니 엄마가 용돈을 줘야하고 대학도 보내줘야 하는데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면 가정형편이 나빠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죠. 이에 대해서도 걱정하지말라 큰소리쳤습니다. 직장을 그만두어도 엄마가 프리랜서로 일을 할테니 여유롭지는 않겠지만 용돈은 챙겨줄 수 있을 것이라고요.
대학생인 큰아이는 오히려 제 입장을 이해하더군요. “엄마, 이젠 좀 쉬어! 그만하면 충분히 했다고 생각해!” 이 말을 듣는데, 눈물이 핑 돌더군요. 그동안 마음으로는 잘 챙겨주고 싶었으나 맞벌이 생활자로 살면서 일한다는 핑계로 두 아이와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더 많았거든요. 어느새 엄마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아둥바둥 맞벌이 생활자로 살던 중 서른아홉이라는 이른 나이에 저에게는 유방암이라는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큰아이가 열살, 둘째가 일곱살이었습니다. 그 때 일을 쉬며 제 건강을 돌보고, 두 아이를 케어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당시에 저는 맡은 일 때문에 수술일과 주말 포함해서 열흘만 쉬었습니다. 물론 직장에서 강요한 것은 아닙니다. 책임감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었죠. 지금의 저라면 병가휴직계를 내던가 사직서를 내던가 했겠죠. 큰언니의 병마소식은 오히려 저에게 힘을 줬습니다.
가족들을 설득하고 나니 다음으로 직장에는 어떻게 말할까도 고민이 됐습니다. 직장 대표에게는 어떻게 보고할까, 직원들에게는 또 어떻게 말할까... 그냥 부딪혀보기로 했습니다. 직장 대표를 찾아가 퇴사의사를 전달했더니 며칠 동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며칠 후 재면담에서 확고하게 의사를 전달했더니 더는 붙잡지 않겠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퇴사 시기도 2개월 늦춰 2월말로 협의가 됐습니다.
(조용한 퇴사 준비기는 계속됩니다)
#홀로서기 할 타이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