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가진 것

by 이스트원

“나는 신발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길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데일 카네기의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마음 한구석에서 감사함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지금까지 나 스스로를 큰 욕심 없는 사람이라 믿어왔다. 물욕도 크게 없는 편이고, 이만하면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나름대로 잘 참고 살아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 역시 사소한 욕심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달리기만 봐도 그렇다. 이미 충분히 괜찮은 러닝화를 신고 있음에도, 늘 더 가볍고 비싼 신발에 눈길을 준다. 더 좋은 장비를 갖추면 내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 같은, 근거 없는 기대를 품는다.


매일 동네 하천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매일 마주치는 부자(父子)가 있다. 아들은 휠체어에 앉아 있고, 아버지는 묵묵히 그 휠체어를 밀며 걷는다. 날씨가 흐려도, 계절이 바뀌어도 그들과 늘 그 자리에서 마주친다.

나는 신발이 조금 낡았다고, 장비가 부족해서 기록이 늘지 않는다고 투덜대며 실망하곤 했다. 하지만 휠체어에 앉은 그는 신발의 좋고 나쁨을 떠나, 그저 한 번만이라도 제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분들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내 안의 소란스러운 욕심들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숙연해진다. 그리고 어김없이 부끄러움이 고개를 든다.


마라톤 대회에서 보았던 시각장애인 러너도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길을, 가이드 러너와 연결된 짧은 끈 하나에 의지해 묵묵히 완주하던 그 뒷모습. 나는 그동안 대체 무엇이 부족하다고 한탄하고 있었던 걸까.


속도는 조금 느릴지 몰라도 내 힘으로 힘차게 내디딜 수 있는 두 다리가 있고, 길가의 나무와 호수,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두 눈이 있다. 나는 이미, 더할 나위 없이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더 가지려는 마음보다 이미 가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며 뛴다. 값비싼 신발이 아니어도, 남들보다 조금 늦은 페이스여도 괜찮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잘 달릴 수 있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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