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사실 즐겁지 않다. 매일 달리지만, 솔직히 기분좋게 뛰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나는 무겁고 귀찮으며 대부분의 날씨는 너무 덥거나 춥거나 비나 눈이 오거나 미세먼지가 하늘 가득 뿌옇게 뒤덮는다. 더욱이 마흔을 넘긴 이 비루한 몸뚱이는 늘 어딘가 불편하고 자주 삐걱거린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관문을 나서기 전까지 머릿속에는 온갖 핑계가 가득하다. 날씨가 이러하니 내 기분이 이러하니 오늘은 쉬어도 될 것 같고, 오늘 몫까지 내일 두 배로 뛰면 될 것 같고, 하루쯤 빠진다고 세상이 무너질 것 같지 않다. 온갖 내적 갈등이 부딪히는 와중에도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무의식적으로 러닝화 끈을 묶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왜일까. 빠른 사람인 척 유의미한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지런한 사람인 척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도 아니다. 달리고 돌아온다고 해서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다시 밖으로 나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달리기는 정신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바쁘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다 엉망이 된 생각들은 땀방울이 되어 방울방울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좋았던 기억도, 나빴던 기분도, 하루를 망쳤던 짜증스러운 순간들도 지나온 길 위에 조용히 내려놓는다. 얼굴에 부딪히는 시원한 바람에 흩뿌린다. 달리고 있는 이 시간만큼은 나를 둘러싼 소란스럽던 세상이 잠시 조용해지는 시간이다. 오직 지금의 거친 숨소리와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만 남는다.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우리는 흔들리는 정신줄을 어떻게든 붙잡고 살아간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애쓴다.
달리기를 할 때만큼은 그 끈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달리고 돌아온 날은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도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아이의 억지스러운 생떼에도 한 박자 더 기다려 줄 수 있고 배우자의 폭풍 수다도 기분좋게 맞장구쳐 줄 수 있는 넉넉함이 생긴다. 일상의 사소한 뒤틀림도 웃으며 넘길 여유까지 생긴다. 지쳐서도, 힘이 빠져서도 아니다. 달리기를 통해 내 안에 쌓여 있던 날카로운 감정들을 다듬고 부정적인 찌꺼기들을 깨끗이 비워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쓸데없는 마음들을 비워내기 위해 러닝화를 신는다.
비워내야 그 자리에 좋은 것들을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