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학교에 간다니까 벌써부터 설레요! 헤헤.”
“고3이 맞니? 정신 차려, 초3 아니야!”
“친구들이랑 선생님 만날 생각만 해도 신나요!”
“공부도 좀 생각해야지, 개학하면 장난 아닐 텐데 괜찮겠어?”
고3인 큰아이가 개학 전에 나랑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해맑게 웃었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으니(본인이 알아서 한다고 주장하지만)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듯했다.
지금은 친구들과 학교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긴장감을 많이 느끼는 아이였다. 원래가 예민한 성향인데 관계 지향적인 아이라 새로운 친구들이나 선생님 앞에서 실수할까 봐, 잘못할까 봐 부담감도 느끼고 긴장감도 많이 느꼈다. 그래서 갑자기 배나 머리가 자주 아팠고, 학교생활에 적응하려면 최소 두 달은 걸렸다. ‘새학기 증후군’을 겪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에게는 본인의 ‘성향’과 처한 외부 ‘상황’이 만들어 낸 힘든 여정이었다.
처음에는 몸으로, 아픈 증상으로 격렬히 회피하거나 거부했다. 하지만 엄마나 아빠가 가만히 바라봐 주거나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내 힘든 여정을 걸어 볼 용기를 얻는 것 같았다. 부모가 조급해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괜찮아, 새 친구들 앞에서 실수해도 돼. 선생님 앞에서 잘하지 않아도 돼.”
“누구나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너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멋진 아이야.”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너를 보여줘.”
잘하고 싶은 생각에,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학년 초만 되면 과도하게 긴장을 하는 큰아이에게 새학년 초에 무수히 많이 건넸던 말들이다.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교실 한구석에 조용히 있었다. 특히 엄한 선생님을 만나면 한 학기가 지나도록 힘들게 등하교를 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몇 달 후 반 아이들과 친해지면 남자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축구를 하고 놀았고, 선생님과도 장난을 치는 개 구진 모습도 보였다. 2학기에는 학급 반장을 하기도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오히려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는 선생님에게 건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엄마인 나는 당연하겠지만 다행히도 선생님들, 친구들이 큰아이를 천천히 기다려 줬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이 아이의 어두운 면보다는 밝고 잘하는 면을 더 많이 봐주고 같이 어울려 주었다. 그렇기에 고3인 큰아이가 마치 소풍 가는 어린이집 원생처럼 개학을 손꼽아 기다리는 상황으로 발전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