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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Aug 10. 2021

베트남 직원에게 듣는 한국 사람 이야기

조금은 느긋하게

한국어를 하는 남자 통역 직원을 뽑기가 그렇게 어려웠는데, 의외로 쉽게 채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는 형님이 한국으로 복귀하면서 소개해준 베트남 직원을 채용하게 된 것이다. 원래 그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서 편하게 요 몇 주간 함께 출장을 다녀올 수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할 계획이다. 우리 회사에는 통역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통역 말고도 두 명이 더 있다. 생산팀의 끄엉(Cuong)이라는 남자 직원은 한국에서 산업연수생으로 근무해 본 경력이 있어서 한국어를 좀 할 수 있고, 회계팀의 마이(Mai)라는 여자 직원은 한국어 학과를 졸업했다. 새로 들어온 통역 직원 투(Thu)까지 세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나왔다. 회사 근처에 있는 베트남 식당으로 가기로 했는데, 염소 요리를 파는 식당이다. 


베트남에는 숯불에 구워 먹거나 찜기 위에 올려놓고 쪄먹는 염소 요릿집이 동네마다 많이 있다. 탕이나 카레 소스를 넣은 방식으로 요리한 것도 즐겨 먹지만, 오늘은 숯불구이와 찜으로 먹기로 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쫄깃하고 꼬들꼬들한 염소의 껍데기 씹히는 식감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식당 오랜만에 와본다. 작년에 끄엉(Cuong)이 소개해줘서 왔었잖아. 그렇지?" 생산팀 직원에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사장님 염소고기 좋아하시잖아요. 헤헤헤" 끄엉(Cuong)이 웃으며 날 쳐다본다. 끄엉(Cuong)은 나한테 말할 때마다 거의 웃는 투로 말을 끝낸다.

 

"그치. 베트남 음식 종류가 너무 많아서 어떤 건 적응이 잘 안 되는데, 그래도 이건 한국사람 입맛에도 괜찮은 것 같아." 이렇게 끄엉(Cuong)에게 얘기하며 맥주를 한잔 따라 주었다. 두 손으로 잔을 잡고 계속 웃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편하게 행동하라고 해도 그는 잘 고치지 못한다.


끄엉(Cuong)이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나갔을 때, 비닐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그곳의 사장은 항상 큰 목소리로 업무를 지시하곤 했는데, 끄엉(Cuong)이 한국어 말귀를 빨리 알아듣지 못한다고 종종 구타를 한 모양이다. 끄엉(Cuong)이 천천히 걸을 때는 표가 잘 나지 않지만, 그는 잘 뛰지 않는다. 한국 사장한테 몽둥이로 정강이를 맞을 때 부러진 다리가 제대로 치료되지 않아서 조금 불편해진 다리로 베트남에 귀국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들어온 이후에도 한국 사람과 대화할 때는 항상 말끝을 웃음소리로 끝내고 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새로 들어온 통역 직원에게 끄엉(Cuong)의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국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고. 그리고 물었다. 투(Thu)는 이런 경험이 있었는지. 그 역시 있었다고 한다. 대학교 졸업 후에 한국 회사에서만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그중 한 회사의 상사가 시끄러운 공장에서 지시한 업무를 잘 못 알아듣겠어서 다시 물어봤다는 이유로 공장 벽에 걸려있던 안전모로 뒤통수를 맞았다고 한다. 그때 피 흘리며 병원에 갔었고, 그 후 다른 한국 회사로 옮겼다고 한다.


"뭐? 아니 투(Thu)도 이런 일이 있었어?"


"네, 제 친구들도 이런 경험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하고 일하면 이런 일 많이 있어요." 투(Thu)가 대답한다.


"마이(Mai)는 이런 거 없었겠지?"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마이(Mai)에게 물었다.


"네, 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국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이런 얘기 종종 합니다."


"그래? 이런 일들이 많아?"


"네, 제 친구들은 한국 상사들은 다 무섭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야 그러면서 사장님 페이스북도 보여줬습니다."


"하하하. 내 페이스북은 왜 보여줘?"


"베트남 직원들이랑 잘 어울리는 사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하."


"친구들이 뭐래? 사장님 잘 생겼다고 하지?"


"하하. 아니요. 친구들이 사장님 사진 보더니, '너네 사장님은 종교가 있는 사람이라 착한 거'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한국 상사들은 무섭다고 합니다."


"와~ 진짜야? 그래도 너네들이 날 나쁜 사장으로 안 봐줘서 고맙다."

"사장님은 대신에 시말서 많이 받아가시잖아요. 헤헤헤." 끄엉(Cuong)이 나한테 말을 건다. 


"하하하. 시말서라는 말도 아네? 그렇긴 하지. 내 서랍이 직원들한테 받은 경위서로 꽉 찼어." 그래도 처음보단 끄엉(Cuong)이 나를 편하게 생각해 주는 것 같다.




베트남에서 일을 하는 것은 한국에서 하는 것과 같을 수가 없다. 한국 사람들과 일하던 때의 속도나 반응을 생각하고 업무 지시를 하면 여간 속이 터지는 게 아니다. 본인의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라면 유사한 일이라고 해도 함께 처리할 융통성이 없다는 점에서도 큰 차이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번 더 좌절을 겪게 된다. 뭐든 빨리 해야 되는 한국 사람과 본인의 업무 범위까지만 하려는 베트남 사람, 그리고 잘 통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까지 만나서 대환장 파티를 연출하는 것이 베트남에서의 직장 생활이다.


이렇게 해외에서의 근무가 힘들긴 하지만, 이들과 함께 일하지 못한다면 결국 떠나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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