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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Feb 13. 2024

물고기야 잘 가

'우유' 방생기

초등학교 하굣길에는 어쩌다 한 번씩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수많은 병아리들이 귀여움을 뽐냈다. 그걸 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렸다. 500원이면 한 마리를 살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50원, 100원 할 때였다. 마음만 먹으면 한 마리 집에 데려올 수 있었다. 어떤 아이는 병아리를 새끼 닭까지 키우기도 했다. 나도 그런 기대가 있었다. 한 마리 분양받았다. 어머니가 깜짝 놀라셨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살 던 시절이었다.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아들의 간곡한 부탁에 넘어갔다. 데려온 병아리는 종이상자에서 길러졌다.


병아리 장수에게서 받아온 먹이가 떨어졌다. 이것저것 병아리 먹이가 될 만한걸 주었다. 얼마 되지 않아 병아리는 좁은 종이상자 안에서 숨을 거뒀다. 죽은 병아리를 소중히 두 손으로 들고 나왔다. 근처 인적이 뜸한 땅으로 가서 손으로 흙을 팠다. 병아리를 묻어주었다. 다시는 병아리를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외가에 갔다. 시골집엔 작은 고양이가 있었다.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은 것이었다. 집에서 기르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런 아들을 말렸다. 밥을 먹이고 똥을 치우겠다는 약속을 했다. 집에 돌아올 때 고양이와 함께 왔다. 이튿날부터 고양이를 챙기는 것이 일으로 느껴졌다.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것이 귀찮았다. 한날은 고양이가 자전거 안장 위에 똥을 싸놓았다. 고양이가 미웠다. 애들과 실컷 뛰어놀아야 해서 고양이를 보살필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점점 신경을 쓰지 않자 고양이는 집을 떠났다.


친구집에 갔다. 어항에는 색색들이 작은 물고기들이 있었다. 감기 때문에 집 근처 병원에 갔을 때도 수족관에 열대어들이 있었다. 조그맣고 예쁜 물고기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물고기를 키워 보고 싶었다. 어느 날 금붕어 장수가 학교 앞에 왔다. 한 마리씩 봉지에 담아 팔았다. 얼마 하지 않길래 용돈을 털었다. 작은놈들로 몇 마리 샀다. 집에 왔더니 어머니가 또 놀라셨다. 아들의 소원이라는 말에 물고기를 키우기로 했다. 아버지는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붉은 벽돌을 가져오셨다. 그걸 성벽처럼 빙 둘러쌓았다. 커다란 비닐 장판을 그 위에 씌웠다. 벽돌어항 속은 자갈을 구해와 채웠다. 물을 붓고 물고기를 풀었다.


금붕어 밥을 끼마다 챙겨주었다. 물이 더러워질까 며칠에 한 번씩 새 물로 갈아주었다. 이 모든 일이 나의 일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이었다. 나도 가끔 밥을 챙겨주었지만 집에 물고기가 있는 것이 신나는 것이었지 물고기를 챙겨주는 것이 신나는 것이 아니었다. 금붕어는 한참을 살았다. 산소공급기를 넣어서 관리를 해주는 데도 어느 날부터 한 마리씩 배를 뒤집고 죽어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지는 몰랐다. 마지막 물고기가 죽었다. 다시는 집에 동물을 데려와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수십 년이 흘렀다. 역사는 반복되었다. 초1 아들이 주말에 줄넘기 학원의 단체 놀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온 아들의 손에는 등이 오렌지 색이고 몸 전체가 하얀 금붕어가 들려있었다. 5,000원으로 금붕어 잡기에 참여해서 한 마리를 잡은 것이었다. 친구들이 한 마리씩 들고 있으니 자기도 안 할 수 없을 터였다. 직접 잡은 물고기를 소중히 집까지 들고 온 아이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뭐라 할 순 없었다. 애 엄마가 생활용품 점에서 작은 어항과 자갈, 물고기밥을 사 왔다.


당분간 금붕어를 키우기로 했다. 졸지에 식구가 하나 늘었다. 아이는 금붕어에게 '우유'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음날이 되자 아이는 금붕어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금붕어를 챙길 줄 알았는데 본 척 만 척이었다. 밥을 주라고 얘기해야 밥을 줬다. 옆에 있는 것은 좋지만 일일이 챙기는 것은 몸에 익지 않은 것이었다. 그때부터 '우유'는 아빠가 챙겨야 했다. 물이 더러워지면 아빠가 새 물로 갈아줬다.


이렇게 금붕어를 계속 키우면 어떻게 될지가 눈에 선했다.

"우유가 혼자 있으니 외롭겠다."

"물고기 밥은 끼니때마다 챙겨줘야 해"

"어항의 물은 계속 갈아주지 않으면 더러워져"

아이에게 물고기를 키울 때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물고기도 사람과 같아서 좁은 어항이 감옥처럼 느껴질 것이라는 말에 아이가 공감하였다. 이때다 싶었다. 물고기가 자유를 느끼며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해주자고 말했다. 다음 주말에 집 근처 강에 가서 물고기를 풀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설 연휴가 되었다. 설 전날 시골에 가야 해서 하루동안 집을 비웠다. '우유'에게 평소의 2배의 밥을 주고 다녀왔다. 설 당일 저녁에 돌아와서 밥을 챙겨주니 '우유'는 하루동안 배가 고팠던 티를 내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는 금붕어를 보면서 '아직은 건강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금붕어에게 신경 쓰지 않는 아이를 대신해 밥을 주는 내가 금붕어를 내내 신경 쓰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일에, 육아에 신경 쓸게 많은데 챙겨야 할 것이 하나 늘어난 것이 부담이 되고 있었다.


아이와 약속한 그날이 왔다. 아침에 아이들과 본가에 놀러 가는 길에 강에 들르기로 했다. 어항의 물을 새것으로 갈았고 물고기 밥도 충분히 주었다. 어항입구를 랩으로 싸서 흔들림에도 물이 쏟기지 않게 했다. 아이 보고 들게 했더니 무겁고 물이 찰랑거려 쏟을 것 같다고 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만 들게 하고 나머진 내가 들었다. 차로 15분 거리의 강에 도착했다. 강변에 차를 대었다. 어항을 들고 내렸다. 조심히 강둑으로 가서 랩을 벗기고는 어항을 물에 담갔다. 살랑살랑 헤엄치던 '우유'가 어항을 빠져나왔다. 강기슭의 잔잔한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것을 영상으로 담아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아빠가 '우유'를 보내주는 것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아이는 금붕어에게 잘 가라며 인사했다.


금붕어는 넓은 강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어항에서 주는 밥을 먹으며 혼자 살다가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유'가 자유롭게 잘 살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서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인간의 품을 벗어난 자연은 겉보기엔 평화로워도 실상은 약육강식의 세계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2주 동안 '우유'와 함께 하면서 아이는 무엇을 배웠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봐서는 별 대수롭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이런 경험은 훗날 아이가 성인이 되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넓은 강으로 보내주었지만 '우유'는 스마트폰 속 사진과 영상, 그리고 일기장 속에서 언제나 아이와 같이 있을 것이다. 여러 생각이 들지만 아이가 일기장에 적은 우유를 향한 마지막 인사로 글을 마친다.


"우유야 잘 지내! 만약 내가 너를 다시 만나면 먹이라도 줄게. 앞으로 잘 지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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