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손이 베였다. 아니 내 손으로 베어 버렸다. 양배추 끝자락이 붉다.
붉은 무언가를 보고 나서야 아픔을 인지한다. 피, 피를 가만히 지켜 보다 “아 지혈을 해야지”
쏴- 쏴 쏟아지는 물줄기 두 손을 갖다 대었다. 물의 온도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피를 멈추고 싶을 뿐.
아, 아릿한 고통이 한 박자 늦게 찾아 오고 마른 수건으로 엄지를 감싼채 누워 본다.
다친 손을 높이 올리어 냉장고의 벽에 갖다 댄다. 심장 보다 높이 들어야 한댔다. 분명.
멍하니 누워 있으니 20분이 흘렀다. 팔을 든 것 빼고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
생소하다.
내일 도시락 반찬도 싸야했고 저녁으로 국수도 삶아야 했으며, 저녁 운동도 해야 했다.
이 모든 걸 마무리하고 아홉시에 잠드는 일, 그게 오늘의 계획이었는데.
그런데 아무 것도,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았다. 갑자기 음소거 된 듯 조용히 차분히.
피, 피를 내야만 멈춰지는 구나. 나의 하루를 멈추게 하는 건
해야할 일들에 치여 터져 버린 응어리이었다.
손, 손을 베었다. 내 손으로 베어 버린 상처에 밴드를 바른다. 하얗게 번지는 연고.
굽히고 펼 때마다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 두-어번 움직여 본다. “다시 할 일을 하자”
피, 피가 묻는 양배추를 하나씩 정리한다. 다시 할 일을 한다.
흘러가는 일상을 멈출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