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중의 실세
베트남 법인에 처음 나올 때, 한국에서 나에게 발령을 명령했던 임원분이 알려주었다.
"베트남에 가면 Ms. Huyen이라고 있어. 그 직원이 회계 매니저인데, 회사 설립하기 전부터 영어 통역으로 있던 직원이거든. 일단 그 직원을 통해서 회사 내용을 잘 파악하면 될 거야. 나도 여러 번 베트남에 출장 나가봤는데, 베트남 현지 사정을 제일 잘 알고 있고, 한국 사람들한테도 친절해. 들어갈 때 공항에서 Ms. Huyen한테 줄 화장품도 좀 사가면 좋아할 거야."
그렇게 베트남에 발령을 받아 나왔더니, 후옌(Huyen)이라는 그 회계 매니저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에게 와서 업무를 도와주었다. 나보다 5살 정도 어린 여자였는데, 베트남 사람 치고는 키가 큰 편이었다. 162~163Cm 정도 되고 날씬한 편이어서 회사에서 중요한 행사를 하면, 옆라인이 트인 아오자이를 입고 가장 앞에 서서 행사를 진행하던 직원이다.
본인에게 직접 얘기를 들어보니, 처음에 우리 회사가 베트남에서 통역 직원을 뽑을 때 들어오게 되었고, 회사 설립 업무부터 건축과정까지 모든 업무에 통역으로, 또 말단 실무자로 관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무동이 지어지고나서부터는 직원들을 뽑는 일에도 함께 참여했고, 일이 끝나면 저녁마다 시내에 나가 회계 공부를 해서 결국에는 회계장 자격증을 취득했다고도 한다. 그렇게 총무업무, 자금업무, 회계업무 등을 거치며 이제 회계 매니저가 된 착실한 직원이었다. 싹싹하고 영어를 잘할 뿐 아니라, 회계 업무와 관리 부서 전체의 업무를 다 알고 있는 듯했다.
나의 환영식을 하기 위해 매니저들 모두와 시내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날이었다. 베트남 남부의 호치민에서는 주로 맥주를 마신다. 아마 타이거 맥주가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인 것 같다. 그다음으로는 사이공 맥주, 333 맥주 등도 많이 팔리는 것 중에 하나다. 우리는 타이거 맥주를 마셨다. 커다란 투명 유리잔에 얼음과 함께 타이거 맥주를 마신다. 이렇게 마시면 별로 마신 것 같은 느낌도 없다. 그리고, 그러다 조금씩 취해간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법인장님 들어가세요." 회식을 마치고 법인장에게 인사를 했다.
"어. 임 부장도 조심히 들어가." 법인장은 약간 취한 말투로 차 문을 닫았다.
나는 내 차 이노바(INNOVA)를 부르고 식당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Mr. Lim!" 후옌(Huyen)이 뒤에서 나오며 나를 부른다.
"어? 후옌(Huyen)은 아직 안 갔네?" 이미 회사 통근버스를 타고 출발한 다른 매니저들은 봤었는데, 아직 후옌(Huyen)은 출발하지 않았나 보다.
"네. 저는 가는 길에 중간에서 내려주실래요?" 후옌(Huyen)은 본인 집이 우리 집 가는 길 중간에 있다며 내려달라고 한다.
"그래. 어서 타."
내 옆자리에 앉은 후옌(Huyen)은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주로 했었냐고 말을 걸면서 내 옆으로 더 붙었다. 그러더니 운전기사에게 내릴 곳을 얘기하고는 내 어깨에 기댔고 잠들어 버렸다. 난감했는데, 곧 내릴 것이라서, 또 취한 것 같아서, 또 베트남의 문화를 잘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내 팔을 문질렀다. 분명히 느꼈다. 후옌(Huyen)이 자기의 팔뚝으로 반팔을 입고 있던 내 팔뚝을 문질렀다. 나는 후옌(Huyen)을 밀쳐냈고, 그녀는 다 도착했다며 "Good night. See you tomorrow."를 외치고 내 반대편 문으로 내렸다.
몇 달 후, 한 거래처 사장한테 연락이 왔다. 한국분이었는데, 법인장의 지시로 최근에 거래를 하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본인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베트남 사장을 세워놓고서 투자만 하신 거라고 얘기를 듣기는 했었다.
"임 부장님. 거기에 후옌(Huyen)이라는 매니저가 있습니까?" 괄괄한 목소리의 나이 드신 사장님은 전화를 받자마자 나에게 용건을 말했다.
"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그렇죠. 저희 직원 중에 있어요. 회계 매니저인데, 무슨 일이세요?"
"아니, 걔가 지난 일요일에 우리 회사 베트남 책임자 집으로 찾아왔어요. 그리고서, 아, 내가 참 기가 막혀서."
"무슨 일이세요, 사장님?" 나도 궁금해 다음 얘기를 빨리 해달라고 재촉했다.
"아니, 걔가 찾아와 가지고 매월 자금 결제를 해줄 건데, 거래 총금액의 몇 %를 자기한테 주면 2주 후에, 그것 보다 더 많은 몇 %를 주면 1주 후에 지급하겠다. 안 주면 한달 넘게 걸릴 수도 있다. 뭐 이딴 소리를 했다고 해요." 거래처 사장은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을 마친다.
"네? 저도 확인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도 당황하여 그 사장과의 전화를 마쳤다.
법인장에게 이 얘기를 전했다. 법인장은 노발대발했다.
"아니, 그렇게 우리한테 알랑방귀 뀌더니, 그런 거 해 먹으려고 그랬던 거야?" 법인장은 어이없다는 식으로 말하며 새로운 회계 매니저 알아보자고 제안한다.
새로운 매니저와 면접을 보고 최종 입사를 확정시켰다. 그 새로운 매니저를 후옌(Huyen)의 시니어로 앉히고, 후옌(Huyen)은 잠시 하치장 감사를 진행하라고 업무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며칠 후, 새로운 매니저는 입사하지 않겠다고 얘기하러 들어왔다.
"왜? 왜? 입사를 않겠다고 하는 거야?" 새로운 매니저에게 물었다.
"사실, 어제 퇴근하는 길에 강도를 만났습니다. 제 허리에 칼을 대고 있던 강도는 지금 다니는 회사를 퇴사하지 않으면 다음엔 집으로 찾아가서 와이프와 아이들에게 칼을 들이대겠다고 말했어요." 새로운 매니저는 떨고 있었다.
여러 번의 급여 인상 약속과 차량을 지급하고 직원을 붙여주겠다는 설득으로도 그 매니저를 잡을 수 없었다.
'이게 이곳의 수준인가? 그렇게 한국 사람들에게 칭찬받던 후옌(Huyen)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결국엔, 후옌(Huyen)을 정리했다. 회사 내부에는 그녀의 친척들, 고종사촌, 이종사촌, 조카 등이 근무하고 있었다는 것도 나중에 밝혀졌다. 모두 정리했고, 지금은 다 다른 사람들로 대체됐다. 하지만 모른다. 나중에 이 사람들도 또 다른 계획을 가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