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삶의 쓴맛을 조금씩 좋아하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입맛은 참 정직하게도 변한다.
한때 그토록 좋아하던 과자와 튀김같은 달콤하고 자극적인 것들에는 이제 예전만큼 손이 가지 않는다.
대신 예전 같으면 몸서리치며 외면했을 나물 반찬이 어느 순간 맛있게 느껴진다.
인생의 쓴맛이라 불리는 술과 한약 같던 아메리카노가 어느덧 일상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그 쓴맛이 싫지 않다.
달콤함 뒤에 찾아오는 특유의 텁텁함이 없어서 좋고, 자극적이지 않아 담백하다.
입안에 은은하게 남는 잔향이 삶 속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법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달리기도 이와 닮아 있다.
처음에는 그저 다리가 아프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뿐,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나' 싶어 진다.
그 지독한 고통의 쓴맛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계속해서 길 위에 몸을 던지다 보면, 그 힘듦 속에 숨겨진 묘한 안정감을 발견하게 된다.
몸은 분명 고단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정갈하게 씻겨 내려가고, 흔들리던 하루는 조금 더 단단하게 중심을 잡는다.
고통 자체가 즐거워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쓴맛이 나를 망가뜨리는 독이 아니라, 나를 건강하게 지탱해 주는 비타민 같은 존재임을 깨달았을 뿐이다.
어른이 되며 입맛이 변하듯, 삶을 대하는 취향도 그렇게 결을 달리한다.
당장 혀끝을 유혹하는 달콤함보다 내 몸을 바르게 만드는 쓴맛을 기꺼이 고르게 된다.
지금의 정적인 편안함에 안주하기보다, 내일의 나를 버티게 할 오늘의 불편함을 기꺼이 선택하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정직한 쓴맛을 즐기러 밖으로 나간다. 신발 끈을 묶고, 기분 좋은 고통을 마주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