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메리 키노 Aug 25. 2022

간절하게 나아갈 결심

당신이 행복해지길, 나도 행복해지길

오랫동안 서랍에 저장되어 있던 문장을 꺼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옅은 먼지가 소복이 쌓여있는 것 같아 괜스레 미안했다.

'빛을 못 본 지 오래됐구나...'

'머릿속에서 끄집어 내놓고는 방치하고만 있었구나...' 그래도 글 방임죄에 관한 형법이라는 게 없어서 다행이다. 다시 이어서 쓸 수 있음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면서도 담담하게 집중해본다.




어느 누구도 불행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힘들고 괴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나 혼자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꽉 채워왔었다. 나와 만나는 모든 인연들은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공교롭게도 그렇지 못하다. 특히 나와 연을 맺고 함께 일하는 직장 사람들이 더욱 그러하게 느껴졌다. 나로 인해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에 함께 한 모든 과정들을 나의 탓으로 돌렸다. 그게 당연한 것이고, 맘 편하다고 생각했고, 여태 그렇게 해왔던 습관의 일부였다.

하지만 맘이 편하기는커녕 괴로울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 연속선상에 내 인생을 올려두고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반복했다. 우울감,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존감, 모든 일에 소극적인 대처는 뒤따라올 수밖에 없는 꼬리표였다.

왜 불안 속에 사는 것을 선택했을까?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는데 타인의 행복만을 생각하면서 나는 행복하지 않으려고 했을까?

타인의 행복을 위해 내가 타인의 불행을 가져가겠다는 관념이 깊숙이 고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괴롭고 나약한 이상한 고집이 마음을 매일매일 뒤흔들었다.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은 지나친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온전히 나를 위한 사색이 필요했다. 자주 지나치는 강변 주차장으로 향했다. 한적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주말 오후라 야구연습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차량이 즐비했다. 혼자 있을 만한 공간을 찾아 이동하려니 나를 향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온갖 잡념들이 운전을 방해할 것만 같았다. 스스로 위험해질 수 있는 순간으로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잠시 멈추고 이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시동을 끄자 기다렸다는 듯 흐르는 정적을 느끼면서 순식간에 사색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머리가 금방이라도 질 것처럼 뒤통수가 아려왔다. 지금의 마음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한껏 부정 탄 잡념들이 마음을 들쑤셔놓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주차장에 세워진 앞차의 뒤꽁무니가 전부데, 머릿속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폐허가 된 전쟁터였다. 어지럽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황폐해진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괴로움, 두려움, 나태함, 무기력함의 뿌리가 나를 휘감고 있는 듯한 느낌에 숨마저 막히는 것 같았다.


'근본으로 돌아가자'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진다는 이 사색의 본질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시작점을 다시 찾는 것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가 시작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찾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미 지난 일을 바로잡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기준을 잡아야 할지 머릿속은 금방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괴로운 생각과 소극적인 지난날의 모습들이 나를 작은 점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되돌아가려니 너무나도 큰 족쇄처럼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 것 같아 나 자신에게 미안하고 속상해서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나의 행복을 떠올렸다. 불행의 불도저가 행복의 길을 짓누르고 있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행복해지고 싶다고 수없이 되뇌는 것밖에 없었다. 그 불도저가 다시 행복의 길을 깔아뭉개더라도 지나간 자리가 불행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때가 떠올랐다. 인간관계가 문제였다. 직장상사의 하루도 쉬지 않는 가스 라이팅에 매일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위로받고 싶어서 책을 읽다가 '임종이 지금'이라는 짤막한 문장 하나가 한계치였던 눈물샘을 폭파시켰다. 목놓아 꺼이꺼이 울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지금의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마치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으면서도 너무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던 것 같다.


그 근본이란 게 어쩌면 지금 행복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로 되돌아갈 수 없고 행복한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도 없었다. 그러면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가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한지,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 정한 약속은 어떤 것인지.

나름대로 괴로운 마음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뭔가 인문학적 요소처럼 딱딱한 느낌도 들지만 내게 필요한 체크리스트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지는 느낌, 간당간당했던 마음의 등불이 다시 힘을 내어 타오르는 것이 느껴지는 듯했다. 긴장됐던 몸이 어느 정도 풀어지는 느낌도 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찾아낼 수 있었다.


'타인도 행복해지길 원하는 동시에 나도 행복해지자'


나의 불행위에 타인의 행복을 짓는 이상한 집을 만드는 생각을 하지 말자고 굳혀갔다. 풀리지 않는 엉터리 수학공식으로 전전긍긍하지 말고 함께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만 생각하자고 근사한 모래성을 만들듯이 다지고 다져나갔다. 시간이 지나서 또 불행의 습관에 잠식되어 마음의 어두운 공간에 널브러져 있을지도 모른다. 습관이란 건 고치기 쉽지 않으니까. 툭하면 톡 하고 튀어나오기 마련이니까. 그 어두운 습관에 발목을 잡혀도 오히려 지금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 될 것 같았다. 두려움과 맞설 수 있는 마음의 맷집은 가장 힘든 순간에서 똑바로 마주할 때 서서히 단단해지는 것이 아닐까.


마음의 정리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한 단어나 문장으로 마무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분명히 또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순간은 알게 모르게 다가와서 헤집어 놓을 테니까. 이른바 모토를 정하자는 단계에 들어섰다.

모토: 살아 나가거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표어나 신조 따위로 삼는 말

누군가의 멋진 인생 명언으로도 그 삶의 모토를 쫓아갈 순 있지만 내가 주체가 되는 나만의 모토가 필요했다. 나의 삶의 방향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 휘둘리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생각보다 길지 않게 정리될 수 있었다. 마음을 바꾸는데 참 오래 걸렸는데 정리는 순식간이다.

자칫 무뎌질 수 있는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나의 행복을 바라는 '간절함'과 행복해질 위해 무엇을 해 나갈지, 어떤 것을 실천할지 고민하며 '나아가는 것'이 핵심으로 압축되었다. 심플하면서도 마음을 잘 담은 문장이었다.


'간절하게 나아가자'


나의 행복을 위해 사색하는 시간을 틈만 나면 가지게 된 것은 이 날이 있었기에 가능해졌다. 간절하게 나아가고 싶어 오늘의 나를 깊이 들여다본다. 다행히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주차장을 떠날 때 느꼈던 깃털보다 가벼워졌던 마음과 그때 본 강위의 평화로운 윤슬이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후루룩 짭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