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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Oct 05. 2021

4개월 만에 하는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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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0월부터 코로나로 인한 봉쇄 조치가 호치민에서 조금씩 풀리고 있다. 이미 10월 1일부터 호치민은 시내에 있는 바리케이드를 철거하겠다고 발표했고, 1차 백신을 접종한 지 14일이 지나면 또는 2차 접종을 마친 뒤에는 집 밖으로 외출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여전히 음식점을 방문하여 식사할 수는 없지만 식당의 배달 영업을 허가했고, 마트도 다시 개장할 수 있다는 완화된 코로나 대응책을 공지했다.


내가 있는 '동나이' 지역도 곧 봉쇄 조치가 풀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동나이'성은 호치민의 바로 옆에 붙어있는 성급의 지역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호치민이 서울이라면 동나이는 경기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지금껏 호치민에서 발표한 코로나 관련 조치들을 동나이에서도 그대로 따라서 발표하는 경향을 보여왔기 때문에, 이제 공장에서의 긴 숙식 생활을 마치고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적인 소문이 공단 내에 많이 퍼지게 되었다. 아마 이번 10월의 첫 주나 둘째 주부터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10월의 첫 번째 일요일을 공장에서 보내고 있다.


휴일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라면이 생각난다. 9시쯤 컵라면 하나를 꺼내 먹고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교회 예배도 참석했다. 호치민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하는 예배 방송인데, 교회에 모일 수 없기 때문에 벌써 수개월째 유튜브와 줌으로 예배를 보고 있다. 그러고 나서는 금방 점심시간이다. 먹을 것도 별로 없는데, 식사 때마다 뭐 먹을지 고민이다.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베트남 음식도 질리고, 라면도 질렸다. 냉장고에 있는 만두와 떡을 가지고 떡만둣국을 만들어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제 곧 이 생활이 끝날 거란 생각을 하며 남아있는 즉석식품이나 다 먹어치우자는 생각을 했다. 오뚜기 주꾸미 덮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역시 한국이 뭐든 잘 만드는 것 같다. 지난 수개월 동안 브랜드별로 다 먹어봤는데 맛없는 게 없었다.

 

이젠 모두 내 뱃속으로 들어간 음식들


오후엔 뭐할까 생각하다가 사무실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영화를 볼까도 생각했지만, 저녁에 호텔 침대에 누워서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책을 보고 있는데, 생산 매니저가 찾아와서 휴일에 직원들 맥주 한 캔씩 주면 안 되는지 물어본다. '그래, 집에도 못 가고 다들 힘든데 휴일에 좀 풀어줘야지.' 많이 마시면 내일 힘들어지니까 적당히 마시게 하라고 당부해두었다. 그리고 어떻게 쉬고 있는지 보려고 공장 순찰을 한 바퀴 돌고 있는데, 한 무리는 공터에서 축구를 하고 있고, 몇 명은 서로 이발해주거나 빨래를 널면서 개인 정비를 하고 있다. 또 아까 나눠준 맥주를 마시려고 공장 바닥에 앉아서 안주거리를 만들고 있는 직원들도 있다. 낮시간이라 더워서 그런지 많은 직원은 웃통을 벗고 앉았다. 나도 잠깐 섞여 앉아서 직장 숙식 생활을 위로해주기로 했다.


"여러분들 모두 고생 많았어요. 엊그제 호치민에서 봉쇄 조치를 완화했으니까, 여기도 곧 풀릴 겁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내가 생각할 때 길어야 열흘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맞아요. 소문 들으니까 금방 풀릴 거라고 합니다. 법인장님도 여기서 맥주 한 캔 드시고 가세요."


"네, 그래요. 나도 한 캔 주세요. 우리 기념으로 사진도 같이 찍을까요?"


"자! 하나, 둘, 셋."


사진을 찍는데, 직원 한 명이 갑자기 내 입 속으로 안주를 쏙 넣어준다.


휴일에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직원들


그렇게 공장 순찰을 마치고 사무실에 다시 앉아 있는데, 총무 매니저한테 연락이 왔다. 내일(월요일)부터 호치민과 동나이 간에 이동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소식이다. 물론 희소식이라 좋긴 하지만, 베트남 정부의 일처리는 이렇게 갑작스러운 전달 방식이 많다. 사업장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면 갑작스럽게 공문 들고 찾아와서 그 시간부로 영업 정지를 시키기도 하고, 당일에 갑자기 호텔 영업을 중단시켜서 신부 대기실에서 화장하던 신부가 울면서 집으로 갔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코로나 관련 정책들도 이렇게 갑자기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전국적인 식당 영업도 갑자기 중단시켜서 준비해두었던 식재료를 전부 못쓰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학교에 이미 등교했는데 당일부터 등교 금지를 시켜서 갑작스럽게 전부 단체로 하교를 하기도 했었다. 코로나 초기에 있었던 아시아나 항공 회항 사건도 이런 베트남 정부의 업무 방식이 영향을 줬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아직까진 행정이 그렇게 세련된 나라가 아니다.




드디어 4개월 만에 운전기사를 만났다. 호치민에 살고 있는 그는, 집에 격리돼 있던 사이에 부인이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축하하고 또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하며 호치민으로 들어가는 차에 올라탔다. 얼마 전 치과 치료받으러 갈 때만 해도 도로에는 오토바이가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호치민으로 들어가는 오토바이가 많이 보인다. 아이와 함께 3명, 4명이 타고 있는 오토바이도 보이고, 장바구니에 가재도구들을 가득 싣고, 또는 선풍기와 같은 큰 짐을 들고 이동 중인 오토바이들이 반갑게 보인다. 그렇게 이동하며 보니, 이전보다 검문소 개수가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 그리고 그 전엔 이가 부러져서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해도 허락을 안 해주던 검문소 직원들이 이번엔 통행 허가증도 보는 듯 마는 듯 통과시켜준다. 그것도 모든 차량을 검사하는 게 아니고 랜덤 하게 몇 대씩 보고 있다. 치과 치료받으러 가던 날이 계속 생각난다. 그땐 여길 통과하기 어려워서 엠뷸런스를 탔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공무원들의 태도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


호치민으로 들어가는 베트남 사람들


"안녕! 아빠 왔다."

"우와~" 아직 어린 둘째만 아내와 함께 현관으로 뛰어나오고, 첫째는 자기 방문을 열고 인사만 까딱한다.


이렇게 지난 6월, 2주 동안 나갔다 올 거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선 지 4개월 만에 다시 호치민의 집으로 퇴근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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