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isdom Shine Dec 04. 2022

3. 인연의 시작(3)

나는 큰딸을 데리고 대형마트로 가서 급한 대로 고양이 화장실, 두부모래, 작은 스크래쳐, 고양이 방석, 건식 사료 등을 구입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들 놀이방을 일단 구슬이에게 내어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아이들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아무래도 알레르기로 인하여 큰딸아이가 힘들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건들 중에서 구슬이 전용으로 쓸 수건들을 골라내었고, 집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무릎담요들을 꺼내어 빨았다. 잠은 따로 자기로 결정했다. 너무 작은 구슬이를 혼자 두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구슬이와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병원에서 구입한 습식 사료를 구슬이에게 주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구슬이가 우리를 경계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구슬이는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잠만 잤다. 중간중간 나는 구슬이에게 안약을 넣었다. 하루에 네 번 넣어야 해서, 시계를 예민하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물에 불린 건식 사료를 먹을 수 있을까 궁금하여, 구슬이에게 불린 건식사료를 주었다. 구슬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먹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지만, 먹는 데는 어려움을 보였다. 다시 습식 사료를 주고서 안약을 넣으려고 보니 왼쪽 눈동자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구슬이가 걱정이 되기는 하였으나, 우리 가족은 집을 다시 비워야 했다. 나와 아내는 직장으로,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을 가야 했으니까.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 마트에 들러 부직포로 된 숨숨집을 하나 구입했다. 혼자 숨어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고양이 습성이기도 하지만, 구슬이는 그런 공간이 꼭 필요할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구슬이는 화장실이 아닌 곳에 소변을 본 상태였다. 한숨을 쉬고, 소변을 닦았다. 구슬이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앞발로 모래를 휘저으며 화장실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구슬이는 무슨 소린지 몰랐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저녁 먹고 나서는 무릎 담요 위에 대변을 봤다. 한숨이 나왔다. 뭐 어쩌겠나. 무릎 담요를 손빨래하고 널어 두었다. 고양이는 배변을 알아서 잘 가린다던데, 이 아기 고양이는 그게 힘든가 보다. 그런 구슬이의 모습을 짠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니, 큰 딸아이를 재우고 구슬이 방으로 온 아내가 이야기했다. 

"그렇게 좋냐?"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야."

"응? 정말?"

"응. 정말이야. 아직 우리 구슬이와 함께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어. 내가 구슬이에게 측은한 마음은 있겠지만, 그새 죽고 못 살 정도의 정이 들었겠어?"

"그런데 왜 구슬이 방에서 나오질 못해?"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내가 다시 이야기했다.

"조용하잖아. 일터에서나, 집에서나 사람들은 나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나도 이야기하며 살잖아. 그런데 구슬이는 조용해. 아무 말도 없지. 뭘 보채지도 않고. 그런데 이 조용한 아이 옆에 있으면 외롭지는 않아. 참 신기하지? 실제 전 세계적으로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선택하는 가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대. 왜냐면 강아지에 비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더 맞는 동물이거든. 외로움도 덜 타고, 손도 덜 가고. 나도 뭐 그런가 봐.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인 거지. 이 작은 고양이보다 난 당신과 내 딸들을 더 사랑해. 그건 당연한 거잖아. 하지만 구슬이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

내 본심인지 아닌지 나조차도 모를 이야기를 듣고는, 아내는 수긍의 고갯짓을 하고서 주방으로 갔다. 나는 그 사이에 방에서 구슬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구슬이가 방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바로 핸드폰을 열고 러그 카펫을 하나 주문했다. 두부모래도 조금 가격이 있는 것으로 한 박스 주문했다. 모래에서 먼지가 날린다던데, 가뜩이나 눈이 좋지 않은 구슬이에게 해가 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건식사료를 물에 불려 시도했다. 이번엔 먹는다. 아니 고양이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큰다던데, 하루가 아니라 오전에 비해 오후가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그리고 마치 애니메이션 라이온킹 장면처럼 구슬이를 높이 들어 쳐다봤는데, 구슬이의 두 눈동자가 보였다. 왼쪽 눈은 정말이지 보통의 고양이 같았고, 오른쪽 눈동자도 보였다. 이틀밖에 안 된 고양이를 보면서 벅찬 감동을 순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구슬아. 너 양쪽 눈 다 보이는 거 맞아? 맞지? 나 앞으로도 안약 잘 놔주고, 눈 세척도 지금처럼 계속해 줄게. 정말 다 보이는 거 맞지?"

11월 1일. 아침에 일어나서 구슬이 안약을 넣으러 갔더니 방에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온갖 무릎담요들과 숨숨집에 설사를 해 놓은 탓이었다. 게다가 설사는 엉덩이 주위를 시작으로 하여 구슬이 몸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고, 구슬이가 이동할 때마다 방은 점점 더러워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급히 대충 닦을 것들을 닦고선 구슬이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세면대에서 구슬이를 씻기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목욕시키기가 힘들다고 하던데, 뭐 방법도 모른 채 무작정 구슬이를 씻겼다. 아직 아기 고양이인 구슬이는 발버둥 쳤지만, 성인 남자의 완력을 이기지 못했고, 멍한 표정으로 생애 첫 목욕을 마쳤다. 

도망가지 못하게 역시 완력으로 누른 채 드라이기로 털을 말리고 방으로 들여보냈더니, 구슬이가 그루밍을 시작했다. 내가 직접 본 구슬이의 첫 그루밍이었다. 앞발만 혀로 할짝거리는 수준이었지만, 구슬이의 첫 그루밍은 나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첫 번째로, 구슬이의 그루밍은 내가 고양이와 함께 한다는 확증이었다. 실은 구슬이의 그루밍을 보기 전까지는 구슬이를 동물 중 어떠한 종으로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작고 안타까운 생명체로만 느꼈을 뿐. 두 번째로, 구슬이의 그루밍은 비극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불길함이었다. 실은 고양이 알레르기는 털이 아닌 침 때문에 일어난다. 그루밍을 통해 침이 털에 묻게 되고, 그 털이 날리면서 사람에게 알레르기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구슬이의 그루밍은, 큰 딸아이의 알레르기가 곧 시작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기쁨과 불안이 공존하는 그 속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구슬이의 눈도, 우리 가족의 알레르기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에피소드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라고 간절히 바라며 출근길로 향했다.

퇴근하고 보니, 고양이 화장실에 대변과 소변의 흔적이 보였다. 드디어 구슬이가 화장실의 위치를 인식한 것이었다. 어제저녁에 물에 불린 건식 사료를 먹었던 것이 생각나, 이번엔 그냥 건식을 조금 주었다. 구슬이는 건식도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었다. 큰딸이 인형 유모차에 구슬이를 실었다. 그리고 유모차를 끌고 거실을 돌았다. 구슬이는 정말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빠른 속도로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나는 불안해졌다. 큰딸아이가 알레르기라도 생긴다면...... 그 알레르기가 참기 힘들거나 위험한 수준이라면...... 그때도 우리 가족은 구슬이와 함께할 수 있을까. 그래. 나중에 생각하자. 미리 생각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구슬이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ooseul_cat

매거진의 이전글 2. 인연의 시작(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