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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Sep 27. 2021

코시국에 베트남에서 아프다는 것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고?

이가 부러졌다.


하필 이 엄중한 코시국에 베트남 시골에서 밥을 먹다가 이가 부러졌다. 이가 아프기 시작한 지는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베트남 시골에서 치과에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치과, 안과와 같은 병원은 문을 연 곳을 거의 찾기가 어렵고, 찾는다고 해도 문을 연 병원에는 환자가 잔뜩 몰리기 때문에 코로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감수하고 진료받으러 가는 것도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다.


베트남의 일반적인 치과 모습


지금 베트남에서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하는 여러 조건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는 주기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비용은 회사 부담이다. 지역별로 그 주기가 다르긴 한데, 우리 회사가 있는 지역은 3일마다 한 번씩 검사를 받아야 한다. 처음엔 7일 간격이었는데, 두 달 전부터 3일 간격으로 변경돼서 일주일에 두 번씩 콧구멍 속으로 면봉을 깊숙하게 넣고 있다. 이 검사를 받고 나면 두통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때쯤부터 치통도 생기기 시작했는데, 두통과 함께 치통이 찾아와서 딱히 치과 질환이라는 생각보다는 턱관절 쪽에 염증이 생긴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잦은 코로나 검사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회사에 비치된 진통제를 먹으며 지내고 있었다. 또 만약에 치과 질환이 맞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이 시기에 치과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인 9월 초, 지내고 있는 호텔의 사장님이 정성껏 만들어 주신 고기반찬으로 저녁을 먹다가 아래쪽의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 있던 이 하나가 썩어서 툭하고 부러져 나왔다. '치통이 맞았구나.'


이제 어차피 이가 부러져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이를 새로 해 넣으러 치과에 가야만 한다. 어쩌면 임플란트를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가급적 좋은 치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으로 가는 건 생각할 수도 없고, 호치민의 한국 치과로 가는 것이 그나마 나은 선택인 것 같다. '조금만 기다리자. 며칠 지나면 호치민에 있는 치과에 갈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좀 더 참기로 했다. 아직은 호치민과 우리 회사가 있는 지역 사이에 바리케이드가 있어서 통행이 어렵지만, 9월 15일이 지나면 일부 봉쇄조치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많이 퍼져있을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9월 15일 무렵, 호치민은 9월 30일까지 이 봉쇄 조치를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9월 15일부터 일부 지역에 한해서 택배와 우편 서비스가 재개되고, 식당의 배달 방식 영업을 허가해 주었다. 이런 분위기면 어쩌면 호치민에 있는 치과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회사 직원들에게 호치민에 갈 방도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직원이 알아본 결과, 현재의 규정에 따라 치료를 위해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는 진료 예약증을 첨부하고, 코로나 검사 결과를 첨부해서 회사가 통행증을 만들면 호치민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가 부러진 지 열흘 정도 지난 뒤에 호치민에 들어갈 수 있는 통행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병원과 미리 통화를 해보니, 아마 3번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현재는 병원이 일주일에 3일만-이틀에 하루씩- 진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 말은 내가 5일간 호치민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약 일주일치의 결재 서류들에 사인을 미리 다 해두고 직원들과 인사를 한 뒤에 호치민에 들어가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호치민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다리를 건너고 드디어 베트남의 경제도시 호치민에 도착했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도시 풍경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호치민에 위치한 한 검문소에 도착했다. 운전기사가 통행증을 보여주고 몇 마디 했는데,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차를 갓길에 대고, 운전기사가 내렸다. 차창밖을 보니 운전기사가 건넨 서류를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끼리 돌려보고 서로 얘기를 오랫동안 하고 있다. 뭔가 불길하다. 약 10분 정도가 지난 뒤에 운전기사가 돌아와서, 통과가 안된다고 간단히 얘기를 하고 회사에도 연락을 한다. 


바로 회사에서 총무 직원한테 전화가 왔는데, 지금 검문소에서는 치과 진료가 중한 질병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통과가 안된다며 진입을 거부한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 부러진 게 중한 질병이 아니면 뭐가 중한 질병인가? 그리고 이걸 왜 검문소 관리자가 판단하는 건가? 코로나 검사도 다 받아서 증명서도 만들고, 공무원한테 미리 전화해서 확인도 했는데 왜 통과가 안되는건가?' 이런 걸 회사 직원과 얘기해봤지만, 우리끼리 아무리 얘기하고 뭐가 합리적인지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고, 검문소 관리자가 아니라고 하면 통과가 안된다. 


나의 통행을 거부한 호치민의 한 검문소


'베트남 행정이 그렇지 뭐'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호치민에 다 들어와서 병원이 바로 저 앞인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여기저기 전화해보고 궁리한 끝에 엠뷸런스를 생각해냈다. 옛날에 한국에서도 엠뷸런스에 가짜 환자 태워서 문제 된 뉴스를 여러 번 본 적이 있긴 한데, 내가 타도 되나 싶긴 했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진짜 환자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검문소 관리자가 인정해주진 않지만, 병원에 가야 하는 이가 부러진 진짜 환자가 맞다.


그렇게 엠뷸런스를 호출하기로 결정하고 한적한 길가에서 차량을 만났다. 사이렌을 켜고 검문소를 지나 무사히 호치민의 한국 치과에 도착할 수 있었고, 오랜만에 방문한 집에 머물며 5일간의 치료 끝에 새로운 이가 생기게 되었다. 다행히 뿌리가 살아있어서 임플란트를 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었다.




흔히 우리는 개발도상국에서 생활하며 '여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라고 말한다. 별로 좋아하는 말이 아니라서 잘 쓰고 싶진 않지만, 어느 경우에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단, 그 안 되는 걸 되게 하려면 인맥이 필요하거나 돈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이런걸 동원할 수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말이다.


난 이번에 안 되는 치과 치료를 되게 하려고 엠뷸런스 비용까지 합쳐서 거의 임플란트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비용을 지출했다. 부디 임플란트 한 것처럼 오래오래 잘 버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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