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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Jun 02. 2024

알파벳으로 쓰는 서예

자기식으로 바뀌는 곳

베트남어를 배우다 보면, 한국어와 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이 많다. 베트남어로 홉신(Học sinh)이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학생, 베트남어로 유홉(Du học)이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유학이라는 뜻이다. 그 외에도 중국이라는 나라는 베트남어로 쭝꿕(Trung Quốc), 또 한국은 베트남어로 한꿕(Hàn Quốc)이라 부른다. 결국엔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어에서 유래한 단어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사람의 이름도 보통 성 한 글자에 이름 두 글자 또는 세 글자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이름 중 제일 끝의 글자 하나만 부는 것이 보통이다.


베트남 글자는 17세기 초, 프랑스의 한 예수회 선교사에 의해 로마자 알파벳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고, 이를 기반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20세기 초에 현재의 글자로 정리되었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글자라서 그런지 쓰인 대로 읽으면 되는 것 같고, 발음대로 적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발음기호 자체가 글자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특이한 것은 한 음절씩 끊어서 글을 쓰는데, 한국어로 '베트남'이라고 쓰는 글자는 영어로는 'Vietnam'이라고 적지만, 베트남어로는 'Việt Nam'이라고 쓰는 식이다.


이렇듯 베트남에선 알파벳으로 된 글자를 쓸 때도 음절을 구분하여 적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베트남 거래처가 미. 라. 노.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해서 그곳에 도착했더니 간판에 Mi La No라고 세로로 한 음절씩 적혀있었다. 이탈리아 국기와 함께 인테리어 되어있는 곳이었으니, 아마도 이탈리아의 도시인 밀라노(Milano, Milan)를 한 음절씩 적은 것 같다. 또 베트남 동네마다 있는 노래방(가라오케)도 한 음절씩 Ka Ra O Ke라고 적혀있는 곳을 볼 수 있다. 


베트남의 어느 노래방 간판(구글 이미지 검색)


이렇게 한 음절씩 적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마도 중국 글자로 한 글자씩 적던 것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에는 어학당에서 타오 선생님이 베트남어로 된 서예(트팝, Thư pháp)를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며 본인의 휴대폰으로 이를 검색해서 보여주었다. 서양 학생을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알고 있었고, 나도 베트남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다 보니 당연히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글자였다. 베트남도 중국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서예 문화가 있고, 이를 한 음절씩 베트남 글자인 로마자 알파벳으로 적기 때문에 조금 더 색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좋은 글귀를 사자성어와 같은 방식으로 적어서 집이나 사무실에 걸어두기도 하고, 베트남 최대 명절인 설날에는 멋있는 글을 선물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 풍습인 것 같다. 대형 쇼핑몰 같은 곳에서는 아예 서예가를 초청하여 서비스로 좋은 글귀를 써서 손님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우리 회사의 연례행사 때도 글씨를 써주는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서 다음에도 서예가를 불러 한번 더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회사 행사에서 내 이름을 써준 베트남의 서예가


나도 그 행사에서 붓으로 쓴 내 이름을 받았는데, 알파벳을 어쩜 이리 멋있게 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한껏 기교를 부린 것이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우리 회사의 고객들인 베트남 사람들은 본인 이름이 아니라 주로 사자성어 같은 좋은 글자들을 베트남어로 받아 들고나갔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는 반스늬이 같은 글자(vạn sự như ý, 萬事如意), 그리고 복이라는 뜻의 푹(phúc, 福)과 같은 글자들이 인기가 많은 것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외부의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멋있고 예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는 분들도 호텔 같은 곳에서 하는 회사 행사에 초청하면 정말 패션잡지에서만 법한 드레스를 입고 오는 것은 기본이고, 회사 직원들도 결혼식장이나 어떤 파티 같은 곳에 참석할 때는 내가 알던 직원이 맞는가 싶은 정도의 과감한 의상을 입고 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격식을 차린 행사에선 수프와 샐러드로부터 시작해서 스테이크나 생선요리와 같은 메인코스로 이어지는 음식의 순서를 지키는 것도 외부(프랑스)에서 받은 영향을 본인들 식으로 받아들인 같다는 생각을 한다. 참고로 수프는 숩(súp), 샐러드는 쌀랏(xa lát), (비프) 스테이크는 빗뗏(bít tết)이라는 베트남어가 따로 만들어졌을 만큼 이러한 코스는 일상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 프랑스로부터 여러 영향을 받은 베트남은 자기식으로 그들의 문화를 일부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요즘 들어 베트남은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한국식 치킨과 떡볶이 가게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한국 노래와 춤에 빠진 학생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벌써부터 베트남 사장이 운영하는 치킨집과 떡볶이 가게들이 생기고 있고, 체인점도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앞으로는 베트남 식으로 변화된 한국의 문화가 우리의 눈에 어떻게 비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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