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눈치가 없어.”
“엄마는 나름 한 눈치 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어때서?”
“상대방이 들어서 싫어할 말은 하지 말아야 눈치가 있는 거지.”
기말고사가 2주 안으로 다가왔는데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 모습에 한마디 했더니 돌아온 반응들이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집-콕 하면서 온라인 수업을 듣느라 답답도 하고 친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자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알고 있다. 몰래 하다가 엄마랑 눈이 마주치면 미안한 기색이라도 보였는데 언젠가부터 너무 당당했다. 기말고사가 코앞인데 적당히 하라고 한마디 한 것이, 졸지에 엄마는 눈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다.
“엄마, 친구들 태워줄 때도 눈치껏 말하지 않고 운전만 하면 안 돼? 누가 상담사라고 하지 않을까 봐 계속 눈치 없이 이것저것 친구들에게 질문하잖아.”
“그건 궁금해서지. 친구들은 대답도 잘하고 불편해 보이지 않던데, 왜? 너한테 불편하다고 했어?”
“아니! 친구들은 집 앞까지 태워다 주는 데 불편한 티 안 내지. 그런데 입장을 바꿔서 나라면 불편할 것 같아서.”
“어때서?”
“내가 친구 엄마네 차를 탔어. 그런데 가는 길에 계속 이거니 저거니 질문하면 나는 피곤할 것 같애.”
“...”
“나였다면 불편할 테니 내 친구들에게도 이제 질문 그만해. 제발.”
또 이렇게 사춘기 딸에게 의문의 일패를 당했다. 기분이 좋을 때면 엄마가 상담사라서 참 다행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말하다가 삐치기라도 할라치면 상담사라 너무 싫다고 돌직구를 날린다.
“둘째야, 너도 그렇게 생각해? 엄마는 억울한데.”
“내가 보기에도 엄마는 질문을 좀 심하게 해. 직업병이야?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질문을 하는 거.”
“그건 차 안에서 말하지 않고 가면 어색할까 봐 더 오버한 거지.”
“아!! 엄마는 말이 너무 많아. 길게 말하지 마!”
사춘기 터널을 지날수록 점점 큰아이는 돌직구, 둘째는 단호박이 되어간다. 반면에 갱년기가 다가오는 엄마는 차츰 말이 많아지는 건가? 그래도 좋다. 돌직구 말, 단호박의 태도라도 식탁에서 갱년기 엄마와 십 대가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면 우리,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