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와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전에 가봤던 S 대학교 교정을 잠시 들렀다. 중학교 2학년 때 마지막으로 갔었으니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땐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쓸어 담으며 S 대학의 성당 앞 타일에 놓아져 있던 숫자 <18> 옆에서 찍었던 사진이 기억난다 (18은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해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마냥 기분 좋게 사진을 찍던 그 모습은 이제는 아련함을 넘어서 정말로 일어난 일이었나 의문점이 들 정도로 아득하다.
결국 살아간다는 건 (시간이 지난다는 건)
과거의 일들이 희미해지다 못해 애초부터 없었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기억한다는 건 (시간을 지나간다는 건)
앞서 말한 희미함에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다. 그게 뭐가 됐든, 악착같이 더 선명하게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오늘 같은 날, 갑자기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만나는 접점에서
우리는 얘기한다. 아, 나는 더 이상 네가 아니고, 너는 내가 누군지 아예 모르겠지만,
동심의 세계에서 우리는 오래된 벗을 맞이하듯이 만나는구나.
나는 참 멀리 갔고 남겨진 너의 기억을 지우려 일부러 해상도를 높이지 않았건만
너는 꼼짝도 안 하고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너 말고 수많은 '내'가 나의 기억이 지나간 자리를 하릴없이 지키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걷는 길이 고단하고 어둡게 느껴질 때, 나는 너를 만나러 가겠다. 오늘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만남으로 하여금 너와 나의 존재는 긍정될 것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날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될 거라고 믿었던 적이 있지.
하지만 방에 나를 가둬놓고 시간이 지나가기 만을 기다리고 있네.
기억은 항상 나를 비켜가려고 한다.
긁적긁적, 머리를 긁는다.
꿈에서 깨는 당신의 눈썹에 입 맞춘다.
멀어져 가는 내 기억이 한 때는 야속했지만 이제는 놓아주려 한다.
그들은 내가 전생에 쓴 글들 속으로 귀환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나에게 말을 걸 확률은 낮아진다.
우리의 연결 고리는 느슨해져만 간다.
기억이 나지 않아 나에게 이별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