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김영진 1편
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덕후야 너 혹시 <사적인 듯 예술적인, 덕업일치>의 탄생 비화 알고 있니? 완전히 내 개인적인 취미 생활인 글쓰기를 엘디프 업무로 치환(?)해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생겨났었어. 이번에 내가 한 번 더 사심을 가득 채우려고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를 시작했어.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하면서 덕질하는 콘텐츠야. 엘디프 작가님들이랑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철저히 내가 궁금했던 거 위주로 여쭤보고 작가님이랑 친해져서 성덕 되려고! 히히히히히히히.
덕터뷰가 모시는 엘디프의 첫 최애는 김영진 작가님이야! 나는 우리 김최애와 온라인으로 소통할 때마다 '아니, 사람이 이 정도로 예의 바르다고?'하는 느낌을 받아. 그래서 내 속에서 이 사람은 세기의 바른사나이로 자리매김해 있지. 아니나 다를까 전시회에 찾아가서 직접 뵙고 말씀 나눌 때 그 이미지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었어. 기본적으로 웃상인데 그 웃음이 너무 수줍더라구. 나긋한 목소리와 훤칠한 비주얼과 콜라보를 해서 '꿈꾸는 소년'이라는 이미지까지 갖기에 이르렀지. 최애의 그림에 자주 나오는 연꽃을 보면서 자화상은 아닐까 생각했었다니까. 근데 웬 걸, 이번 덕질을 통해 만난 김최애는 저돌적인 통찰력과 현실감각 충만한 작업 마인드로 꽉 차 있는 '예술 사업가'더라고. (덕터뷰하길 참 잘했다!)
내 최애가 오랜 시간 미술시장에 머무르면서 체득한 노하우와 마인드는 물론이고,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최애의 웅장한 계획도 같이 들려줄게.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단한 꾸준함을, 최애의 그림을 콜렉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이 <덕터뷰>가 결정의 한 방이 될 거라고 확신해. 좀 길어서 나눠 쓸 거니까 꽉 잡고 따라와!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김영진 편
자유로움 속에서 단단한 유연불삽柔軟不澁의 김최애
나라를 두 번 구한 남자
김최애를 덕질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울 때 내 최애의 와이프분까지 함께 봐야겠다고 생각했어. 형수님이 나랑 동갑이기도 하고 형수님을 뵐 때마다 대화를 잘 이끌어나가시는 타입이라고 생각해서 더 재밌는 그림이 나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 (그리고 김최애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말을 안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찌끔 있었어!) 아니나 다를까, 최애와 가장 가까이 있는 분께서 이런 재미난 말씀을 하시더라고.
형수님: 직장에서 남편이 화가라고 하면 많이들 궁금해 해요. 동료들의 이런 저런 질문에 대답을 잘 해주는 편인데, 그 대답을 들으시더니 '남편 분은 전생에 나라를 두 번 구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엘덕후: 아니 한 번도 아니고 왜 두 번인가요?
형수님: 40대 남자인데, 하고 싶은 일 하고 살고 있고, 와이프가 그것에 대해 닦달하지 않고, 아이가 없어서 육아의 부담도 없다는 점, 그리고 큰 작업실을 혼자 사용한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워낙에 타인의 평가를 신경쓰지 않고 웬만한 일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성격이라서 더 그래보이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육아 부담이 없다는 것에서 쫘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공감되어 버렸지 뭐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도, 가족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점도 참 복받은 인생이라는 생각도 들었구. 그치, 나라 한 번 구해서는 이런 삶을 살 수는 없지. 그런데 내가 가장 부러웠던 점은 '웬만한 것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는 점이었어. 매사에 꼭꼭 궁금증을 해결하고 깰끔하게 마무리 짓고 싶으면서도 그럴 능력은 없는 나로서는 제일 닮고 싶은 부분이야. (역시 내 최애는 인성도 갑이었던거지!)
그래서 여쭤봤지. "작가님, 원래 천성이 긍정적이세요, 아니면 후천적으로 노력하신 거에요?" 이거 물어볼 때는 '원래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라는 대답을 예상했던 것 같아. 그래야 내 맘이 편하잖아. 저런 좋은 성품을 노력으로 얻었다고 하면 나도 그래야 될 거 같잖아. "후천적인 것 같아요. 원래는 망나니였어요."
응....? 뭐? 망나니?
체대 갈 뻔한 망나니가 화가가 된 이유
김최애: 저는... 사실 결혼하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았어요. 지금도... (생각을 조금 하다가) 음, 지금도 사실 하고 싶은 거는 다 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형수님: 어머, 축하드려요! 우리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그런 삶을 살아야죠! (좌중폭소)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ㅋㅋㅋㅋ 형수님의 반응에 다들 웃기 바빴어.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소리람?
김최애: 어릴 때는 주변 친구들이 모두 운동을 해서 저도 체대를 가려고 했어요. '이러다 체육 선생님이 되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하며 살았죠.
엘덕후: 그런데 어떻게 작가의 길을 걷게 된건가요?
김최애: 저희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아무 잔소리도 안하셨어요. 유년시절부터 제가 지켜야하는 것이 있다면 딱 하나, '저녁 6시에 집에 돌아와서 밥먹는 것' 하나였어요. 제가 무엇을 하든 아무도 저에게 '안된다'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는 빵점도 많이 맞았어요. 공부를 거의 안해서 구구단도 5학년 땐가 6학년 때 외웠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축구 하고 싶으면 축구부 들어가서 엄마한테 축구화 사달라고 하고, 야구 유행하면 야구 장비 사달라고 하고, 그렇게 살았지요.
나도 엄마아빠가 나한테 뭐 해라, 뭐 하지 말라 하신 적 없이 자유롭게 키우셔서 이 부분이 공감이 가더라고. 그런데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을 들으면서 아, 이 부분은 나와 참 다르구나 싶었어.
김최애: 제가 살면서 엄마가 저를 따로 부른 적이 한 세 번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마지막에 부르셨던 것은 임종 전 날 유언을 남기실 때였고, 두 번째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갑자기 저를 부르셔서 하시는 말씀이 '앉아서 하는 일 좀 했으면 좋겠다'였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렸어요. '아, 그래도 내가 만화책은 좀 많이 봤지!' 하면서요.
고등학교 2학년 정도 밖에 안 된 청소년이 어머니의 말씀을 받잡아서 미래를 설계하고 2024년이 된 지금에도 정말 그 삶을 살고 있다니.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해서 바람이나 충격에 부러지지 않는대. 그렇게 융통성이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을 유연불삽(柔軟不澁)이라고 표현하더라고. 간섭이 없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나 말랑하고 폭신한 기반을 가졌지만 한 번 결정한 부분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갖고 가는 끈질김을 갖고 있는 우리 김최애 넘 멋지지!
김영진의 작업노트
<자유소생도> 연작의 계기는 미시세계의 밝은 형상들을 심층적으로 바라보고자 시작하게 되었다. 주된 모티브는 늘 우리 곁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꽃으로, 변두리 또는 인식 이외에 공간에서 묵묵히 자라나는 생명력이야말로 참된 삶의 주인이 아닌가 생각되어 이와 같은 지점을 인간의 삶에 투영시키고 있다. 특히, 사생된 식물을 도상 형태로 전환시키기 위해 뿌리 또한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되어 들판에 식물과 기르던 다육식물까지 뽑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식물에겐 하늘과 땅의 명확한 경계가 있는데 그 부근에는 생명으로써의 가장 중요한 생장점을 지니고 있다. 정(靜)적인 뿌리와 상대적으로 동(動)적인 줄기 사이(中)에서 생명의 핵이 있다는 점이 과학과 유사과학의 경계를 넘어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주는 관찰지점이다. 묘사에 있어서는 주로 덩굴식물의 상징적 의미인 ‘기쁜 소식’과 형상적 성질인 ‘덩굴의 군락’을 부각시켜 ‘희망이란 덩굴의 줄기처럼 얇은 가닥일지라도 끊임없이 서로를 감아 올라 피어나는 군락을 통해 우리의 삶 또한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화폭에 담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