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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Jun 01. 2023

시골 깡패

지긋지긋한 거머리

이번에도 용역 회사를 변경했다. 내가 와서 일 년 동안 벌써 두 번째 바꾸는 용역회사다. 거래처들에서 컴플레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거래처가 우리 제품을 실으러 화물차를 가지고 공장으로 들어왔는데, 용역 회사에 뒷돈을 주지 않으면 빨리 상차시키지 않는다는 컴플레인이었다.


용역 회사를 바꿔도 중간 관리자인 붉은색 쉐보레 콜로라도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계속 남아있는 것 같다. 무언가 이상했다. 생산부 직원에게 물었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생산 매니저는 좀처럼 말해주지 않는 것 같고, 생산부 직원들 여러 명에게 질문을 해봤다. 그중 한 명이 제보를 한다.


"용역 회사를 계속 바꿔도 저 사람은 안 바뀝니다." 생산부 직원이 대답한다.


"무슨 소리야? 왜 저 사람이 안 바뀐다는 거야?" 내 책상 옆에 서 있는 생산부 직원에게 되물었다.


"사실 저 사람이 사장인 거예요. 회사를 바꾸자고 하면, 저 사람이 또 다른 자기 부하를 사장으로 앉힌 회사 계약서를 가지고 올 겁니다. 사실 이 동네 용역 회사들은 다 저 사람하고 관련되어 있다고 보면 되는 거예요. 저한테 들었다고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특히 생산 매니저한테도 말하시면 안 됩니다." 베트남에 와서 또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이 놈의 촌동네가 아주 지긋지긋하다.




"법인장님, 저희 한국 용역회사 한번 써 보실까요?" 나는 법인장 사무실로 들어가서 생산부 직원에게 들은 얘기를 해주었다.


"한국 용역회사는 비싸지 않을까? 그리고 호치민 시내에서 불러야 하잖아. 이 동네까지 올 지 모르겠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인 또 다른 조건들을 고려해 보자는 법인장의 말이었다.


"한번 연락은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회사 밖에서 생산 매니저 후보도 면접을 좀 보겠습니다."


"그래. 그건 알아서 해봐."




다음번 용역 계약 연장 시즌이 되었을 무렵, 생산 매니저를 불러서 용역 단가 인하를 요청하자고 얘기했다.


"다른 회사들 단가를 조사해 보니까, 조금 더 인하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겠다." 생산 매니저에게 요청했다.


"그러면 용역 계약 연장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다음 주까지 중요한 생산이 있잖아요. 그전까지는 얘기 안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생산 매니저는 용역 회사 편을 든다. 생산 매니저가 그전에 안 보이던, 금색 시계를 차고 있다. 이전에 용역 회사 사장이 차고 있던 시계와 같은 것임을 알아챘다.


"시계 좋아 보이네. 새로 산 거야?" 생산 매니저의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네. 싸게 팔아서 하나 샀어요. 비싸지 않아요." 생산 매니저는 애써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그래. 아무튼 용역 사장한테 용역 단가 인하 안 하면 계약 연장 안 하겠다고 전달해."


그리고 다음날, 용역 직원이 모두 출근하지 않았다. 또 생산 매니저도 출근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나는 수첩을 집어던져 버렸다.


"야! 이거 뭐야? 왜 출근 안 하는 거야?"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고, 총무 매니저에게 통역을 하며 내 옆에 서 있던 여자 직원은 깜짝 놀라 눈물을 흘렸다.


"지금 생산 매니저와 용역 사장한테 계속 연락하고 있습니다." 총무 매니저가 대답하며 밖으로 나간다.


오늘 법인장은 외부 출장이라 사무실에 없다. 내가 해결해서 생산을 진행시켜야 한다.



오후에 용역 회사의 사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회의실의 내 맞은편에 앉은 용역 사장은 본인의 서명이 된 서류를 한 장 나에게 건네며, 계약을 해지하자고 했다. 왠지 거만해 보이는 태도를 보인다. 나는 그 서류를 받아서 사인을 하고 내 수첩 사이에 끼워 넣었다.


"정말 계약 해지하는 거죠?" 생산 매니저와 같은 반짝거리는 금색 시계를 찬 용역 사장은 통역 직원을 통해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나에게 확인한다.


"네, 쌍방 간에 합의해서 계약해지한 거니까 이제 나가세요." 나는 용역 사장에게 당당하게 얘기했다.


용역 사장 표정이 조금 이상해진다. 통역 직원에게 내 수첩 사이에 있는 서류를 다시 달라고 한다. 나는 계약서가 끼워져 있는 수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이제 내일부터 저희랑 일 하시면 됩니다. 법인장님한테도 얘기해 놨고, 여기 현지 용역업체랑은 계약 정상적으로 종료했어요. 바로 가능하시죠?"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연락하던 호치민에 있는 한국 용역 회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음날. 생산 매니저가 출근시간 전부터 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어제는 뭐 했어? 왜 출근 안 한 거야? 용역 회사 파업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 생산 매니저에게 물었다.


"제가 파업하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용역 회사 사장이 무서운 사람이거든요. 저보다는 임 부장님이 잘 해결할 것 같아서 일부러 자리를 피해있었습니다." 생산 매니저가 말도 안 되는 핑곗거리를 찾았나 보다.


"응. 그럼 당신도 이제 회사 나오지 않아도 돼. 저기 사무실에 남자 한 명 앉아있잖아? 저 사람이 오늘부터 생산 매니저로 일 할 사람이니까 이제 나오지 마." 나는 몇 주 동안 계속 회사 밖에서 생산 매니저 면접을 보고 있었고, 그중에 한 명에게 어제 연락을 했었다. 오늘부터 나올 수 있다고 대답을 했고, 지금 우리 사무실에 앉아있다.


우리 회사가 도시에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이 뒤로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은 몇 건 더 있었지만, 그 횟수는 점차 줄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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