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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Sep 14. 2021

코로나 상황의 베트남 직장 생활기

나 다시 군대에 온 거니?

코로나를 통제하기 위한 호찌민의 한 검문소 모습_2021년 8월 23일_출처:VN Express


"2주 정도 있으면 될 거니까 짐은 많이 안 싸도 돼. 그리고 그 동네서는 괜찮은 호텔이니까 오히려 좀 쉬다 온다고 생각하고 다녀올게." 지난 6월 초, 이렇게 호찌민에 있는 집에서 짐을 싸들고 나오게 되었고, 특별한 일로 약 일주일간 잠시 집에 들렀던 적을 제외하면, 이제 4개월째 집에서 나와 살고 있다.


6월, 호찌민과 직장이 있는 지역 사이에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호텔 생활 초기에는 이 상황이 금방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호텔에서 만난 또 다른 아는 사람들과 저녁 식사도 하고 호텔 헬스장에서 운동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이 당시에는 입장할 수 있는 인원 제한이 있긴 했지만 아직 식당을 이용할 수 있던 기간이었다.


연장된 봉쇄 조치에 따라 약 한 달간의 호텔 생활을 정리하고 자취방을 얻기로 했다. 1개월짜리 초단기 임대 방을 구했고,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하기도 하고 아직은 배달이 가능한 식당에서 배달음식을 시켜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 7월 말에 자취방이 있는 동네 자체가 봉쇄된다고 소문이 나서 도망치듯 짐을 빼 나오게 되었다. 


이미 공장에서 숙식하고 있는 직원들과 함께 지낼 각오로 텐트를 준비해서 회사에 들어왔다. -베트남 정부는 코로나 기간 중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선 직원들이 퇴근하지 않고 공장 내에서 숙식할 것을 우선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다행히 회사 바로 근처에 작은 호텔이 하나 남아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시골 여관보다 급이 낮은 정도의 시설인데, 공장 바닥이 아니라 침대에서 잘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작은 방에서 나 혼자만 지내면 좋겠지만, 각종 벌레와 도마뱀도 함께 지내고 있다. 또 호텔 바로 옆집에서 키우는 닭이 새벽 4시 30분만 되면 울어서 따로 알람 설정도 필요가 없다.


8월 첫 주부터 이 호텔에서 지내고 있는데, 호텔 사장님 가족의 살림집 겸 호텔인 이곳은 작은 민박집 같은 분위기가 난다. 사장님 부부와 자녀인 대학생 남매가 호텔에서 지내고 있고, 투숙객은 나와 우리 회사 매니저급 직원 몇 명이 전부다. 한국인은 나 혼자 있는데, 호텔에 유일한 외국인인 나를 챙겨주기 위해서 호텔 사장님 가족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요리를 사진으로 배우시는 것 같긴 한데, 어느 날은 소면과 토마토 케첩, 그리고 고수 가루를 솔솔 뿌린 스파게티를 해주셔서 깜짝 놀랐었다. 특별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는데, 그다음 주 일요일엔 간식으로 피자를 해주셨다. 밀가루로 만든 부침개 바닥 위에 소시지, 새우를 올리고 토마토 케첩과 마요네즈를 뿌려 주셨다. 오랜만에 먹는 귀한 피자라서 특별히 호텔 루프탑에서 콜라와 함께 먹었다. 나름 호떡같이 쫄깃하고 기름기를 가득 머금은 식감의 피자 도우가 인상적이었다. 최근엔 고춧가루에 배추를 버무린 김치, 그리고 분홍 소시지와 오이를 큼지막하게 넣은 김밥도 사진으로 배우신 것 같다. 이상할 것 같지만, 맛이 없진 않다.


피자와 피자를 먹었던 호텔 4층의 루프탑 테이블(나머지 음식들-스파게티, 김치, 김밥-은 사진을 못 찍었네요)


호텔 4층 꼭대기의 루프탑 안쪽에는 사장님의 조상신을 모셔둔 사당이 있는데, 그 사당 바로 뒷방에는 호텔 사장님 전용 헬스장과 노래방이 있다. 스피커 출력이 얼마나 큰지 노래를 부르면 호텔 전체가 다 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조상신을 모셔둔 위패가 흔들린다. 난 요즘 호텔 사장님의 배려로 함께 운동도 하고 노래도 같이 부른다. 특별히 여길 출입할 수 있는 열쇠를 주셨다. 처음엔 노래방 화면이 없어서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불렀는데, 약 2주 전쯤엔 다른 객실에 있는 TV 모니터를 떼 오셨다. 


초기의 헬스장과 노래방 기계 / 노래를 사랑해서 매일 노래하는 호텔 사장님 / 모니터가 생긴 최근 현황




이 코로나 기간 중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직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직원들을 모두 호텔에서 생활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생산직원들과 일반 스테프들은 공장 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기숙사가 있는 회사가 아니다 보니까, 회의실과 사무실이 숙소가 되었다. 


처음엔 많은 혼란이 있었다. 약 한 달쯤 되었을 때는 불편한 합숙 생활을 견디지 못한 일부 직원들이 탈출을 하려고 경비들과 패싸움식으로 대치를 하기도 했고, 담 넘어 도망가려다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 그런 직원들은 아예 다 집으로 돌려보낸 상태다. 남아 있는 직원들에겐 특별 보너스를 주고 있긴 하지만, 이 불편함을 감수하기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직원들은 회사 공터에 텃밭도 가꾸고 스스로 요리도 하면서 남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운동 기구도 자체적으로 만들었고 거의 반년째 문을 닫은 베트남의 이발소를 대신해서 서로 머리를 깎아주고 있다. 군 생활할 때 많이 보던 모습인데, 베트남에 와서도 군대 체험을 다시 하게 될 줄은 정말 생각지 못했다. 다만, 내무반(사무실 바닥)이 아니라 간부숙소(호텔)에서 지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자체 제작한 운동기구 / 사내 이발소 / 직원들의 텃밭




6월, 첫 2주가 지나면 봉쇄가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그 2주는 계속해서 1주 또는 2주씩 연장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간 확진자가 1만 명을 넘은 8월 말부터는 호찌민 시내에 군인들이 배치되었고, 검문소 관리 및 식료품 배급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 베트남 정부는 이 조치를 9월 말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다행인 것은 올 초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수위를 높여가던 코로나 관련 조치들이 8월 말부터는 더 이상 상향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번 9월 들어서는 코로나 환자가 적은 일부 지역들의 봉쇄 조치가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9월이 지나면 호찌민과 그 인근 지역들도 봉쇄조치가 조금은 완화될 것이라고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어서 이 군생활과 같은 시간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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