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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Mar 04. 2022

골프장으로 피자 배달시키는 방법

마법 같은 의사소통

베트남으로 주재원 발령이 났을 때, 주재원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검색에 나온 수영장이 딸린 예쁜 아파트와 주변의 이국적인 경치를 보며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며 베트남에 나오게 되었다. 처음 몇 달 정도는 한국에서와는 다른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그 경험들이 일상이 되는 시기가 되면 막상 할 게 없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처럼 주말에 경치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갈 수도 없고, 가까운 산으로 하이킹을 갈 수도 없다. 교통 체계가 워낙 복잡해서 외국인이 직접 차를 운전하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고, 근교에 산이나 관광지 하나 없는 호찌민에서 갈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파트에 있는 수영장에 갔다가 집 주변에 있는 쇼핑센터 다녀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주변에 친한 사람들이 생기게 되면, 주말에 할 수 있는 야외 활동으로 주로 운동을 하게 된다. 골프를 많이 하는 것 같고, 축구, 테니스와 같은 운동도 많이 하게 된다.


호치민 인근의 한 골프장


하루는 친구들과 함께 호치민 인근의 골프장을 찾았다. 화상을 입을 것 같이 햇볕이 따가운 날이어서 팔토시, 얼굴 가리개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첫 홀 티샷을 마쳤다. 그리고 세컨드 샷을 치고 카트로 들어왔는데, 경기 진행 요원이 우리 카트 옆에 서있었다. '왜 여기 서 있지?' 하며 카트로 갔더니, 우리에게 뭐라고 한참 동안 얘기를 한다. 요약하면, 우리 팀보다 빨리 보내야 하는 팀이 우리 뒤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이었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며 항의를 했지만, 그저 미안하다고만 연신 얘기하는 진행요원이 불쌍해 보여서 우리의 뒷팀이 먼저 이 홀을 지나가도록 허락을 해주었다. 대신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맥주를 서비스로 달라고 하니, 흔쾌히 알겠다고 한다.


그 후, 1번 홀의 그린 옆에 카트를 대고 우리 뒷팀이 경기를 마치고 지나가는 것을 다 지켜보았는데도 맥주가 오질 않는다. 진행요원이 서비스로 맥주 한 캔씩 돌리기로 해 놓고, 잊어버린 건 아닌지 다시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날이 더워서 더 짜증이 나기도 해서 캐디에게 진행실로 연락해보라고 몇 번 얘기를 했는데, 금방 도착할 거라고만 전한다.


그렇게 2번 홀을 마쳤는데도 맥주가 오질 않는다. 이제 맥주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조금 있다가 그늘집이 나오면 우리가 사 먹기로 했다. 그리고 골프장에 항의할 참이었다.


3번 홀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데, 붉은색 카트를 탄 진행요원이 우리에게로 달려온다. '드디어 오는구먼' 그 붉은색 카트를 보며 우리끼리 이제 드디어 맥주 가지고 왔나 보라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진행요원은 맥주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 큰 박스를 들고 카트에서 내렸다.


"이게 뭐야?" 우리가 진행요원에게 물었다.


"요청하신 대로 피자를 가지고 왔습니다." 진행요원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대답을 하고 있다.


"우리는 맥주 달라고 했는데?"


"네 맞아요. 피자 달라고 하셨잖아요. 우리 골프장에는 피자가 없어서 배달시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엥?"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베트남어로 맥주는 "비아"라고 발음한다. 베트남어로는 발음대로 "BIA"라고 쓰고 "비아"라고 읽는다. 그래서 우리도 진행요원에게 "비아"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진행요원은 본인이 잘못한 게 맥주 정도로 끝날게 아니란 강한 확신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비아"로 알아들은 게 아니라 "피야"로 알아들은 것 같다.


베트남에선 피자를 보통 영어식으로 "PIZZA"라고 쓰는데, 베트남 알파벳에는 "Z"가 없기 때문에 발음하기를 어려워해서 'Z'를 빼고 발음하기도 한다. 그러면 "피아" 또는 "피야"라고 발음이 된다. 더군다나 한국 사람들이 흥분하면 센 발음이 나오기 때문에 "B"가 "P"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어쨌든, 진행요원은 "비아(BIA)"를 "피야(PIZZA)"로 알아듣고 우리에게 피자를 가져왔다. 우리는 진행요원에게 아무튼 고맙다고 인사하고, 골프장으로 피자도 배달이 되는구나 하면서 맛있게 한 조각씩 먹었다.


베트남 알파벳(소문자)


외국에서 살다 보면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때가 많다. 주말에 가족들과 간단한 나들이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주문한 것과 다른 음식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곤란한 경우도 있지만, 맥주가 피자로 바뀌는 행운을 누리는 의외성을 기대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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