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진아씨 어진아C Sep 14. 2021

사춘기의 말 - 이상한(?) 밥

“엄마, 언니가 밥을 한다고 했는데 나도 해보고 싶어서 했는데 흑흑, 죄송해요. 제가 밥을 이상하게 만들었어요.” 

“괜찮아, 밥솥 눈금보다 물을 더 많이 넣었구나. 다음부터는 물을 눈금에 맞춰서 잘 넣으면 되지, 울지 말고 언니 바꿔줘 봐.”

“엄마, 내가 한 밥은 어떻게 해? 버려?” 

“아니, 아깝게 왜 버려? 엄마가 다 먹을게” 

“좀 먹어봤는데 맛이 없어” 

“아니야, 우리 강생이가 처음으로 한 밥인데 어떻게 버려, 엄마가 다 먹을게, 괜찮아.”    

 

둘째가 처음으로 밥하던 날은 마침 퇴근 후 시집으로 귤 택배 작업을 하러 가던 때였다. 전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둘째(당시 예비 4학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다고 달랬다. 첫째에게는 대충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밥을 꺼내 해동해서 전자렌지에 돌려먹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작업을 마치고 늦은 귀가를 하니 둘째가 달려와 안겼다. 어쨌든 그 죽밥을 한 톨 버리지 않고 나 혼자 해치우기까지는 3일이 걸렸다.     

 

이상한 밥 사건 이후로 둘째는 밥물을 눈금에 잘 맞췄고 아주 맛있는 밥을 요즘에도 자주 하곤 한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 등으로 둘만 지내는 시간이 많은데도 아침에 밑반찬과 국, 찌개 등만 해놓으면 알아서 차리고 설거지 등을 분담하며 한다. 첫째는 설거지를 꼼꼼하게 하고 각 잡아서 빨래를 널거나 개키는 것을 잘하고 둘째는 눈썰미가 좋아 그릇에 예쁘게 담아서 상 차리는 것을 잘한다. 초등학교 때 큰아이의 학습지 교사가 집에 오면 엄마가 하던 대로 예쁜 그릇에 간식을 담아 내갔다고 대견해 하기도 했다.   

   

“자기, 둘째한테 살림하는 걸 가르쳤어? 시키지도 않았는데, 날이 더우니 남은 국이 쉰다고 둘째가 팔팔 끓여 놓고 갔대!”     

둘째가 6학년 때 주말에 친한 친구네 집에 가서 1박을 하고 온 적이 있다. 그 부모는 타지를 다녀왔는데 애들끼리 식사를 하고는 설거지도 해놓고 냄비에 남은 국도 상할까 봐 끓여 놨더란다. 전업맘인 그녀는 자녀에게 집안일을 전혀 시켜보지 않은 터라 놀라는 눈치였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애들에게 자잘하고 쉬운 집안일을 나눠서 시켰다. 현관에 신발 정리, 식탁에 수저 놓기, 자기 방에 빨 옷들을 세탁 바구니에 갖다 놓기, 엄마가 청소기 돌릴 때 물건 옮겨주기, 엄마가 청소기 돌린 곳에 밀대로 걸레질하기 등을 하게 했다. 초반에는 이런 간단한 집안일을 할 때마다 얼마씩 용돈을 적립시켜 주기도 했었다. 그러면 둘이 경쟁하듯이 서로 자기를 시켜달라며 먼저 하겠다고 나섰다. 몸에 익은 후에는 용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엄마를 돕기도 했다.   

   

첫째가 4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세 살 터울의 둘째도 입학했고, 방학에는 둘만 집에서 지내야 해서 음식을 데우는 것(가스레인지, 전자렌지, 에어프라이기 등)과 차리는 것, 먹고 나서 치우는 것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퇴근 후 택배 작업으로 더 바빠지는 1월과 2월에는 점차 숙련도가 필요한 집안일까지 애들 차지가 됐다. 설거지, 청소기 돌리기, 세탁기에서 세탁이 다 된 옷들을 꺼내 털어서 건조대에 가지런히 널기, 쌀 씻고 물 맞춰서 전기압력밥솥에 넣고 취사 버튼 누르기와 빨래 들여서 개기 등 욕실 청소 빼고는 웬만한 집안일을 시켰다.     


어쩔 수 없이 애들에게 가르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애들도 하는 버릇하면 나름의 장점이나 특기를 잘 살려 웬만한 살림꾼 못지않게 잘할 수 있다는 걸 나도 배웠다. 예전 내가 자랄 때도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이 집안일과 동생을 돌보는 일까지 가르치면서 격려했던 과정도 떠올려보았다. 아이가 서툴러도 할 수 있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 해주는 것은 어른들이었구나.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언젠가는 자립할 나이가 되면 어차피 혼자 해결해야 할 일들이다. 밥을 차려 먹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등등은 생존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부모가 쫓아다니며 해 줄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요즘에는 로봇청소기, 건조기와 식기세척기도 없어서는 안 될 가전제품이라 직접 손으로 하는 수고를 많이 덜긴 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자립해서 나가 살 때 처음부터 로봇청소기나 건조기, 식기세척기를 들여놓고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혼자 하는 버릇을 평소에 들여놔야 나중에 나가 살 때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생활의 기본적인 것을 혼자 하길 원한다면 초등학교 입학 후에 조금씩 집안일을 분담해 주자. 

작가의 이전글 사춘기의 말-나쁜 친구들 아니고 유난스러운 친구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