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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이면 110kg이 되지요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

by 맑은돌

"자! 이 정도면 110kg 정도 돼 보인다. 그렇지?"

얼굴에 쓴 커다란 산업용 마스크 밖으로 울리는 강사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중이다. 마스크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크지 않고 돼지가 내는 소리는 시끄러워서 더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막 출하를 앞둔 돼지들이 모인 비육돈사에 들어와 있다. 이곳의 각 돈방에 있는 육중한 돼지들은 끼윽끼윽 소리를 내며 시멘트 바닥에 코를 대고서 킁킁거리고 있다. 이제는 나에게도 익숙해진 돼지의 살냄새, 분변냄새가 눈만 빼고는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는 3M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


"이 중에 축산학과 나온 사람 누구야? 그래, 너 좀 경력이 있다고 했지? 어때? 네가 이거 한번 잡아볼래?" 회사의 선배이자 오늘의 강사로 우리 앞에 서있는 사람의 말에 다들 지목을 피하려 했지만, 우리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대학원 졸업생이 지목되었다. "네, 제가 이전에 도축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힘을 쓰고 소리를 지르며 억지로 돈사 밖으로 끌려 나온 돼지는 정수리에 쇠말뚝이 박혀 죽었다. 죽기 전까지 정말 죽을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쩡'하고 쇠말뚝에 해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자마자 퍽하고 쓰러졌다. 머리가 잘리고 배가 갈라져서 피를 쏟아냈다. 양동이에 붉고 끈적이는 뜨거운 피를 받아내고, 갈라진 배 사이로 창자니 심장이니 하는 내장들이 보였다. 장갑을 낀 손으로 따뜻하게 김이 나는 내장을 하나씩 꺼내며 설명하는 강사의 표정을 보았다. 충격을 받은 내 표정과 대조되는 것이었다. 아직 장기들은 살아있는 듯이 꿈틀댔다. "난 이제 삼겹살 안 먹으련다." 나와 대부분의 입사 동기들은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허가받지 않은 도축은 할 수 없다. 벌써 20년이 넘게 지난 일이다. 대학교 4학년이던 시기에 나는 사료회사라는 곳에 입사했고, 함께 입사한 십여 명의 동기들과 회사 소유의 양돈장에서 집체교육을 받고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동기들은 축산학과나 관련된 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장면이 어느 정도는 익숙했을 수 있다. 내가 이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듯, 그들 역시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축산회사에 입사한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처음으로 돼지가 죽는 것을 내 눈으로 관찰하던 이 날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날 다짐했듯 이제 삼겹살을 먹지 말아야겠다는 식의 결론을 낼 수는 없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여전히 맛있게 육식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건강하게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산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먹고 있고, 또 단순히 먹는다는 것을 넘어 그 맛을 즐기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식재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어디에서 오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나도 회사에서 일을 하기 전까지는 알고자 하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이를테면 우리가 늘 먹고 있는 돼지는 태어난 지 6개월 정도에 110kg이 되어 도축된다든지, 어미 돼지인 모돈은 일 년에 두 번씩 임신을 해야 한다든지, 그러지 못하면 도축될 운명이라든지 하는 얘기. 그나마 돼지는 나은 편이고, 닭 같은 경우에는 병아리로 태어난 지 1개월이면 도축된다는 얘기들부터 말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누구도 그 근원을 알지 못하는 신기한 구조의 산업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불쌍하게만 바라보아야 하는가?라는 얘기도 해야겠다. 이른바 동물 복지에 대한 얘기까지 해보려고 한다.


재무담당으로 이 업계에 들어와 나중엔 해외 사업장 하나를 총괄하는 일까지 하게 되었으니 업계에서는 드물게 비전공자로 20년 이상 축산 현장의 일을 한 셈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축산업을 경영하는 대부분의 경우, 축산이나 수의를 전공한 사람들이 사업을 관리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외부인의 눈으로 바라본 농장과 우리가 먹어야 하는 동물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여러분이 처음 이 내용을 알게 되었듯 나도 그리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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