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힐링마라톤에 참가하고 느낀 점

by CJbenitora

봄과 가을 시즌마다 달리기 대회를 신청한 지도 어느새 2년 째이다. 전문 러너들처럼 매주 시합을 신청하고 나가지는 않지만 분기별 두세 개의 대회를 나간다. 그때마다 지난 대회보다는 기록을 올려야 된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대회를 즐기기보다는 나의 한계를 시험하러 나가는 느낌이 되었다.


한계 깨기도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한발 한발 나가다 보니 5분 뛰는 것도 힘들었던 2년 전과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꼴찌권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 어디인가!'


2025년 상반기, 기록을 다투는 시합은 끝이 났다. 가을 대회까지 4개월간은 꾸준한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면 된다. 그런 상황에서 비경쟁으로 치러지는 지자체장배 힐링마라톤이 눈에 띄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다.


작년에는 참가비가 없었다는데 올해는 1만 원의 참가비가 있었다. SNS접수를 하고 계좌이체를 했고 번호표는 현장에서 받았다. 번호표를 받으며 지나가며 운영위원이 하는 말을 들었다.

"원래는 안되지만 현장에서 참가 접수도 가능합니다."

그의 말을 미뤄볼 때 목표한 500명의 모집인원이 다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록이 중요한 한국인에게 기록을 강요하지 않는 대회는 인기가 없구나!'

상반기 시합을 마친 홀가분한 내 입장에서 번호표 뒤에 기록칩이 없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8시에 행사가 시작하고 간략한 설명 후에 8시 30분에 출발하였다. 참여자들이 많이 없어서 태화강 산책로의 좁은 주로에도 인파 때문에 앞으로 못 나가는 느낌은 없었다. 국가정원 축구장에서 십리대밭을 거쳐 태화루로 뛰어가다 2km쯤 되는 지점에서 급수대가 나왔다. 출발 전에 목마른 느낌이 있었기에 물을 입에 머금고 컵을 쓰레기통에 골인시켰다. 초반에 힘을 쓰지 않는 것이 철칙이기에 일요일 아침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태화루의 반환점을 돌아 나오면서 내 뒤의 행렬들을 보았다. 태화루까지의 2.5km에서도 힘들어서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입문자나 초보자들이 많은 느낌이었다.


몸이 풀린 느낌이 들고 나를 앞서갈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앞서갔을 테니 앞에 가는 사람을 하나씩 집어서 목표로 삼기로 했다. 분홍 양말의 동호회 복을 입은 사람, 진한 녹색의 반바지를 입은 사람, 형광색 반팔티를 입은 사람을 각각 1km 이상을 조금씩 따라가며 차례로 추월했다. 무리하게 달리지는 않아도 꾸준히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그러면서 반대편에서 오는 선두그룹들과 파이팅을 주고받았다.


출발지점으로 돌아와서 5km를 채우고 반대방향으로 한참을 달리니 또 급수대가 나타났다. 반환점을 2개를 두고 빙 도는 코스라서 급수대를 2개만 세워도 4개를 세운 효과였다. 급수대에는 방울토마토와 바나나, 스낵 등을 담아놓은 종이컵도 있었는데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물로 목만 축이고 달려도 되는 10km에서 중간 간식은 달리기 초보들을 위한 것일 뿐이었다.

"방울토마토랑 바나나도 있습니다. 드시고 가세요."

선두부터 내가 지나갈 때까지는 한 명도 간식에는 손을 댄 사람이 없었는지 이렇게 외치던 운영요원 아저씨가 한마디 했다.

"간식은 아무도 안 먹네."


삼호교를 지나 다운동 초입까지 올라가니 다시 반환점이 나왔다. 반환점을 돌아가니 내 뒤에서 뛰는 사람들이 보였다. 분홍양말, 녹색바지, 형광티 모두 나와 얼마차이 나지 않는 거리에서 열심히 뛰고 있었다.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는데 여기서 속도를 줄이거나 걸으면 저 사람들에게 바로 추월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생겼다. 다시 아까의 급수대를 지나니 반대편의 후위권 주자들 일부가 방울토마토 간식을 먹고 있었다.

'저렇게 먹으면서 뛰는 게 힐링인데 말이야.'


하지만 나에게는 빨리 달리기를 끝내고 잔디밭에 앉아서 마시는 물 한 모금이 더 힐링이었다. 마지막 500미터쯤 남았을 때 200m쯤 앞에 한 무리가 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빨리 뛰어도 내 앞의 사람을 따라 잡기엔 늦었다는 생각에 결승점이 보여도 속도를 올릴 생각을 하지 않다가 100m 남겨두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보이기에 전력질주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출발 시간으로부터 48분이 지난 시점이었고 뛴 거리는 정확히 9km였다.


물과 주최 측에서 준비한 사은품인 양말, 핸드폰 넣는 조깅벨트, 팔토시를 받았다. 두부김치와 수육, 막걸리를 받아서 잔디밭에 앉아 숨을 골랐다. 선선한 바람, 햇살이 안 보이는 구름 많은 날씨가 달리기 딱 좋은 날씨를 만들고 있었다. 20분을 앉아서 쉬다가 결승점으로 가보았다. 아직도 주자들이 하나씩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미소를 짓고 있었고 비록 걷다 뛰다 했더라도 행복해 보였다.


이번 달리기로 동호회 사람들과 같이 달리는 경험을 하였다. 20~30대로만 구성된 동호회, 역사가 오래된 동호회, 선수층이 두터운 동호회 등 다양한 달리기 동호인들의 축제였다. 우리는 각자 잘 알지 못하지만 빠르고 느림에 관계없이 마음속으로 서로의 달리기를 응원하였다. 자신의 빠르기에 상관없이 완주하고 나면 모두가 출발 때와 동일한 입장이 되어 쉬고 먹고 마셨다.


전력을 쓴 레이스도 좋고 천천히 간식을 먹어가며 달리는 레이스도 좋다. 끝난 뒤에 즐거움을 느끼고 그 경험이 추억으로 남는다면 그 어떤 레이스라도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