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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Jul 06. 2021

마이는 매화

쓸데없는 얘기

베트남에 있는 한국 회사다 보니까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직원들도 많고, 한국어 학과를 졸업한 뒤 들어온 직원들도 있다. 그중 호찌민 대학교 한국어 학과를 막 졸업한 뒤 회계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마이(Mai)라는 여자 직원은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 대학교를 막 졸업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고등학생처럼 보인다. 처음엔 슈퍼주니어를 사랑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중 이특을 제일 좋아해서 책상엔 이특 사진이 붙어있다. 해리포터의 주인공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엠마 왓슨의 사진도 이특 옆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아직 한국에 다녀온 적이 없지만 언젠간 꼭 가고 싶어 하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어느 부서의 직원이 아닌 온전한 통역원으로 근무 싶어 한다. 또 집에서 우리 회사까지 오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어마 무시한 직원이다.


하필 베트남에 발령받자마자 세무서에서 세무조사를 나왔다. 회계팀 직원들과 세무 이슈에 대해 힘겹게 의사소통하고 있는데 그나마 마이(Mai)가 도와줘서 조금 수월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중이다. 기특하게도 마이(Mai)는 회계 용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 회계 관련 서적을 보면서 매일같이 전문적인 단어들을 익히고 있었다.


베트남 세무서 공무원들은 세무 서류를 들여다보는 시간보다 식사하는 시간이 더 많아 보인다. 일단 밥을 먹으러 나가면 그날 업무는 그 시간부로 종료된다. 식사 시작과 함께 술이 들어가고 그러다 보면 밖은 어둑해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회사에 들어온 중년의 남자 공무원 두 명은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자고 그런다. 그 밑에 막내 여자 공무원 한 명은 윗분들이 시키는 대로 우리 직원들한테 일정을 통보해주고 있다. 우리도 회계 매니저와 나, 그리고 마이(Mai)가 함께 나가기로 했다. 오늘은 점심시간부터 업무가 종료될 예정인가 보다.


"마이(Mai), 오늘은 점심에 뭐 먹자고 한대?"


"오늘은 짐승들을 먹자고 해요."


"짐승? 무슨 짐승? 동물 얘기하는 거야?"


"동물인데, 키우는 것이 아니라 들판에 사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저도 잘 모릅니다."


뭐지? 뱀 같은 거 먹으러 간다는 건가? 제발 이상한 음식이 아니길 기도하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공무원들이 미리 예약해서 준비되어 있는 음식은 참새구이다. '헐, 참새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맨몸으로 누워있네. 그래도 내가 잘 먹어줘야지 세무조사에 도움이 되겠지?'


"마이(Mai), 마이(Mai), 이건 어떻게 먹는 거야?" 반짝거리는 동그란 스테인리스 의자에 앉으며 조용히 마이(Mai)에게 물었다.


"저도 처음 봤습니다. 공무원들 먹는 대로 먹으면 됩니다." 마이(Mai)도 조용히 대답하며 앉았다.



공무원들이 먹는 대로 손가락만 한 참새를 라임즙을 섞은 소금에 찍어서 통째로 씹었다. 머리가 오독하고 씹히는 소리가 나고 가느다란 발가락도 씹히는 것 같다. '와~ 이거 뇌 터지는 소린가? 뭔가 발가락도 느껴지는 것 같아. 아...... 이거 맨 정신에 먹기 힘들겠다. 술 몇 잔 마시고 시작해야겠어' 그렇게 얼음을 탄 타이거 비어를 한잔 마시고 나니 좀 괜찮아진 것 같다.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만큼 맛없진 않아. 그리고 내가 잘 먹으니까 얘네들도 좋아하는 것 같고.' 계속해서 공무원들은 나의 신상을 묻고 있다. 그리곤 자기네들끼리 무슨 얘기를 하는지 엄청 웃어댄다.


"마이(Mai), 이건 왜 통역 안 해줘? 이 사람들 무슨 말 하고 있는 거야?"


"어...... 그들은 서로 쓸데없는 얘기 하고 있습니다."


"뭐?"하고 뻥진 표정으로 다시 마이(Mai)를 쳐다봤다. 안 그래도 검은 얼굴이 더 빨개진 채로 계속 참새구이를 씹고 있다.


"What are they talking about?" 공무원들과 함께 웃고 있는 우리 회사 회계 매니저에게 물어봤다. 그녀는 우리 회사에서 근무한 지 10년이 넘는 여자 매니저이다.


"They're talking very sexual jokes. I can't explain to you." 그녀가 대답했다.




마이(Mai)는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성실하게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 집에서 회사까지 4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호치민 외곽에서 불편한 다리로 오토바이를 타고 호치민 시내로 나와 통근버스를 탄다.


"마이(Mai), 베트남 사람들 이름도 다 뜻이 있는 거지? 이름이 비슷해서 잘 외우질 못하겠어."


"네, 다 뜻이 있어요. 제 이름 마이(Mai)는 한국말로는 매화나무 있죠? 그 매화꽃을 뜻하는 겁니다. 그리고 보통은 한국처럼 성 한 글자에 이름 두 글잔데 부를 땐 제일 끝 글자만 부릅니다."


"와! 한국이랑 진짜 비슷하네. 다 한자에서 유래한 거구나?"


"한자는 뭔지 모릅니다. 그런데 다 뜻은 있어요. 다른 직원들 이름 알려드리면, 끄엉(Cuong)은 강하다는 뜻이고, 롱(Long)은 용이라는 뜻입니다."


한국하고 베트남 하고 많이 다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마이(Mai)는 그렇게 한국과 베트남이 비슷하게 연결되어 있는 거라고 한국 사람인 나에게 설명해 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마이(Mai)는 이특이 있는 한국에 너무 가고 싶어서 비행기표 구입할 비용을 모으고 있는데, 다 모은다고 하더라도 출신이 좋지 않아서 한국행 비자를 받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나에게 얘기했다.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하면서 근무 잘하고 있으면, 회사에서 보증해서 한국에 갈 수 있게 해 볼게. 그러면 출신이 어디든 상관없을 거야." 이렇게 마이(Mai)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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