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수상한 남자

이 남자 믿어도 될까?

by 작가 조바르

지난 한 달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고요한 일상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더니 이내 천둥 번개가 몰아쳤다. 일상이 파괴되고 평생 쌓아왔던 탑이 와르르 무너졌다.

수정은 23층 아파트 거실 창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평소와 다르게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하늘에 새털구름이 떠 있었다. 구름 한조각 한조각 사연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지난 일들이 구름처럼 하나씩 흘러갔다.


태식과 헤어질 결심을 했고, 혼자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명훈을 만나 원나잇을 했다. 20년 만에 처음 오르가슴을 느꼈다. 그런 시간에 서울에서는 아버지가 심장발작으로 돌아가셨다. 수정이 핸드폰을 꺼두어서 연락이 닿지 않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너무나 큰 불효를 했다. 자신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40년 지기 친구 나리가 남편과 바람을 피웠다. 남편과 이혼하기로 했다가 남편도 수정의 불륜증거를 가지고 있음에 놀랐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5년간 졸혼을 유지하다가 이혼하기로 합의했다.


이 모든 것이 ‘행복하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시작되었고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수정은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남편에게 의존적이었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수정은 이래서 여자들이 참고 사는가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남편 태식의 태도가 달라졌기는 했지만,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한 번에 씻어주지는 못했다.

수정은 명훈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는 상황도 모르고 욕정에 불타올랐던 자신을 생각하면 다시는 떠올리지 않고 싶은 남자였다. 그런데 그런 명훈이 생각난 것이다. 20년 만에 오르가슴을 느끼게 해준 남자. 명훈이라면 지금의 자신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다.

‘아. 이래서 또 남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걸까?’


수정은 핸드백 속에 넣어둔 명훈의 명함을 꺼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전화를 걸었다.


“네. 이명훈입니다.”

“.......”

“여보세요?”

“저. 기억.”


수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 왜 이렇게 자존감이 바닥을 치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거 같아.’


수정은 목젖까지 실룩거려가며 힘들게 침을 삼켰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명훈 씨 같은 남자가 왜 나 같은 여자를 만나겠어. 그냥 하룻밤 상대로만 생각했을 거야. 아, 바보같이 괜히 전화를 해서는.’


휴우

수정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세게 내뿜었다.

띵 띠리리~

띵 띠리리~

수정의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자세히 보니 조금 전 걸었던 명훈의 전화번호였다. 수정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 여보세요?”

“수정 씨. 저 이명훈입니다.”

“아. 네.”

“조금 전에 통화가 끊겨서요. 설마 그냥 끊으신 건 아니죠?”

“아, 네. 그럼요. 갑자기 급한 전화가 걸려와서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급한 전화 먼저 받으셔야죠. 괜찮습니다. 지금은 통화 괜찮으시죠?”

“네. 괜찮아요.”

“저 수정 씨 전화 많이 기다렸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전화번호라도 저장해 둘 걸 하고 후회 많이 했습니다.”

“아. 그랬어요?”

“괜찮으시면 오늘 저녁에 만나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하네요. 보고 싶기도 하고요.”

“음. 네. 그럴게요.”

“그럼 약속장소는 제가 카톡으로 보내드릴게요. 그때 봐요.”

“네.”


수정은 전화를 끊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내가 남자한테 단단히 빠졌나 보다.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지?’

수정은 갑자기 소풍 가는 아이처럼 기분이 들떴다.

‘뭐부터 할까? 옷은 뭘 입고 나가지? 머리는? 그래 미용실부터 갔다 오자. 아니야 옷부터 골라놓고 가야지.’

딱 한 번 보고 술 마시고 호텔가서 황홀한 밤을 보낸 남자.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남자. 배려가 몸에 밴 남자. 수정이 기억하는 명훈은 그게 다였다. 그런데 묘하게 드는 느낌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인 것처럼 낯설지가 않았다.


명훈은 수정과 통화를 한 후 긴 한숨을 내쉬었다. 30년 전 일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 수정이를 다시 본 순간 분노의 감정이 다시 솟아났어. 30년이면 묻힐 만도 한데 지금까지 벗어버리지 못한 걸 보면 분노가 심장 한 귀퉁이에 고통으로 박혀있었어. 그게 다시 깨어난 거야. 내 아픈 심장을 마구 두드리고 있어.’


명훈은 30년 전 혜선의 죽음이 수정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입대하던 날 명훈이 옆에는 짝사랑하던 수정이 대신 초등학교 동창 혜선이가 있었다. 둘은 하루 전날 논산으로 가서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문제의 사건은 새벽에 일어났다. 2층 입구 복도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최종 수사결과는 입대를 꺼리던 남자가 애인과 심하게 다툰 후 애인이 가버리자 시너를 뿌리고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2층 객실에서 사상자가 가장 많이 나왔는데 객실 창문마다 방범용 창살을 해놓아서 탈출이 어려웠다. 복도는 이미 화염에 휩싸여 나갈 엄두도 못 냈다.

복도 끝방에서 잠을 자던 명훈과 혜선은 연기와 함께 뜨거운 화염에 잠을 깨서 불이 난 걸 알았지만, 이 방법이 없었다. 명훈은 창문을 열고 방범용 창살을 뜯어내려고 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연기가 점점 방안에 가득 찼고 형광등은 꺼져버렸다.

콜록콜록

헉. 헉.


“명훈아, 나 숨 막혀 죽겠어. 헉. 헉.”

“어디 있어. 내 손 잡아. 헉. 콜록콜록.”


명훈은 창문으로 탈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꼼짝없이 죽겠다고 생각했다. 혜선이 소리 나는 곳으로 팔을 휘저으며 더듬었다.


“혜선아. 창문으로는 안 되겠어. 일단 이불을 몸에 두르고 복도로 뛰어가자. 숨 참고 뛰면 살 수 있어.”

명훈은 이불을 물에 적신 후 혜선을 감쌌다.


“혜선아. 정신 차려. 혜선아.”
“어. 콜록콜록. 흐. 흐. 명. 명훈아. 흐윽. 꺽. 흐윽”


혜선은 명훈이 화장실에서 이불을 물에 적시는 동안 연기를 많이 마셨다. 숨이 꼴깍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명훈은 혜선이 스스로 뛸 수 없는 상황임을 직감했다. 바닥에 쓰러진 혜선을 둘러업었다. 자신은 이불을 감싸지 못했다. 객실 문손잡이를 잡자 뜨거웠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바닥을 얹는 것 같았다. 문을 열자 연기와 화염이 확 밀려왔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고 앞이 캄캄했다. 감각적으로 복도로 나와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불 속을, 그것도 화염 터널이 되어버린 복도를 숨도 쉬지 않고 뛰었다. 얼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여기서 쓰러지면 둘 다 죽는다. 어떻게든 출구로 뛰어나가면 숨을 쉴 수 있을 거야.’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찰나 같은 순간에 어릴 때 부모님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모습, 혜선이 전학 와서 왕따 당할 때 도와주던 모습, 고등학교 수학여행, 대입시험 합격하고 기뻐하던 모습, 수정이를 처음 봤던 미팅 장면, 어젯밤 뜨거웠던 혜선과의 첫 섹스, 부모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더는 숨을 참을 수 없었다. 비상구 경고등이 희미하게 보였다.

‘다 왔다. 저기가 출구다. 저기만 통과하면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어. 다 왔어…….’


명훈은 눈을 감았다. 화염에 눈을 뜰 수 없었다. 비상구 경고등 모습은 기억으로만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삐용 삐용

가늘게 들리는 사이렌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희미하게 들리더니 이내 멈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작은 빛이 눈으로 들어오더니 주변이 하얗게 보였다. 왠지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려고 발버둥 치려는 순간 몸이 공중으로 붕 솟아올랐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지상 30m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급차에 실려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구급차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게 신기했다.

‘어. 이상하다. 공중에 떠 있는데 어떻게 구급차 안을 볼 수 있지?’


옆 구급차에는 혜선이 타고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구급차는 급히 출발하고 혜선은 깨어나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계속 심장을 눌렀다. 옆에 있는 대원이 이미 사망한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돼. 계속해요. 살려야 해요.’


혜선을 실은 구급차는 빠르게 달렸다. 명훈은 고개를 돌려서 화재현장을 바라봤다. 2층은 전 객실 창문에서 화염과 연기를 뿜어냈고 3층, 4층으로 계속 번지고 있었다. 옥상에는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건을 입에 대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소방차가 들어와야 하는데 모텔 진입로에 세워둔 불법 주차 차량으로 막혀서 들어오지 못했다. 헬기가 사람들을 구조하려고 했지만, 불기둥과 연기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저기 옥상에 있는 사람들도 다 죽겠구나! 소방차를 막고 있는 저 차들 모두 부숴버려야 해. 양심 없는 사람들. 지옥에나 가버려…….’


어디선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 차리세요. 눈을 떠 봐요. 정신 차리세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희미하게 사람들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며 따가웠다. 칼로 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아악. 아아. 흑. 흑.”


숨쉬기가 어려웠다.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목구멍 안쪽 살들이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가늘게 들이쉬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이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입속으로 금속 재질의 기구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얼굴에 있는 어떤 근육도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한 가지 좋아진 것은 숨을 쉬기가 편해졌다는 것이다.


“이명훈 씨. 제 말이 들리나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를 들었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떠지지 않았다. 아니 떴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명훈 씨. 지금 온몸에 화상을 입었어요. 얼굴에 붕대를 감고 있어서 눈이 떠지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말하는 게 들리면 손가락만 움직여 봐요.”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고? 얼굴을 붕대로 칭칭 감아서 눈이 떠지지 않을 거라고?’


명훈은 이제야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알았다. 오른 손가락을 움직였다. 마음은 움직이고 있는데 실제 움직이는지는 몰랐다.

“네. 됐습니다. 청각은 이상 없군요. 손가락도 잘 움직여지고요.”

‘아까 내가 공중에서 본 건 뭐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던데,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걸까?’

명훈은 일단 자신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혜선이 궁금했다. 분명히 혜선은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구급차로 가고 있었다.

‘혜선. 혜선이는 어떻게 됐을까?’


입 근육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입속에 금속기구를 물고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달 후)

눈을 가리고 있던 붕대를 풀었다. 입속에 있던 기구도 제거되었다. 의사 말로는 팔다리는 심하지 않은데 얼굴은 다섯 차례 정도 성형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명훈은 혜선을 업고 문을 열던 장면이 떠올랐다. 화염방사기로 얼굴을 지지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얼굴이, 얼굴이.’


그런데 혜선의 소식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6개월 후)

명훈은 손을 움직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이 핸드폰으로 논산 모텔 화재사건 사망자 명단 검색이었다. 정혜선. 사망자 명단에 혜선의 이름이 있었다.

‘아닐 거야. 동명이인일 수 있잖아. 분명히 심폐소생을 하고 있었어. 아니야. 아니야.’


(3년 후)

명훈은 총 8번의 성형수술을 했다. 얼굴이 완전히 달라졌다. 옛 친구들도 아무도 몰라봤다. 부모님만이 옛날 얼굴 흔적을 찾아내서 그때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을 뿐.

이후에도 명훈은 자잘한 성형수술을 10여 차례 더 했다. 혜선에 대한 미안함으로 평생을 비혼주의로 살았다. 명훈은 경찰 생활을 20년 하고 퇴직 후 탐정 사무소를 개업 했다. 취미로 시작한 사진작가와 탐정이라는 직업은 잘 어울리는 직업이었다. 혜선이 죽기 전에 한 말 때문에 매년 제주도를 세 번 찾았다.

‘명훈아. 난 제주도가 좋아. 꼭 가고 싶어. 봄, 가을, 겨울에만.’

‘여름에는 안 가고 싶어?’

‘응. 여름은 싫어.’

‘왜?’

‘목 뒤에 화상 흉터가 있거든. 그래서 여름에는 가기 싫어.’


이후 명훈은 매년 제주도의 3계절을 사진에 담아서 혜선이 죽은 날 봉안당을 찾았다. 그런 명훈을 수정이 알아보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명훈의 탐정 사무소에 태식이 찾아왔다.


“미행해서 증거를 잡아야 하는데 그런 일도 하나요?”

“네. 그런 일이 전문입니다.”

“그럼. 여기 이 사진 속의 여자를 찾아주세요. 집을 나갔거든요.”

“어떤 일로 나갔는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음. 음. 아무래도 남자가 있는 거 같아요.”

태식은 남자가 있을 거라는 말을 해놓고 양심에 찔렸다. 수정이도 자신과 똑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생각해서였다.


“핸드폰 위치 추적은 신청해두셨나요?”

“네. 경찰 추적결과 한 시간 전에 김포공항이라고 연락이 왔어요.”

“네. 알겠습니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핸드폰 번호도 알려주세요. 친한 친구 연락처도 알고 계시면 같이 주시고요.”


명훈은 수정의 사진을 봤을 때 수정이임을 직감했다. 탐정의 촉은 틀린 적이 없었다. 태식이 수정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줬을 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명훈은 한 시간 전에 김포공항이었다면 제주행 비행기 예약자 명단만 입수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여행사 인맥을 동원해서 예약자 명단 중에 수정이 있음을 알아냈다. 비행기 좌석까지. 비행기 이륙시간은 1시간 후였다. 최대한 빨리 수정의 옆좌석을 예약하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차량이 막히는 시간대라 오토바이 퀵서비스를 이용했다.

20분 전에 도착해서 탑승구로 뛰어갔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마지막 버스가 이동하는 것을 무전으로 세워서 겨우 탈 수 있었다.

‘백수정. 너와 악연으로 혜선이 죽었어. 네가 나를 거부하지 않았으면 입대를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혜선이 죽지도 않았을 거야.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혜선의 복수를 해줄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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