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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Apr 09. 2023

자궁이 황무지가 됐나 봐

생리를 안 한다


병원에 가니 냉동배아이식 동의서를 줬다.

연휴가 끝나서 대기가 많을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대기인원이 많지 않았다. 

연휴에도 오전진료가 계속 있어서 분산된 것 같았다.


연휴에 올까 했었지만 쉬는 남편을 대기가 많을 병원으로 데려와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연휴 끝나고 조용히 혼자 왔다.


병원 여는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는데 내 뒤로 대기인원이 몰리기 시작했다. 접수처에서 "처음 오셨어요?"라는 말이 계속 들리는 걸 보니 명절 이후에 처음 난임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생리 2-3일째 오세요.

두 달 뒤에 생리를 할 수도 있어요. 

건강한 사람도 이걸(난자채취) 하고 나서는 무리가 되어서 늦게 생리를 하곤 해요."


"혹시 이번달에 (배아를) 이식할 수 있나요?"


"안 돼요. 본인이 괜찮다고 생각해도 몸은 많이 무리가 된 상태예요."


단호한 의사 선생님의 말투에 욕심을 버릴 수 있었다.

빨리 아이를 갖고 싶은 욕심

빨리 아이를 갖고 싶은 가능성을 높이고 싶은 욕심


난임병원을 다니면서 내가 가장 힘든 건 시술을 바로바로 할 수 없다는 답답함인 것 같다.

시술과 시술 사이의 간격을 기다려야 한다.

내 몸 상태를 나보다 더 객관적으로 아시는 의사 선생님과 함께 시술을 진행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의사 선생님이 옳았다.

생리를 하지 않는다.


한 달이 한참 지나도 생리를 하지 않는다.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 지났을 때부터 혹시나 임신인가 싶어서 임신테스트기를 매일 해보기 시작했다.


임신이 아니었다.

생리도 아니다.


한번 더 해보자.


또 임신이 아니다.


또 해보자.

임신이 아니네......


정말로 생리가 늦어지는 건가 보다.




난자채취를 하면서 여성의 모든 것을 다 긁어낸 것 같다.

나무가 다 뽑혀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민둥산처럼

포클레인으로 모든 것을 다 긁어내서 고랑자국만 남은 황토색 땅처럼

내 자궁은 스크래치만 남고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런 생명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임신?

난자가 없는데 어떻게 임신을 해?

아무것도 안되나 봐.

자궁이 고장 난 것 같다.


생리를 하지 않는다.

자궁이 황무지가 되어버렸다.


난 그저 비가 내리길 기다린다.

이 모든 공사 흔적이 빗물에 다 씻겨 내려가길.

흘러내린 모든 흙탕물도 햇빛에 다 마르길. 

그리하여서 나의 자궁도 단단하게 다져져서 다시 옥토가 되길

그리하여서 아이가 자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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