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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Sep 20. 2021

남의 집 현관에 박제된 내 사진

우린 서로의 이야깃거리

베트남에서 거래처 사장님들을 만나면 대놓고 자기 과시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 베트남에 온 이후 막 법인장이 되었을 무렵에 만난 한 거래처 사장님도 첫 미팅 자리에서 본인 자랑을 엄청 늘어놓았는데, 그 과시와 자랑 덕분에 그 사장님과 거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 회사는 거래처가 다 시골에 있어서 나는 베트남의 시골 지역으로 출장을 자주 다니고 있는데, 그러다가 경쟁사의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얼굴에 검버섯이 핀 완전 시골 할아버지셨는데, 본인이 이 지역의 OO협회 회장이라서 월간 판매량이 어마어마하다고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바로 그분과 그분의 동업자를 호치민에서 제일 좋은 호텔 중의 하나인 롯데 레전드 호텔로 모셨다. 시골에서 호텔까지 회사 차량으로 픽업을 하고, 호텔에서 하룻밤 머물 수 있도록 예약도 해 두었다. 그리고 호텔의 회의실을 빌려 우리 회사 매니저들이 회사 소개를 하게 하고 대형 거래처에 걸맞은 거래 제안도 했다. 그 후에 저녁식사를 하는데, 그 사장님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롯데 레전드 호텔 사이공 로비


사실, 본인이 그 지역에서 OO협회를 만들기는 했는데, 아직은 회원이 둘밖에 없다고 한다. 본인과 동업자 말고는 없다고 하신다. 그런데 회원이 늘어나면, 이전에 본인이 얘기한 만큼의 판매를 올릴 수 있다고 했다.



그냥 나와의 첫 만남에서 자기 과시하려고 좀 부풀려서 말했는데, 베트남 초짜인 내가 너무 극진히 대접해줘서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나는 그 얘기에 당황했지만, 사장님이 더 많은 회원 확보해서 성공하실 수 있도록 우리 회사가 열심히 돕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 그 사장님은 우리 회사의 열성 고객이 되셨다.


난 코로나 이전까지 한두 달에 한번 정도 그 대리점을 방문했다. 처음 방문했을 땐 우리 회사 제품이 5%였고 경쟁사 것이 95%였는데, 방문할수록 우리 제품의 비중이 늘어나더니 지난해부터는 우리 것이 95%로 바뀌었다.




이 사장님은 나이 드신 분이라 그런지 보양식을 엄청 좋아하신다. 그래서 내가 방문하면 대리점 창고에서 협회 회원들과 함께 보양식을 먹는다. 일반적인 베트남 요리가 아니라 약초를 넣은 닭백숙, 가물치 찜요리, 염소 전골 등 보양식만 대접해 주신다. 뱀 요리, 고양이 요리도 준비하겠다고 하시는데, 제발 거기까지는 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난 염소까지가 제일 좋다고 했더니 몇 달간 염소 요리만 해주기도 하셨다. 또 독한 술을 본인이 직접 담으셔서 생수통에 가득 담아 오시는데, 도대체 뭘로 만든 건지 도수가 몇 도인 지를 모르겠다. 동남아에서 출처 불명한 술을 마시고 문제 되는 뉴스가 종종 나오기 때문에 내가 술을 사 가지고 방문하고 있다. 또 싼 술을 사 가면 본인이 담근 술을 다시 꺼내 오기도 하셔서, 늘 사장님이 좋아하는 시바스 리갈을 사들고 간다. 


이렇게 친분을 쌓으면서 거래를 하는 중에 진짜로 협회 회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회원 둘과 나만 모여서 회식을 했었는데, 작년엔 함께 버스를 빌려 여행을 다녀오기도 할 정도의 인원이 모였다. 덕분에 우리 회사의 매출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 2020년의 연말 송년회를 하러 그 대리점 사장님 집으로 갔는데, 이전에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집 현관 입구에 떡하니 걸어두었다. 아니, 걸어둔 게 아니라 현관 외벽을 파서 대형 액자를 집어넣었다. 이걸 넣으려고 현관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고 한다.


거래처 사장님네 현관에 새겨진 나의 사진


"와! 사장님 이거 뭐예요?"

"내가 임 법인장 만나서 사업이 잘됐으니까 하나 걸어뒀어."

"이제 우리랑 거래 계속하셔야 되겠네요. 거래 중단되면 집 리모델링 다시 해야 되잖아요."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베트남 시골을 자주 다니면서 보는 풍경은 끝없이 이어진 평야와 농작물들 그리고 고무나무밖에 없다. 편의시설이나 슈퍼 하나 없는 이 시골에서 베트남 분들은 도대체 하루 종일 뭘 하고 지내실까 생각이 든다. 이런 이유로 동네 사람들과, 또 거래처와 만날 기회를 자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외국인인 내가 방문하는 것을 재밌는 행사로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집에 자주 드나드는 외국사람에 대해 동네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어서 내 사진을 걸어 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점점 늘어가는 협회 회원들에게 나와의 친분을 더 과시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오늘도 난 이 시골 할아버지 사장님에게 재밌는 이야깃거리를 하나 더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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