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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eong May 13. 2022

편견, 그리고 오만

<오만관 편견 / 제인 오스틴> 리뷰

문학사적 가치는 제쳐두고서라도 명작임엔 틀림없다. 오해를 했다. 단조로울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직접 읽어보지 않고, 세간의 평만 들어왔기 때문에 가졌던 편견이었다.


<오만과 편견>을 향해 가졌던 편견이 오해였음을 깨닫게 된 흐름처럼,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편견에서 하나 둘 벗어난다. 오해가 이해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해방감을 작품의 안팎에서 느꼈다.


인물을 둘러싼 사건사고를 아름답게 묘사한다. 특히 감정 묘사가 탁월하다.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한 배경, 저 사람이 저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단 근거가 풍부하기에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음에도 난잡하지 않다. 꽤 많은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처음 이야기를 펼칠 때부터 나무 위키를 참고해야 했지만 재미난 전개에 금세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행복한 결말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원했던 결말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탓일까, 대단원 구간의 대사와 문장에 형광칠하는 걸 잊고 말았다. 분명 남겨두고 싶은 위트나 해학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읽어보며 하이라이트 해놓을 생각이다.


사랑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주제가 사랑이라면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남녀관계에서 벌어지는 서사는 언제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회상으로부터 상기된 감정, 당시의 분위기가 뭉근히 떠올라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읽었다.


"내 생각에 오만은......" 이번에는 자신의 깊은 사고력에 대한 오만으로 가득 찬 메리가 나섰다. "인간에게 매우 흔한 약점이야.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에 따르면 오만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성향이야. 인간은 본성적으로 오만에 빠지기 쉽게 되어 있어. 그리고 실제건 상상이건 자신의 특성에 대해 나름대로 자만심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해. 허영과 오만은 흔히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거야. 허영이 없는 사람도 오만할 수 있어. 오만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봐주기를 원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거야." <오만과 편견, 1부 5장>


현재의 인간관계가 떠올랐다. 심려하면 할수록 명쾌하게 정리될 리 없는 이 주제를 바탕으로 여럿 습작을 남겼다.


인간은 개별적 편견을 가진다.  스스로 만들어낸 편견, 교만이야 성찰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가 가능하다. 일기를 쓴다던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가지고만 있으면 좋으련만. 편견이 편견으로 남는 것이 두려운 인간은 이것을 어느 곳에 털어버리려 애쓴다. 자신이 가진 생각이 편견이 아니란 확신을 타인에게 얻고자 한다.


골치가 아픈 건 타인이 개입된 편견, 오만이다. 이물질로 작용하기에 제 몸에 맞지 않아 딱딱하게 굳어진다. 잘못된 수혈, 맞지 않는 혈액이 몸안으로 들어와 응고된다. 굳어진 편견은 혐오로써 자리를 잡고 온전한 순환을 방해한다. 자력으로는 풀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역설적이게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편견과 혐오는 결국 소통을 통해 풀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소설에서 찾았다. 다른 초월적 힘이 개입되지 않고, 오직 말과 글로써 혐오가 묽어졌다. 나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말 한마디에 녹아내렸던 마음, 그랬던 경험이 분명 있었기 때문에 이 서사를 마냥 허구로써 볼 수 없었다.


소설은 혹자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판단하면 안 될 일인 듯싶다. 살이 맞닿는 현실 속에서, 공감의 가뭄에 살이 갈라져 피를 흘리지 않으려면 허구-를 보습제 삼아 미리 발라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소통의 장을 만들어 낸다. 인간뿐이 아니라 지구  더불어 살아가는 대부분의 존재들은 이러한 특성을 조금이나마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교류를 향한 갈망을 온전히 바라보고 표현하며 판단할  있는 도구를 가진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축복받은 존재인가! 쓰고 말할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는 축복받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일상에서도 소통을 통한 해소가 자주 이루어지기를. 같은 상황일지라도 왼쪽에서 보는 자와 오른쪽에서 보는 자의 생각이 상이하듯, 서로가 각자의 관점에서 본 자신의 생각을 말로써 글로써 나눌 수 있다면 상황을 그나마 유-하게 바라볼 수 있을 터이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도 말과 글을 통해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뤄냈다. 앞서 말했듯 소설을 통해 꼬일 대로 꼬인 인간관계, 이것을 회복할 희망을 보았고 동시에 좋은 인연을 만날 기대도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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