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마지막 목격자들> / <세컨드 핸드 타임>
안녕하세요, 설님.
어느 순간 (저의 탓으로) 간격과 리듬이 흐트러져 실로 오랜만에 쓰는 편지입니다. 지난번 설님의 편지는 웃으며 읽었습니다. 저는 성석제의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데 설님의 편지를 읽고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의 한국 소설은 김영하와 박민규와 배수아에서 시작되어서요, 문학소녀인 적이 없는 저에게 그 이전 시대의 소설들은 뭐랄까요… 도서관의 한적한 자리에 꽂힌 빛바래고 때로는 한자가 섞인, 부담스럽고 고리타분한 책들, 이라는 이미지로 남아 있어요. 그것이 조금 부끄럽기는 합니다.
그러게요, 설님. 우습지만 저는 X세대도 아닌, 그 다음의 N세대입니다. 그리고 요즘의 MZ세대들이 우리가 대학에 다닐 때 유행하던 패션을 따라하고, 그때의 영상들을 보며 우리 엄마 아빠도 힙스터였네? 하고 놀라는 것을 보며 웃습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심각하고 진지한 것들을 부끄러워했고, 뿌리 없이, 연대도 없이 저 혼자서 흔들렸으며, 각자의 방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영하나 박민규나 배수아의 소설을 읽으며, 왕가위의 영화를 보고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들으며 외로움에 몸부림을 쳤던 것입니다. 제 20대 초반은 어찌나 막가파였는지, 종묘공원 앞에서 노숙자들과 자리싸움을 하며 노숙하던 기억마저 있습니다…(우리 딸이 그러면 어쩌지.)
그런 것을 보면, 자아라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요. 제가 192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1960년대나 200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저는 그 모습으로 20대를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대부분의 스무 살들이 그러하듯 우리를 위해 준비된 세상으로 미끄러지듯 걸어들어가 그 세상에 걸맞는 인간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40대가 된 지금의 모습은, 과연 이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다른 시대에, 다른 세상에서 40대로 살아남아야 한다면, 저는 아마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겠지요?
설님. 무얼 어떻게 써야 할지 자기 확신이라는 것이 약해진 요즘, 저는 저 자신을 구원해줄 책이 무엇일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작가를 떠올렸지요. 그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다. 그 사람이 나를 구원해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름 휴가 때는 이 작가의 책 <세컨드 핸드 타임>을 가지고 갔습니다. 저는 이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이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어요. 그리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아주 두꺼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지요. 그 두꺼운 책을 저는 아주 게걸스럽게 읽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 작가의, 아주 오래된 전쟁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은 픽션도 아니고 논픽션도 아닙니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지, 이건 다큐멘터리인가? 아니면 인터뷰집이라고 해야 하나? 누군가는 그의 책을 목소리 소설이라고도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이 사람의 책은 목소리들로 가득합니다. 그 목소리들은 차분하기도 하지만, 읽다 보면 절규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제가 다르게 살 수 있었을까요? 저에게 다른 삶이 있었을까요? 저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구소련체제에서 태어나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작가는 체제 안에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받고, 눈물 흘리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옮깁니다. 다른 책들도 좋았지만 저는 특히 <마지막 목격자들>이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어린 아이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고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내 목숨을 구해준 그 여자의 이름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요. 볼로진스키 지구의 게네비차 마을에 사는 올림피야 포자리츠카야예요. 내가 그곳에 사는 한, 그 가족은 늘 공포에 시달려야 했어요. 언제라도 총살을 당할 수 있었죠...... 온 가족이요...... 네 명의 아이까지도요...... 게토 출신의 유대인 아이를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나 때문에 그 가족이 파멸할 수도 있었어요...... 얼마나 위대한 마음을 가져야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간의 마음이지요...... 독일군이 나타나면, 그 사람들은 즉시 날 어딘가로 보냈어요. 집 바로 옆에는 숲이 있었답니다. 숲이 날 구했죠. 그 여자는 날 몹시 가여워했어요. 친자식들과 나를 똑같이 가여워했죠. 무언가를 줄 때도 모두에게 똑같이 주었고, 입을 맞춰줄 때도 모두에게 똑같이 해주었어요. 그리고 모두의 머리를 똑같이 쓰다듬어주었죠. 난 그 아주머니를 ‘마무샤’라고 불렀어요. 어딘가에 내 엄마가 있다면, 여기에는 ‘마무샤’가 있는 거죠......
(중략)
나중에 날 데리러 엄마가 왔답니다. 엄마는 안마당으로 들어와서, 아주머니와 그 친자식들 앞에 무릎을 꿇었지요......
차량 안에 아이들이 어찌나 많던지, 처음 한동안은 서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른은 없었고, 어린아이와 십대들만 있었죠. 차량 문이 굳게 닫힌 채로 기차는 이틀 밤낮을 꼬박 달렸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요. 들리는 것이라고는, 레일 위를 달리는 바퀴 소리뿐이었지요. 낮에는 틈새에서 빛이라도 들어왔지만, 밤이면 너무 무서워서 다들 울었답니다. 우리는 어딘가 먼 곳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내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가 없었어요. 너무 아프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도 자랄 수 있을까?’
나이 지긋한 한 파르티잔이 내 모자를 벗기고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 아저씨는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자기에게도 나만 한 아들이 있다고, 그 아이도 어딘가에서 도망치고 있을 거라고요.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런 일이 생각나는군요. 엄마와 내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감자를 나르고 있었죠. 엄마가 일하는 공장에서 조금 주었던 겁니다. 폐허가 된 건설 현장에서 독일군 포로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무터, 비테, 감자를......”
엄마가 말합니다.
“안 줘. 네놈이 내 아들을 죽였을지도 모르잖아?”
독일인은 어리둥절해하며 입을 다뭅니다. 엄마는 그 자리를 떴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감자 몇 알을 꺼내 그자에게 건넵니다.
“먹어......”
이제 내가 당혹스럽습니다...... 어떻게? 겨울에 우리는 마치 썰매를 타듯 얼어붙은 독일군 시체들을 몇 번이고 지쳤습니다...... 발로 시체를 툭툭 칠 수도 있었죠. 시체 위에서 쿵쿵 뛰기도 했고요. 우리는 계속 그자들을 증오했습니다.
엄마는 나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전후에 배운 첫 번째 사랑 수업이었습니다......
제가 언젠가 옮겨 적어둔 이 문장들을 여기에 붙이며 저는 또 울고 있습니다. 마누라를 칼에 찔려도 피 한 방울 안 흘릴 냉혈한으로 아는 제 남편이 보면 기절초풍을 하겠지만, 아무튼 저는 이런 사람이랍니다. 저는 늘 이렇게 눈물이 많은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남들에게는 웬만해서는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지요.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사실 저는 무척 센티멘털한 사람이며, 저는 저의 센티멘털을 팬티 위에 달린 작은 리본처럼 아무 짝에도 쓸모 없고 어색하고 부끄러운 것이라고 느끼며 자랐습니다.
어릴 때 엄마는 저에게 “너는 꼭 말괄량이 삐삐 같아” 라고 말했지만, 사실 저는 말괄량이 삐삐보다는 빨강머리 앤에 가까운 아이였다고 느낍니다.(지금은 제 아들이 빨강머리 앤을 닮았습니다…) 감성적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자주 몽상에 빠지고 엉뚱한 짓을 벌이고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 사는. 아무튼 여름 휴가를 위해 산 <세컨드 핸드 타임>은(절판되어서 중고 서점에서 주문했습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소비에트 체제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입니다. 작가는 그 인류를, 호모 소비에티쿠스라 부릅니다.
공산주의에는 ‘오래된 사람’, 즉 태초부터 살아온 아담을 개조시키겠다는 터무니없는 포부가 있었다. 그리고 그 포부는 실현된 듯하다. 어쩌면 이것이 공산주의가 유일하게 달성한 성과였으리라. 지난 70여 년의 세월 동안 <마르크스-레닌주의 실험소>는 독특한 인간 유형인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창조했다.
(중략)
우린 우리만의 언어가 있고, 우리만의 선과 악에 대한 가치관이 있고, 우리만의 영웅과 순교자들이 있다.
저는 깜짝 놀랍니다. 인간이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고 믿다니, 그 시대는 정말로 대단했구나. 저는 대부분의 이상주의에 대해서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어릴 때는 그런 이상주의에 빠진 적도 있었지요. 가족여행을 가는 자동차 뒷자리에 구멍난 츄리닝 바지를 입고 누워서 내내 오쇼 라즈니쉬의 명상에 관한 책을 읽던 스무 살 무렵의 저를, 부모님은 과연 어떻게 생각했을까요?(역시 내 자식들이 그러면 어쩌나...) 저는 인도로 떠나서 아예 돌아오지 않을 생각도 있었고(막상 가보니 낯가려서 안 되겠더라고요. 게다가 인도가 저와 맞지 않았음…), 이상주의를 표방하는 공동체에 들어갈 생각도 있었고(역시 낯가리는데다 의심이 많아서 안 되겠…), 30대가 되어서도 귀촌을 할까, 귀농을 할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대안학교에서 인간이 만든 이상적인 공동체라는 것이 얼마나 볼품없이 타락해가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지요. 물론 모든 대안학교가, 모든 공동체가 그렇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 공동체가 그랬다는 것이에요. 정의로웠던 교장은 자신의 정의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겁에 질린 듯했고, 그러자 민주적으로 보였던 시스템은 조금씩 전체주의로, 독재로 변해갔어요. 그 와중에 무슨 짝짓기라도 하듯 자기들끼리 사귀고 결혼하던 젊은 교사들 사이에서 이혼이니 공동체 퇴출이니 하는 스캔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공동체에 속했던 사람들, 그 하나하나의 면면은 악마들이 아니에요.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좋은 사람들일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물에 빠지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물에 뛰어들,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저는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서 좋은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저는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과연 인간에게 신념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라는 것이 걸맞는 시스템인지를 저는 계속해서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프롤로그에 이렇게 덧붙이지요.
그 삶이 어떤 삶이었던 간에 그건 우리의 삶이었다. 나는 가정 속에 나타난 사회주의 또는 내부적으로 나타난 사회주의의 역사적 파편과 부스러기를 모아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 속에서 살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항상 인간, 그러니까 ‘하나의 인간’이라는 작은 공간에 매료되곤 한다. 사실 모든 역사가 그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니까.
(중략)
내가 찾는 사람들은 사상에 유착되어서 그 사상을 뽑아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자기 안에 심어놓은 사람들, 즉 국가가 곧 우주라는 생각으로 국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비롯해 모든 것을 갖다 바친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위대한 역사에서 헤어나올 수도, 그 역사와 이별할 수도 없어서 다른 방식의 행복을 추구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보잘것없이 작은 것이 거대하게 여겨지는 오늘날이 그러하듯 개인의 존재 안에 뛰어들어 잠겨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인간은 그 어떤 원대한 사상 때문이 아니라 ‘그냥’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그냥 살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러시아 문학도 그냥 사는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알고 보면 우리는 전쟁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다. (중략) 우리는 자신이 노예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고, 오히려 노예로 사는 것을 좋아라 했다.
가끔 오래된 러시아 소설들을 읽으면서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진지한가? 어떻게 이렇게 매순간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인간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밀어붙일 수 있는가? 하고 놀랍니다. 그러나 저에게 더 미스터리한 것은, 어떻게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은 저렇게 되어버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에요. 이 책은 저에게 그 미스터리에 대한 답을 줍니다. 아직 절반 밖에 읽지는 못했지만, 저는 뼛속까지 공산주의자이며 스탈린주의자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럴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합니다.(하지만 질문자인 알렉시예비치는 드물게 그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당신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고 선언하지요.)
고르바쵸프를 미워하는 사람들, 고르바쵸프가 자신들을 구원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비에트 시절을 징글징글해하면서도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그들은 말하지요. 그때는 ‘우리’가 있었다고요. 누구든 굶도록, 아프도록, 혼자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고요. 부엌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읽었던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삶. 가난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돌보던 삶. 그것을 버린 대가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되어버렸냐고 그들은 묻습니다.
소비에트 문명. 나는 소비에트 문명의 흔적을, 소비에트의 익숙한 얼굴을 서둘러 기록한다. 사람들에게 사회주의가 아닌 사랑, 질투, 유년기, 노년기에 대해 그리고 음악, 춤, 헤어스타일에 대해, 사라진 삶의 수천 가지 소소한 일상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것이 재앙을 익숙한 틀 속에 집어넣고 무언가를 이야기해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깨우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말이다. 나는 평범한 인간의 삶에 지치지도 않고 매번 깜짝 놀란다. 인간의 진실은 무한하다. 역사는 감정을 옆에 제쳐두고 사실에만 관심을 두기 마련이다. 역사 속에 감정을 들여 보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는 역사학자가 아닌 인문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경이로움을 느낀다.
저는 ‘나는 평범한 인간의 삶에 지치지도 않고 매번 깜짝 놀란다’는 작가의 말에 무한한 경의를 보냅니다. 이런 문장이 제 가슴을 뛰게 해요. 저는 지치지도 않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크게 웃을 수 있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런 경험들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마치 빨강머리 앤처럼. 그런데 빨강머리 앤이 그러길 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점은, 그런 경험들이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뛰어나가 손을 뻗어 움켜쥐려 한다는 데 있겠지요.
뒤죽박죽 편지가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은 것 같지만, 이제 저는 출근을 하여 사회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별 수 없이 이렇게 두서 없이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평온한 주말을 보내시길!
2022년 8월 26일
뒤죽박죽 수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