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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Aug 17. 2021

베트남 음식, 어디까지 먹어봤니?

스타벅스 가고 싶다

제조업체는 어쨌든 공장 가동률이 올라가야 살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우리 공장의 가동률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조금만 더 판매하면 생산이 많아져서 가동률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영업이 잘 되지 않는 지역을 좀 알아보기로 했다. 지역별로 자료를 살펴보니, 불과 몇 년 전까지 판매가 있었던 지역인데 대규모 컴플레인이 발생한 후 재진입을 못하고 있는 지역이 있다. '이 지역에 집중적으로 지원을 해봐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영업사원들과 함께 방문 계획을 잡았다.


수차례 선물을 보내고 퇴짜를 맞기도 했지만, 영업 책임자가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그 지역의 대리점 사장과 미팅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방문하기 전에 영업사원들이 수차례 다녀와서 그럴 테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가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은 느낌이다. 다소 퉁명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이 지역에서 사업을 다시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녁 먹으러 어디로 가지? 우리 영업사원들이 장소 잡아 뒀나?" 대리점 사장과 말을 마치고 통역 직원 투(Thu) 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요. 오늘은 이 대리점 사장님이 아는 식당을 예약했다고 합니다. 지역 특산물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우리랑 사업을 다시 할 생각이 있긴 한가 보네. 자기가 예약을 다 해놓고. 근데 특산물 먹는다고? 아~ 특산물이라고 하면 긴장되던데, 그냥 일반적인 것 좀 먹으면 안 되나?"


"하하하. 외국 손님이 오셔서 좋은 거 대접하고 싶어 합니다. 손님한테 쌀국수를 드릴수는 없잖아요."


"제발 그냥 난 쌀국수 먹고 싶다고."


식당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방문해봤던 한국의 방갈로 또는 가든과 같은 분위기가 나는 시골 식당이다. 넓은 부지 군데군데에 코코넛잎으로 지붕을 만들어 띄엄띄엄 방갈로를 배치해 둔 식당이다. '일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거래처 사장은 나 때문에 특별히 몸에 좋은 음식을 파는 식당에 왔다며 껄껄껄 웃어댄다. 통역 직원은 거래처 사장한테 무슨 음식이 나오는지 물어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왜? 뭐 시켰대?" 통역 직원에게 물어봤다.


"아...... 지렁이 아십니까? 지렁인데 바다에 사는 겁니다. 아마 못 먹을 것 같습니다."


"뭐??? 바다에 사는 지렁이?"


그러는 사이에 첫 음식이 나왔다. 부침개를 파전같이 두툼하게 만든 음식인데, 자세히 보니 안에 갯지렁이가 박혀있다.


갯지렁이 부침개(자세히 보지 마세요)


"여기 다른 음식은 없나? 다른 것도 좀 시켜봐." 통역 직원에게 다급하게 얘기했다.


"지금 여기 메뉴 보고 있는데, 지렁이 요리밖에 없습니다."


"와~ 망했네."


그리고 그다음 요리들이 나왔다. 돌솥밥처럼 생긴 붉은 토기가 테이블 위에 올라온다. 베트남도 돌솥밥처럼 이런 토기에 밥을 따로 해서 주기도 한다. 그럼 바닥에 누룽지도 생기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 그냥 난 이 밥으로 배나 채워야 되겠다." 아직 뚜껑이 덮여있는 돌솥을 보고 얘기를 했다.


"그거 밥 아닙니다." 통역 직원이 옆에서 말을 해준다.


"이거 밥 아니라고? 나 전에도 먹어봤는데, 이거 돌솥밥이야."라고 말하며 뚜껑을 여는 순간 공포영화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좀비를 본 것처럼 깜짝 놀랐다. '아! 이거 큰일 났다.' 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온통 갯지렁이가 가득 차 있었다.


-경고!! 바로 밑에 조금 징그러운 사진 있습니다-


-후딱 내렸다가 자신 있으면 다시 올려서 보세요-


 

갯지렁이 찜요리와 갯지렁이가 들어간 계란탕


"이야~ 미취겠네. 이거 대리점 사장이 우리 멕이려고 일부러 여기 데려온 거 아니야? 근데, 넌 이런 거 본 적 있어? 먹을 수 있어?" 통역 직원 투(Thu)에게 물었다.


"저도 이런 음식 처음 봅니다. 먹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 어쨌든 먹어보자. 엿 먹이려고 데려왔던, 보양식이라고 생각하고 데려왔던, 저 사장 의도대로 우리가 먹어주자. 아무튼 먹어야 여기서 다시 영업 시작할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조금만 먹을 테니까 네가 좀 많이 먹어봐." 통역 직원에게 부탁을 했다.


"음...... 저는 못 먹을 것 같습니다." 통역 직원이 거의 입을 다무린채 복화술을 하듯 작게, 그러나 단호하게 대답하고 있다.


대리점 사장은 몸에 좋은 거라고, 아무런 약도 안 먹고 흙만 먹고 자란 애들이라 깨끗하다고 자랑을 하며, 내 앞접시 위에 부침개를 잘라서 올려준다. "아~ 네." 하고 받았지만, 도무지 먹을 자신이 없다. "네가 먼저 좀 먹어 보라고. 맛이 어떤지 얘기 좀 해봐." 통역 직원에게 다시 한번 부탁을 했지만, 대꾸가 없다.


'나는 먹어야 되겠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솟아났다. '일단 작은 것부터 시도를 해보자. 별거 아닐 거야. 그리고 집에 가면 기생충약 먹고 집 앞 스타벅스에 가자.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랑 프라푸치노 시키자.'라는 최면을 걸고 먹기 시작했다. 역시 처음이 어렵다. 처음엔 계란탕에 있는 국물 먼저 시작해서 아까 대리점 사장이 내 앞접시에 올려 준 지렁이전도 먹어봤다. 찝찝하긴 한데, 별 맛도 안 난다. 씹히는 느낌은 내용물이 없는 번데기 씹는 질감 정도? 이제 찜기 안에 들어있는 음식도 숟가락으로 퍼서 먹었다. 그리고 맥주 반 컵 마시고 입 헹궈내기.


"괜찮으십니까? 사장님?" 통역 직원은 내 옆에서 술만 마시고 앉아 있다가 나한테 말을 건넨다.


"야! 네가 안 먹으니까 내가 먹고 있잖아!" 


"죄송합니다. 저는 못 먹을 것 같습니다. 술이 취하면 좀 먹어보겠습니다."


"그래 술이나 많이 마시면서 대리점 사장 상대하고 있어 봐. 지렁이는 내가 좀 먹어볼게."


이날, 대리점 사장은 나에게 보양식을 대접하려고 이 식당에 데려간 건지, 아니면 진짜 한번 당해봐라 라는 생각으로 데려간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결국 이 대리점 사장은 우리와 5년 만에 다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로써 우리 회사의 영업 사원들도 이 지역에서 활동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려서 난 무척이나 음식을 가렸었었다. 기억에 중학교 때까지 파를 안 먹었었고, 대학교쯤 가서야 순대국밥을 먹었던 것 같다. 지금은 가리는 게 없다. 땟국물이 흐르는 잔에 담긴 녹차도, 꼬질꼬질한 손으로 건네주는 얼음도, 난생처음 본 갯지렁이 음식도 가리지 않는다. 더 어른이 될수록, 더 내가 책임져야 할 게 많아질수록 음식을 가릴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아직도 김밥에서 채소를 빼고 먹는다. 채소를 먹어야 몸이 좋아진다고 말을 해주기는 하지만, 꼭 어려서의 날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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