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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희 Dusky Jan 10. 2021

재즈의 도시 도쿄

도쿄에서는 매일 밤낮으로 재즈 공연과 잼 세션을 즐길 수 있다.

예전부터 나에게는 분명 '도쿄'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설렘 같은 것이 있었다.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오랫동안 자취생활을 전전해온 진정으로 고독한 나의 초라한 식사 시간을 언제나 함께 해주던 '고로'상의 <고독한 미식가> 같은 일본 미식 드라마 속 잔잔하지만 정이 넘치는 모습이라거나, 도쿄의 오다이바 지역을 중심으로 한 수사물 드라마 <춤추는 대수사선> 속에서의 역동적인 모습이라거나, 그간 도쿄를 배경으로 한 어떤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내게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도쿄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일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2018년 2월, 도쿄의 잼 세션을 조사한 메모

뿐만 아니라 맛있는 음식이라면 환장하는 내게 라멘이나 초밥 같은 일본 음식들을 도쿄 지역 내 유명 식당에서 직접 먹어볼 수 있을 거란 기대라던지, 또 커피를 좋아하는 내게 각자의 개성이 또렷한 유명 카페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방문해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만으로도 내가 도쿄 여행을 손꼽아 기다릴 이유는 충분했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재즈 연주자인 내가 도쿄 여행을 기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도쿄에는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재즈 클럽이 있기 때문에 매일 밤 잼 세션(재즈 연주자들이 돌아가면서 참여하는 즉흥 연주 시간)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나에게는 매일 갈 곳을 정하는 것도, 또 친구를 사귀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와도 같았다. 그래서 딱히 대단한 계획을 세우지 않더라도 맛있는 것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재즈 클럽에서 잼 세션을 즐기고, 또 어쩌면 거기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만으로도 나의 도쿄 여행은 매일 충분히 즐거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일본은 재즈 음악이 문화적으로 상당이 보편화되어있는 나라다. 아마도 일본을 여행해본 적이 있다면 잘 알겠지만 특히 일본에서는 식당, 카페, 가게, 백화점, (심지어 화장실 변기..) 등 어떤 곳을 가봐도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특히 인구가 적은 소도시나 도시 외곽 지역에서는 그 지역 사람들이 문화를 즐길만한 곳이 딱히 재즈 클럽 말고는 없는 경우도 많아서 보통 공연이 없는 시간에 재즈 수업을 운영한다거나,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공연이나 잼 세션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기도 하는 등 재즈 클럽이 그 지역의 문화센터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본 어디에서나 재즈를 배우고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일본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많은 아마추어 재즈 연주자들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개최되는 어떤 잼 세션을 가보더라도 늘 수십 명 이상의 재즈 연주자들이 모여 세션을 즐기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도쿄 메구로에 있는 재즈 클럽 <jammin'>. 낮시간에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잼 세션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아마 사람들은 재즈 클럽의 모습은 비싼 양주를 파는 로맨틱한 인테리어의 대단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대부분의 일본의 재즈 클럽들을 실제로 가보면 몇십 년 이상 계속해서 운영된 낡은 곳이거나,


'과연 이런 작은 곳에서 밴드가 모여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경우가 더 많았다. 개중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천장에 악기를 매달아 둔 곳도 있었고, 꽉 차야 겨우 스무 명 남짓 들어올 수 있는 좁은 곳도 있었다. 아마도 보편적으로 작은 일본인들의 체구와 도쿄의 높은 월세 때문은 아닐까? 나는 그저 추측해 볼뿐이다.

도쿄 아사가야 역의 재즈 클럽 <un.10>. 천장에 걸려있는 콘트라 베이스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자신 있게 제안할 수 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가 정상화되고 다시 일본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 언젠가 일본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면 반드시 일본의 재즈 클럽을 한 번 방문해 보라고 말이다. 보편적으로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심야 시간에 술 마시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일본의 재즈 클럽을 방문한다는 것은 '오랜 역사를 가진 가게'와 '프로 의식을 가진 연주자의 공연'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당신의 여행지가 '도쿄' 라면 월화수목금토일 언제라도 말이다.




언젠가부터 낯선 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면 나는 항상 내가 머무를 도시에 재즈클럽은 있는지, 또 그 재즈클럽에서 잼 세션을 할 수 있는지부터 먼저 알아보는 편이다. 2017년 후쿠오카에서의 잼 세션 이후 현지에서 음악가로 활동 중인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또 그곳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다른 누구도 누릴 수 없는 음악가, 특히 재즈 연주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행자로서의 즐거움임에 틀림없다. 물론 잼 세션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해도,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해도 상관없다. 나는 계속해서 음악가로 살아갈 것이고, 또 여행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2018. 2. 7. Jam Session에 참여한 필자. @MASH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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