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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양의 진주 Jan 13. 2022

필리핀 오미크론

어김없이 내 차례가 되었다

    새해 첫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청소를 하고, 그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간단히 정리해 본 뒤 출근을 했다. 첫 날인만큼 직원들과 활발하게 새해 인사도 나누고, 여느 때보다는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우리는 주간회의를 진행했다. 그 후 여러 작은 회의들을 통해 올해 예산 편성을 재정리함으로써 우리 회사는 첫 주를 맞이했고, 화요일도 비슷한 일정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루를 보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 팀원 한 명이 코를 훌쩍거렸다면 오늘은 두 명이었다. “네가 나한테 너무 가까이 와서 옮아 버렸잖아” 장난스레 투닥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는데, 수요일은 훌쩍거리던 그 둘이 병가를 내었고, 혹시나 해서 다른 팀들도 보니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리고 콜록거리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사무실 모든 직원들은 코로나 테스트를 받았고 그날은 우리 사무실 전체 인원의 3분의 1이 양성이 떴고, 목요일은 확진자가 늘어 우리 사무실 전체 인원의 반이 코로나에 걸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는 수요일은 음성, 목요일은 양성이 떴다.

    확진자에게 노출된 후

2일째 날인 수요일은 콧물이 수돗물처럼 흘러 내려서 콧물약을 바로 먹었더니 4시간 만에 콧물은 금방 그쳤다. 나는 간단한 코감기였나 싶었는데

4일째 되는 날 청소를 조금 했다고 금방 몸살 기운이 느껴졌다. 이미 매일 먹는 비타민을 먹은 이후였고, 몸살 약을 먹기에는 증상이 너무 약한 거 같아서 바로 잠을 잤는데

그다음 날 (5일째 날) 아침에 몸살 증상과 함께 내 몸은 불덩이가 되어 있었다. 체온계는 그날 저녁 뒤늦게 배달이 와 낮에는 온도를 잴 수 없었는데 저녁의 38.3도보다 낮에 몸이 훨씬 뜨거웠었다.

6일째 날 증상은 똑같았지만 열은 39도까지 올라갔고,

7일째부터 9일째까지는 대체적으로 가래가 끼는 목감기만 남은 채 금방 회복되었다.

    더 오래 아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는 이틀만 열과 몸살을 앓았다.


    코로나 백신을 맞고 아팠던 날을 다시 회상해보자면, 우리는 오후 2시에 대기하여 3시에 '얀센'을 맞았다. 한 번만 맞으면 된다는 생각에 기뻐 자신 있게 '얀센'을 맞았는데 저녁에 있었던 일이 충격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동생과 나는 평소와 같은 일과를 보내는데 저녁 8시쯤부터 동생은 추위를 느끼고 두통이 있다고 했다. 나보다 체력이 더 약한 탓이라며 동생에게 진통해열제인 paracetamol을 먹이고 잠을 재운 후 나는 살짝 추위를 탈 때쯤 '잠자면 낫겠지' 싶은 심정으로 저녁 11시쯤 이불을 둘러싸고 잤다.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은 새벽 1시쯤 나는 꿈에서부터 내 열이 37도에서 38도, 38도에서 39도, 39도에서 40도까지 올라가는 걸 감지하고 약을 먹지 않고 그냥 자면 열이 더 오를 것 같아 얼른 일어나 약을 먹었다. 그다음 날 일어나 약을 한 번 더 먹고 국도 끓여 먹고 집 청소를 하며 몸을 움직였더니 오후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금방 회복되였었다. 백신을 맞은 날밤 서서히 뜨거워지는 내 몸을 느낀 나는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이러니 주위 사람들은 나서서 부스터 샷을 맞으려 해도 나는 맞기가 싫다. 물론 백신은 중병이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맞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백신도 맞지 않고 나보다 몸이 더 약한 사람도 코로나에 걸렸을 때 나와 같은 증상만 보이다 회복했다. 더욱이 3번째 백신인 부스터 샷을 맞으면 미래에 (장난인 것 같지만, 사실일지 누가 아나) 19번째 혹은 24번째 백신까지 맞아야 할 것 같아 1번째에서 끝내고 싶은 마음이다. 더군다나 백신을 맞고 부작용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섭기도 하지만, 백신을 맞은 팔뚝에 티스푼을 붙여보면 붙는다는 말이 더 무서웠다. 좌석 덩이가 박힌 내 몸이 그렇게 로봇 같은 존재로 변하는 건가 싶고, 백신을 맞는 일 자체가 누군가가 나를 컨트롤하게끔 내버려 두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필리핀이 한국만큼 부스터 샷을 강요하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우리 콘도 경비원들도 내가 코로나에 걸린  알아챈 모양이다. 음식 주문을  후에 배달이 오면 직접 로비로 가지러 내려가는  우리 콘도의 시스템인데, 오늘은 경비원이 내가 주문한 음식을   앞에 갖다 놓아줬다. 콘도 관리자들이 내가 코로나에 걸린 사실을 알고  정부에 신고를  격리시설로 보낼까  따로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름 조용히 자가격리를 하며  일을 만들지 않으려 했으나, 생각해보면 의도치 않게 내가 너무 아픈 사람 티를 많이 내긴 했다. 토요일 저녁에는 직원한테 체온계를 부탁해 배달해라고 했더니 포장을 하지 않은 채로  체온계만 콘도로 보냈고, 배달부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내려가지   내가 로비에 도착했을 때는 경비원이 나와 가까이하기 싫다는  체온계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가져가라고 했다. 일요일 오전에는 어느 이모가 보내주신 과일과 약을 받으러 내려갔는데, 들고 올라가는 길에 포장된 꾸러미가 터지는 바람에 과일과 약이 바닥에 굴러 떨어졌고 경비원이 같이 주워 주면서  뭉치를  듯하다.


    어제부로 나는 8일 동안 혼자 있으며 자가치료를 한 것이다. 원래 먹지도 않던 아침을 약을 먹기 위해 차려 먹고, 원래 하루에 두 끼 먹던 것을 매일 세끼씩 꼬박 챙겨 먹으며 아프지 않을 때보다 훨씬 이것저것 잘 챙겨 먹은 것 같다. 아침밥을 먹고 비타민, 목감기약, 코감기약, 해열제, 등 총 7 알을 먹기도 하고, 평소에 잘 찾지도 않던 과일을 하루에 세 종류씩 먹기도 했다. 열이 펄펄 끓던 첫날은 특히 정말 하루 종일 먹고, 자기만 했다. 그다음 날들도 증상이 매우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푸-욱 쉬었더니, 놀랍고 감사하게도 나는 벌써 코로나에서 나아버렸다.


    전 세계 인구의 80%는 한 번씩은 다 코로나에 걸릴 것이라는 팬데믹 초기의 예언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오미크론 변이가 필리핀 하루 확진자 수를 약 열흘만에 (12월 29일에서 1월 9일) 679명에서 33,083명으로 올려놓은 것을 보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주위에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이 앓아누웠다는 소식을 들으며, 뻔한 숫자 놀이일 것이라 생각했던 이 통계가 현실적으로 와닿았고, 내 바로 옆사람, 그리고 나까지 확진자가 되면서 실제 환자들은 정부가 말한 확진자 수보다 훨씬 많을 것은 당연하며 이번에는 코로나도 큰맘 먹고 모든 사람들을 거쳐가려 한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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