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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Jul 30. 2021

면접자가 물었다. 소개팅하실래요?

베트남에서의 직원 채용

지난 몇 주 동안 총무 매니저와 주말마다 출장을 다녔다. 나야 그렇다고 해도, 총무 매니저는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무슨 고생인가 싶다. 빨리 통역 직원을 뽑아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채용 공고를 올려뒀는데, 이제 제법 여럿의 지원자가 생겼다고 한다. 


함께 며칠씩 출장 다닐 직원이 필요한데, 가급적이면 ①남자일 것, ②한국어를 할 것. 이 두 가지가 우선 조건이다. 그리고 그것이 안되면 ③영어를 할 것, 마지막이 ④여자일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총무팀에서 가져온 지원자 명단을 보니, 90%가 여자고, 80%는 영어를 한다고 돼 있다. 뭐 어쨌든 면접을 보고 나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일단 한국어를 한다고 하는 사람, 또 남자인 경우에는 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을 돌렸다. 전체 10명을 추려서 면접을 보기로 했는데, 보통 면접을 보러 다 오지는 않는다. 이번에도 면접 당일에 온 사람은 5명뿐이다. 남자는 1명이고, 한국어를 하는 사람은 이 남자를 포함한 2명밖에 없다. 


일단,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남자 면접자와 첫 대면을 했다. 이력서에 쓰여있기를 호치민의 작은 한국어 학원에서 강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한국어로 물었다.


"안녀하시효." 발음이 좀 이상하지만, 뭐 알아들을 수 있다.


"자기소개 먼저 해볼래요?"


"자기?"


"자기소개. 몰라요? Please introduce yourself."


"아! 자기소키 아라요. 나는 부모님이란... 부모님콰 사... 살코 있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더듬대고 있다.


'우와~ 이건 뭔 자신감으로 통역 면접 보러 온 거지? 한국어 강사 했던 거 맞나?' 아무래도 검증 안된다고 그냥 써놓기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게 평가를 해보려고 해도, 내가 베트남어를 반년 정도 배우면 이 친구가 지금 하는 한국어보단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여자 지원자는 원하는 급여가 너무 많다. 이 급여면 매니저급 1.5명을 뽑을 수 있는 금액인데, 이 면접자는 이제 사회경력이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선 뽑기 어려워 보인다. 


이어서 영어로 지원한 2명의 여자 면접자와 인터뷰를 했다. 오히려 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실력이나 원하는 급여가 합리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회사와 집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주저하고 있거나, 출장을 매주 나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제 마지막 5번째 면접자다. 원래 오기로 한 시간보다 늦게 회사에 도착해서 면접 순서도 앞쪽이었는데, 맨 뒤로 밀렸다. 한국 같았으면 면접을 보지도 않았을 텐데, 워낙 사람 뽑는 게 급하다 보니 바로 내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호주 회사에서 통역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본인 집에서 우리 회사가 더 가까워서 지원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영어 실력은 오늘 면접 본 사람 중에 가장 좋은데 면접 보는 태도가, 뭐랄까 너무 편한 자세로 면접을 보고 있다.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건 뭐 그러려니 하겠는데, 자기소개하는 중에 손가락으로 V 모양을 만들어서 접었다 폈다도 하고 또 슬쩍 윙크를 하는 것도 본 것 같다. 아무래도 오늘 본 사람 중에서는 뽑기 힘들 것 같다. 아무튼 면접 참석해 줘서 고맙다고 하고, 나가도 된다고 했다. 


"질문 하나 해도 되나요?" 면접자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네, 어떤 게 궁금하시죠?"


"베트남 여자 친구 있으세요?"


"네? 뭐라고요?"


"제 친구가 한국인 남자 친구 만나고 싶어 하는데, 소개해 드리려고요."


깜짝 놀랐다. 문화 차이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럴 리가 없다. 내 옆에 앉아 있는 베트남인 총무 매니저도 어이없단 표정인걸 봤기 때문이다. 총무팀에서 나중에 채용 여부 안내할 거라고 얘기하고 나가도 좋다고 했다. 나가면서도 웃으며 한마디 하고 나간다. "혹시 채용 안되더라도, 식사 한번 하게 연락 주세요."


총무 매니저 롱(Long)한테 다시 한번 확인했다. 베트남에선 이런 상황이 일반적인 경우인지. 매우 이상한 경우라고 대답한다. 다행이다. 이런 경우가 여기서도 이상한 거라고 대답해 줘서.



코로나 이전의 베트남은 실업률이 한국의 절반 보다도 낮은 2.0% 수준을 보이던 나라다. 특히 외국어를 할 수 있으면 원하는 연봉을 받으며 이직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가끔은 이렇게 면접을 가볍게 생각하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입사를 위해 면접 보던 때가 생각난다. 이력서를 넣고 서류 합격할 때까지 거의 매일 기도하며 잠들었다. 면접 당일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그렇게 연습했던 면접 예상 질문을 읽고 또 읽으면서 외우길 반복했고, 면접 시간 전에 회사에 도착해서 청심환을 먹고 면접장에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물론 베트남에서도 진지하게 면접에 참석하는 사람이 다수이지만, 이렇게 소개팅을 하자는 면접자가 있기도 하다. 한국에선 이런 면접자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0'이겠지만, 취업이 잘되는 베트남에선 적은 확률로 만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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