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나는 그녀를 어학연수 시절 TESOL반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그녀는 내가 다니던 호주 브리즈번의 어학원 강사였다. 그녀는 인도계 여성으로 양복을 입을 때도 목에 스카프는 꼭 두르고 있었다. 피부톤으로 미루어 봤을 때 스리랑카 쪽 피가 흐를 것 같았다. 40대의 그녀는 작은 얼굴을 가진 미인상이었고 풍채가 조금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피오나였다.
단 1명, 스페인에서 온 학생을 제외하고는 10명이 넘는 어학원 TESOL반 학생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필리핀에서 공부를 하고 온 사람, 호주에서 일을 하다가 한국으로의 출국을 앞둔 사람, 직장을 관두고 연수를 온 사람, 호주 대학 진학 전에 연수를 받는 사람 등 여러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속에서 나는 괴짜로 통했다. 유승준이 한때 유행시킨 앞머리 한편에 꽁지머리를 남겨 둔 스포츠머리도 그랬지만 한국인들끼리 있을 때도 영어로만 말하였기 때문이었다. 어학원 안에서는 영어로만 말하여야 하는 규칙이 있었는데 이것을 안 지키는 사람이 괴짜가 아니고 지키는 사람이 괴짜가 된 것이었다. 우리반의 한국 학생들은 친목이 목적인가 싶을 정도로 쉬는 시간마다 교실에서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썼다. 나는 그것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TESOL반의 한국인들은 나에게만은 영어로 얘기해야만 했다.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스페인 학생은 많은 경우 나를 통해 다른 이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알게 되곤 하였다.
TESOL수업은 매 시간 발표와 숙제가 있었다. 발표 때 능수능란하게 영어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따라오기도 급급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니었지만 숙제를 부지런히 해갔고 발표도 중간은 갔다. 한국인임에도 한국인들과는 겉도는 나에게 피오나는 관심을 가져주었다. 발표를 진중하게 들어주었고 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얘기를 하면 좋은 포인트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피오나가 없을 때 한국인들끼리 한국말을 사용한다는 것을 피오나도 눈치채고 있었다. TESOL반 학생들이 조심한다고 하여도 슬쩍슬쩍 들리는 모양이었다. 말을 안 하면 안 하지 한국어를 쓰지 않는 나의 모습도 피오나에게는 모두 관찰되고 있었다.
그렇게 10주 과정 중 8주가 되어가던 어느 날 피오나는 우리 반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주말에 아이 생일잔치 겸 해서 친한 사람들과 파티를 할 거라고 했다. 참여하면 문화도 배우고 친구도 사귀고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주 토요일, 파티에 참석하기로 한 TESOL반 사람들끼리 모여 마트에서 피오나 집에서 먹을 고기와 채소, 소시지를 샀다. 피오나가 전화로 알려준 데로 전철을 타고 1시간쯤 지나서 나오는 한적한 시골 역에서 내렸다. '생각보다 외지에 사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역 앞으로 나오니 피오나가 보낸 승합차량이 서 있었다. 고등학생이라는 그녀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얼마 전 만 18세가 넘어 운전면허를 땄다는 첫째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30분을 더 산길과 시골길을 달렸다.
차는 한적한 저택 앞에서 멈췄다. 파티가 준비되어있었고 우리는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피오나의 소개로 가족들과 인사하였는데 그녀가 18세부터 2세 아이까지 아들만 5명을 가진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녀의 친구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피오나의 친구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졌고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피오나의 남편은 백인이었으며 뒷마당에서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우리가 사간 고기와 소시지도 그릴에 올려 구워주었다. 피오나의 아들들은 다 구워진 고기를 실내에 있는 테이블로 날아다 주었고 그 덕에 우리는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는 감미로운 밴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친구들이 직접 악기를 가져와 뒷마당 한쪽에 미니 연주회를 연 것이었다. 식사를 하고 음악 속에서 와인잔을 들고 있으니 호주인이 된 느낌이었다. '이곳은 외진 곳에 있어 피오나네 가족은 가끔씩 사람들과 모여 파티를 하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과는 다른 호주인의 삶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피오나의 집에서 이색적인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되었다. 아침에 브리즈번 시내를 가로질러 어학원으로 등원하고 있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제프리~"
"오~ 피오나, 반가워요. 주말 파티는 정말 즐거웠어요."
"그랬어요? 다행이네요. 내 친구들은 어땠나요?"
"모두 친절했고 자상한 분들이더군요. 그분들이 말을 걸어줘서 파티의 주인공이 된 듯 잘 놀 수 있었어요."
어학원으로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다.
평소 피오나와는 등원 시간이 비슷해 간간히 등원 길에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제프리는 잘하고 있어요. 학원의 방침에도 잘 따라주고 있고, 발표도 많이 늘었어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직 멀었지만 피오나가 잘 가르쳐 주시니 믿고 따라 가볼게요."
그녀는 이후로도 길에서 만날 때마다 누구보다 반가워해 주었고 내 이름을 크게 불러주었다.
어학원 수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9주 차에서 마지막인 10주 차로 넘어가는 금요일, 피오나는 우리 TESOL반에서 한 명을 뽑아 호주에서 직접 아이를 가르쳐 볼 기회를 준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 반의 우등생들은 모두 이런 기회를 욕심내었다. 생활 영어의 달인 JY와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섞어 얘기하는 자신감 여왕 MH의 2파전으로 압축되었다. TESOL과정 종료 전에 각 학생별 1:1 면담을 통해 일일 선생님이 될 학생을 정하기로 하였다. 내가 면담할 차례가 되어 피오나 앞에 앉았다. 피오나는 여러 가지 격려 말을 해주었고 그간 보아온 나의 장점을 칭찬해주며 앞으로 잘 될 거라는 덕담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일일 선생님이 될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피오나는 일일 선생님 경험은 특별할 것이고 평소 해 온 것을 보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녀는 이미 나를 원픽으로 꼽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러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JY와 MH가 그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을 아는데 내가 중간에 날아들어와 상황을 정리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JY와 MH의 열정이 높으니 둘 중에 한 명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완곡히 거절하면서 저를 높게 평가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나왔다. 결국 JY가 일일 선생님을 하게 되었고 잠시의 신경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피오나는 TESOL과정 중 반에서 아웃사이더 기질이 가장 뚜렷하면서 고집을 가진 나를 좋게 봐주었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각자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때 나는 그녀의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내가 호주에 있을 때는 그녀의 새로운 소식에 일일이 댓글을 달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간간히 그녀의 페이스북에 댓글을 남겼다. 그녀는 페이스북으로 새로운 영어 클래스 개설 소식, 캠핑, 봉사 등의 활동 소식을 전하였다. 그녀의 멋진 친구들은 페이스북에서도 신사적이고 유머러스하게 피오나를 칭찬하고 격려하여 주고 있었다. 그것이 피오나가 자신의 소식들을 페이스북으로 알리는 원동력으로 보였다.
2022년 8월 24일, 십년도 더 전에 처음 만나 지금까지 SNS으로 소식을 나누던 피오나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임종 소식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피오나는 2년쯤 전에 1차로 암을 치료한 적이 있었다.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 이제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 재발을 하면서 폐렴 합병증으로 명을 달리 한 것이었다. 피오나의 페이스북의 마지막 포스트는 그녀가 병실에서 5명의 아들들에게 둘러싸여 미소 짓고 있는 사진이었다. 병원복을 입고 호흡기를 한 엄마의 옆에서 아들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간 엄마가 자신을 키워준 은혜에 감사하며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에 눈물을 보이지 않고 감사로 마무리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추도의 분위기로 엄숙했겠지만 그들의 작별 방식도 의미가 있어 보였다.
피오나는 아웃사이더 외국인 학생 1에 불과했던 내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직접 강단에 설 기회를 주려고 했다.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호주의 파티문화를 접하게 해 주었다. TESOL과정 내내 영어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SNS에 댓글을 남기면 답글을 남겨주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슬픔보다는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진심으로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준 적이 있는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격려해준 적이 있는가? 누군가를 진실로 칭찬해준 적이 있는가?
피오나는 생을 마감하면서 나에게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다. 잘 사는 것은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타인의 장점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격려하여 힘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잘 죽는 것은 나를 추억해주고 내게 감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으며 임종을 맞는 것이 아닐까?
이제 피오나는 이 세상에 없다. 믿기지 않지만 그녀를 실제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사라졌다. 그녀가 없는 세상은 전과 다름없이 흘러갈 것이다. 피오나는 내가 만나오고 만날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명일뿐이지만 그녀가 내 인생에 남긴 추억들과 가르침은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오롯이 내 안에 남아 영원히 반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