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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Jun 09. 2024

어학당, 남는 자와 떠나는 자

못하는 것과 잘 못하는 것의 차이

어느새 3개월 코스인 베트남어 중급반 회화 수업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작은 키에 긴 머리의 타오 선생님은 오늘도 샤랄라 한 원피스를 입고 왔다. 내가 수업을 자주 빠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참석한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이 같은 옷을 입고 온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가방도 늘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다. 반면에 타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가장 많이 이름을 부르는 학생인 일본인 히로는 다른 옷을 입고 온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거의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아마 비슷한 옷이 여러 벌 있을 것이다. 직장을 마치고 바로 어학당으로 오는 30대 초반인 타오는 늘 흰색의 반팔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는다. 검은 뿔테 안경까지 쓰고 있는 그는 딱 성실한 직장인 느낌이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걸으면서 히로에게 베트남에서 제일 맛있는 일본 라멘집을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망설임 없이 한 식당을 소개해준 적이 있다. 왠지 그가 맛있다고 하면 정말 맛있을 것 같았고, 거기서 진짜 맛있는 쯔케멘이라는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히로와 비슷한 이미지의 필리핀 사람 엘레나도 히로와 마찬가지로 수업을 거의 빠지지 않는 성실한 학생이다. 30대 후반인 그녀는 베트남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는데, 본인의 영어 수업을 마치자마자 어학당으로 오면 시간이 꽤 남기 때문에 늘 가장 빨리 교실의 문을 열고 에어컨도 켜놓는 모범 학생이다. 목소리가 작은 엘레나는 저 목소리로 학생을 가르칠 수 있을까 싶긴 한데, 목소리 작은 것과는 별개로 말 자체는 엄청 많기 때문에 그녀가 가르치는 영어 수업의 학생들을 달달 볶는 스타일 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엘레나는 타오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본인이 다 대답하고 싶어 한다. 단점은 목소리가 작아서 선생님이 있는 곳까지 잘 안 들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내가 그녀의 대답을 인터셉트해서 타오 선생님에게 전달해주곤 한다. 


그리고 사업가인 홍콩 사람 마이크도 있다. 40대 후반에 약간 통통한 마이크는 그냥 딱 부자일 것 같다는 느낌을 풍긴다. 청바지에 여러 종류의 티셔츠를 번갈아 입고 다니는데,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다 비싼 브랜드일 것 같고, 거의 매일같이 브라운 계열의 가죽 로퍼를 신는다. 짧게 깎은 머리에 반짝이는 금속 재질의 시계를 차고서 중저음의 목소리로 허허허 하고 웃으며 영어를 멋지게 해 대는 모습을 보면 그냥 중국 부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다. 아마 가까이서 보면 웃을 때 어금니에 박힌 커다란 금니를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티셔츠 안에는 금으로 된 굵은 목걸이도 있을 것이다. 구찌 클러치백에 필기구를 넣어서 다니는데, 아무래도 가짜가 아닌 진짜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히로, 엘레나, 마이크는 오늘의 마지막 수업 이후에 시작되는 다음 코스 등록을 완료한 학생들이다. 나와 콜롬비아 사람인 까밀로, 그리고 캐나다 사람인 닉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타오 선생님은 일단 세 명이 등록을 완료했으니 다른 반과 합쳐지지 않고 우리 반 그대로 수업을 이어서 진행할 수는 있다고 했다. 다음 단계인 중급 교재의 두번째 과정 수업은 최소 3명이 등록해야 하는데, 이미 그 조건은 충족된 상태라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나머지 학생들도 이번주 안으로 신청하면 바로 우리 반으로 합류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타오 선생님 본인이 우리 반을 계속 맡아서 할지 여부는 어학당 본부에서 정하는 것이라 알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아직 등록을 망설이고 있다. 이번 학기 중에 세무조사를 받고, 여러 출장 일정들이 생기면서 거의 50%는 수업을 빠진 것 같아서 그렇다. 그래도 베트남에 오래 산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아직까진 수업을 빠져도 진도를 따라가는 데는 별 문제가 없긴 했지만, 갈수록 교재의 내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수업을 듣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한번 빠지면 다음 수업도 빠지고 싶어지고, 일이 늦어지면 그 핑계로 아예 결석을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유혹을 이기고 어떻게든 수업에 나오면 그래도 재밌다는 것이다. 


타오 선생님의 멋진 베트남어 필기(베트남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글자를 잘 쓰는 것 같다_개인적인 생각)


과거에 내가 공부하던 베트남어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초급반을 거쳐 중급반으로 넘어갔다가 끝내 중급반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 포기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저녁시간에 있는 베트남어 초급의 첫 기초반 경우에는 3~4개의 클래스가 열리지만 중급으로 가면 1~2개로 줄어들고, 중급이 끝나는 고급반으로 가게 되면 반이 없거나 한 개 정도 남는다. 이렇게 반이 없어지는 경우에는 선생님과 일대일 과외로 수업을 듣는 경우가 있다고 듣기는 했다. 고급반까지 남게 되는 이들이 같이 수업 듣던 다른 사람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서 남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초반에서 포기하지 않고 남아있다 보면 계속하여 윗반으로 가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나의 경우에 이런 식으로 중간에 포기해서 실력을 높이지 못한 경험이 몇 번이었던가를 떠올려 본다. 그만두지 않고 계속했더라면 나의 수영실력은 어떻게 되었을 것이고, 나의 다른 외국어 공부는 어찌 되었을지 잠깐 궁금해지기도 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 베트남에 살면서 베트남어를 배우기 최적인 상태에 있는데, 배우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 베트남어 회화의 중간 레벨에 와있다. 일이 끝나고 이렇게 수업을 다니며 무언가 배운다는 것이 나를 조금씩 더 괜찮은 것으로 채워 간다는 느낌이 든다. 거창하게 베트남어를 마스터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서 베트남어를 계속하여 배우더라도 결국엔 잘 못하게 될 수 있지만, 그래도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다음 주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베트남어 다음 코스에 등록하게 되었다. 나는 히로, 엘레나, 마이크와 함께 새로운 수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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