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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Apr 21. 2024

당신의 배려가 나를 화나게 할 때

스물일곱쯤 되었나? 난 30분 일찍 출근하고 2시간 늦게 퇴근하는 게 당연한 사원 나부랭이였다.


그날도 밀어닥치는 업무를 쳐내느라 숨 돌릴 새가 없었다.

"따르릉"

휴대전화가 울렸다. 교회형이었다. 한 살 많은 그와 난 1년 넘게 알고 지내며 서로 존대를 했으나 마음이 잘 맞았다. 화내는 일 없고 푸근한 인상의 형은 내 이름 뒤에 "형제"라고 항상 붙였다.


"네, 형님 웬일이세요?"

"OO형제, 저녁에 시간 있나요? 내가 형제 다니는 회사 주변에 볼일이 있어가는데 마치면 퇴근 시간이 될 것 같아서 같이 밥이나 먹자고 전화했어요."

매일 집 회사를 반복하던 내게 형의 저녁제안은 즐거운 약속이자 칼퇴근의 핑계가 될 것이었다.

"네, 그럼 6시까지 일을 마치고 정리하면 30분엔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디에서 보는 게 편할까요?"

"시간 맞춰 형제회사 앞으로 갈게요."

"에이, 제가 움직여야지요."

몇 번의 설왕설래로도 형의 고집을 못 꺾었다. 형이 6시 반에 맞춰 회사 앞으로 오기로 했다.


일의 마무리가 늦어졌다. 팀장의 갑작스러운 업무지시, 타 부서와의 업무조율 등 예기치 못한 변수에 평소처럼 일을 하다 보니 밖이 어두워졌다. 잊고 있는 게 있는 느낌에 고개를 드니 저녁 7시 10분이었다.

'아! 저녁약속'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이 몇 번 울리자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형제 이제 일이 끝났나요?"

"아직요. 지금 어디세요? 일하다 보니 형님과의 약속을 깜빡했어요. 죄송해요."

"회사 로비에 있어요. 형제 바쁘면 저녁은 다음에 먹어요."

"아뇨. 형님. 저 지금 내려갈게요. 일은 내일 하면 됩니다. 오셨으면 전화하시지 ……"

"형제 바쁠 줄은 알고 있으니 기다렸죠. 전화하면 방해될 거고"

"그래도 그렇지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내려갔을 텐데 … 40분이 넘게 기다리신 거잖아요. 아휴~"


형의 기다렸단 말에 미안함과 속상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약속을 까맣게 잊고 손님을 기다리게 한 내가 미우면서도 도착했단 연락도 없이 우직하게 기다린 형이 답답했다.


'잘못은 내가 해놓고 내가 화를 내는 경우가 다 있구나!'

형의 배려가 고마움을 주기보단 내 미안함을 더 크게 만들고  있었다. 대략 정리만 해둔 채 서둘러 퇴근했고 그날 식사에 음료도 전부 내가 계산했다. 그리고 형님께 부탁했다.

"이런 일이 혹시라도 다시 생기면 기다리지만 마시고 꼭 전화 주세요."


둘째 어린이집 등원길은 편도 2차로를 쭉 가다가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편도 1차로를 타고 아파트 진입로로 들어가는 코스이다.


아내가 운전을 하면 꼭 우회전하기 바로 전에 1차선에서 2차선으로 바꿨다. 나는 이점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전 블록 사거리에서 미리 2차선으로 바꾸지 않는 걸까? 앞에 주정차 차량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엊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전 사거리에서 신호 받을 때 2차선에 차가 없었다. 2차선 앞쪽에도 주정차 차량이 없었다. 미리 1차선에서 2차선에 들어가 있다가 신호가 바뀌면 한 블록 더 가서 바로 우회전하면 되는 것이었다.


꼭 끝까지 1차선을 고집하다가 사거리를 5미터 정도 남겨두고 2차선으로 가려니 뒤에서 빠르게 와서 옆에 붙은 차의 눈치를 봐야 했다. 게다가 뒤늦게 깜빡이를 넣고 슬금슬금 차선을 변경하니 1차선 뒤에 붙은 차량들은 우리 차가 빠질 때까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게 무슨 민폐인가?'


운전은 사람마다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다툼이 되기 쉬웠다. 몇 개월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더 참을 순 없었다. 성격상 궁금한 건 물어봐야 했다.


"왜 항상 옆에 2차선이 비어있는데도 미리 안 가고 사거리 다 와서 차선을 급하게 바꾸는 거예요? 그전 사거리에서 신호 기다릴 때 미리 바꿔두면 되지 않아요?"


"미리 바꾸면 그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는 차가 우리 뒤에 오면 우리 때문에 바로 우회전할걸 정지신호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100 대중에 아니 1,000 대중에 한 대도 없는 우회전 차량이 생길까 봐 미리 배려한단 말이에요?"


'와~ 그게 이유였다니'


최근 몇 달간 거기서 우회전하는 차량을 본 적이 없었는데도 혹여 있을 우회전 차량을 미리 생각한 아내의 배려심에 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그 옛날 날 배려해서 전화를 하지 않던 그 형이 떠오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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