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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Oct 17. 2022

세상엔 나와 맞지 않는 일이 있다

호주

 "여보세요? 일이 있다는 카페 글 보고 연락드렸어요."


 호주인처럼 살려면 직장을 가져야 했다. 한국에서 벌어 온 돈을 써가며 사는 삶은 호주살이라 할 수 없었다. 어학원을 수료했으니 온전히 홀로 서야 했다. 직업소개소에 들러 이름을 올려놓으면서 1달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단기로 일할 곳이 필요했다. 농장일을 택했다. 첫째 이유는 '썬 브리즈번' 등의 호주 내 한인 온라인 카페 공지에 농장일 할 사람을 구하는 글이 수시로 올라왔다. 둘째는 아무런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었다. 셋째는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가진 농장에 대한 좋은 선입견이었다.


 호주 농장은 워홀러의 필수코스였다. 적어도 자기가 경험한 딸기, 토마토 수확의 일상을 연재하던  워홀러의 웹툰을 재밌게 보던 나에게는 그랬다. 자연에서 일하며 여러 나라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돈도 버는 농장일은   봐야 할 일처럼 생각되었다.


 마침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온라인 카페에는 양파와 토마토 시즌이 시작된다며 지금 합류하면 돈을 많이   있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글의 마지막에 적힌 매니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농장일이 있다는 카페 글 보고 연락드렸어요."

"아 네 지금 양파 픽킹은 아직 시작 안 했는데 곧 방울토마토 시즌이에요. 지금 오시면 미리 자리 잡을 수 있어 딱 좋습니다."

"그래요? 일은 어디서 하고 잠은 어찌 자나요? 숙소가 따로 있나요? 제가 차가 없는데 이동은 어떻게 하고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희가 픽업 갈 거고요. 숙소와 일터까지도 차로 이동해드려요. 숙소는 새로 빌려놓은데라 깨끗하고요."


매니저란 사람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믿고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비용을 물었다.


"숙소비는 얼마고 디파짓(보증금)도 있습니까?"

"그건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제가 이름 등록해둘 테니 언제까지 어디로 오세요."


그는 비용에 대해 말해주진 않았지만 내일 오후에 출발한다며 장소와 시간을 말해주었다.

다음날 오전에 그동안 살던 방을 빼고 디파짓을 받았다. 짐을 싸서 오후에 약속 장소로 갔다.


'무엇을 하더라도 다 경험이다. 즐겁게 해 보자!'


 약속 장소인 브리즈번 시내 모퉁이 빌딩 앞에는 승합차 하나가 서 있었다. 매니저가 옆에 서서 명단 체크를 하고 있었다. 내 또래의 매니저는 그리 신뢰 가는 외모는 아니었지만 말투가 상냥했다. 승합차는 짐 싣는 칸이 넓고 좌석은 몇 개 없었다. 나 외에 네댓 명이 더 타고 있었다. 여자들도 있고 자리도 좁았기에 승합차 바닥에 털썩 앉았다.


 출발 정원이 차자 차는 출발했다. 금세 시내를 벗어나 뻥 뚫린 시골길을 달렸다. 매니저는 별 말이 없었고 우린 그저 희망에 부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는 한참 달리더니 외진 마을 한편에 섰다. 각자 가방을 가지고 내렸다. 매니저는 우리 일꾼들에게 돈을 걷었다. 픽업비, 2주 치의 방값과 보증금, 한 달 일해야 하는 보증금(워킹 본드) 명목의 480 호주달러였다. 모두 주섬주섬 돈을 꺼내 건넸다. 매니저는 우리 이름이 적힌 리스트에 납부 여부를 체크하고는 집으로 안내했다.


 집은 새로 지어져 깨끗했다. 근데 너무 깨끗해서 문제였다. 가구나 가전제품이 거의 없었고 특히 남자들 방은 대학 신입 MT 때 민박집의 그 방 넓고 휑한 방과 다름없었다. 가방을 한편에 두고 나가니 씻기 위해 사람들이 나왔다. 욕실이 하나라 대여섯 명의 남녀가 같이 써야 했다. 호텔을 바라고 온 것이 아니니 실망스러워도 그러려니 했다. 돈을 벌러 왔지 휴양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 나들이를 갔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마트는 시골치고는 컸지만 물건들은 단출했다. 빵과 우유를 포함한 먹거리를 사 와 먹고는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 4시가 되자 매니저와 함께 일하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부매니저가 우리를 깨웠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승합차에 탔다. 승합차 바닥에 앉아 뜨는 해를 바라보며 30분을 갔다. 이제 일을 한다는 설렘과 아직 잠에 덜 깬 멍한 감정이 교차했다. 도착한 농장은 끝도 없이 펼쳐진 밭이었다. 그 밭에는 레몬그라스라는 평생 처음 들어보는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이 식물은 동남아에서 많이 쓰는 향신료의 재료로 레몬 향이 난다고 해서 레몬그라스라고 했다. 억새인가 싶으면서도 파와 같은 느낌도 나는 이 식물은 사람 키만 했다.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땅에 심어져 있는 낯선 레몬그라스들은 장관이었다. 우리는 이날 레몬그라스를 수확하는 일을 맡았다.


 부매니저는 농장의 주인인 사오십대로 보이는 베트남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곤 우리를 4명이 한 조가 되도록 나누었다. 각 조에게 작업 범위를 할당하는데 언 듯 생각해도 오늘 안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면 익숙해져서 금방 하겠지'라는 긍정적 생각으로 부매니저의 수확 시범을 지켜보았다. 그는 고무 코팅된 장갑을 끼고 레몬그라스 하나를 잡아당겨 뽑았다. 뽑은 식물은 줄기를 꺾어 가위로 다듬어 한 상자씩 쟁여 놓았다. 힘쓰는 그의 모습을 보니 레몬그라스 수확이 쉬워 보이진 않았다. 작업이 시작되었다. 레몬그라스는 역시나 잘 뽑히지 않았다. 고운 모래밭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이 식물은 줄기를 잡고 한참을 씩씩대어야 뿌리가 뽑혀 나왔다.


하나를 뽑는데 이렇게 힘을 써야 한다니...  

 우리는 오전 내내 레몬그라스와 씨름했다. 여름 해가 뜰 때 시작된 일은 중천에 걸리도록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배가 고프고 힘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초보 일꾼은 식사시간이 언제인지 알지 못해 12시부터는 작업 한번 하고 시계 한번 보고를 반복했다. 1시가 다되어야 점심시간이라는 부매니저의 말이 들렸다. 쨍쨍한 해를 피할 곳이 마땅 찮아 밭 가운데 앉았다. 각자가 아침에 싼 음식을 먹었다. 집에 제대로 된 가전제품이 없어 어제 장 볼 때 밥이나 반찬 될 만한걸 담았다 뺐는데 그게 아쉬웠다. 내가 싼 음식은 아침에 먹고 남은 빵 몇 쪽이 전부였다. 오늘 숙소에 돌아가면 마트부터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린 배가 차고 마른 목에 물을 들이켜는데도 힘은 나지 않았다.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어쩌지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농장주는 이런 우리를 위한 지원은커녕 아침에 언듯 보이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메리카에 팔려간 노예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일을 하면 할수록 자유를 가진 자본주의 노동자가 이런 기분으로 노동을 한다는 것이 상식 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매니저를 비롯한 몇몇의 관리 인원은 우리가 힘들게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감시 그 외의 일은 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일의 진척을 확인하는 정도가 그들의 업무였다. 정확한 시작시간과 쉬는 시간,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관리인원들이 일러주는 때에 맞춰 행동해야 했다. 당연히 언제 끝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땡볕에서의 오후 작업은 햇볕과 레몬그라스라는 어려운 상대(難敵) 둘과의 싸움이었다. 너무 힘이 들다 보니 할당량 채우기는 마음속으로 포기하였다. 언젠가는 끝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뿌리를 단단히 내린 레몬그라스를 잡아당겼다. 머리 쓸 일없는 반복 작업이라 느려도 시간은 갔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광대한 자연 속에서 너른 평원 저 끝으로 태양이 지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지쳐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고 갈증으로 입이 바짝 말랐지만 풍경은 아름다웠다. 하루 종일 레몬그라스와 씨름하던 우리의 마음속에 이제 집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부매니저는 냉정했다. 할당된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변이 어둑해졌는데도 농장주가 시킨 양을 다 못했다며 몰아붙였다. 저녁시간이라 레몬그라스의 형체도 잘 보이지 않는데도 수확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그저 황당했다. 결국 주변이 깜깜해지고 나서야 우리의 작업은 끝났다. 하루 종일 뭐하고 놀았는지 때깔 좋은 베트남 농장주는 할당을 못 채운 죄를 부매니저에게 물었다. 쫑알쫑알 대는 그들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굽실대던 그의 모습은 아까 우리를 대할 때의 매정한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지금 이 사태에 농장주도 화가 나겠지만 관리자도 노동자도 모두 화가 나있었다. 노동자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일을 몰아만 붙인 관리자들이 미웠다. 결국 중간에서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노동자의 입장도 이해 못 하는 관리자들이 오늘 일을 망친 것이었다. 덮어놓고 초보 일꾼들에게 베테랑이나 되어야 시간 내 할 수 있을만한 일을 주는 것은 욕심이었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현관으로 들어서니 부매니저가 흙 묻은 장화를 씻고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작업하다 온 신발로 들어가면 지저분해지는 것은 맞지만 미리 가이드를 줬으면 될 일이었다. 소리칠 일인가 싶었다. 그도 오늘 작업을 다 마치지 못한 것에 대해 스트레스 받아있을 것이니 싸움을 피하려면 그러려니 넘어가야 했다. 그에게 일일이 항의하기에는 장장 12시간의 노동에 지쳐있기도 했다. 간단히 챙겨 먹고 자리에 누웠다.


 어제부터 오늘까지를 찬찬히 되새겨보았다. 매니저는 우리에게 오늘 일이 어떨지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오늘뿐 아니라 이번 한 주 우린 어떤 일을 어떻게 하게 되고 그래서 할당을 채울 때면 얼마를 어떤 방식으로 정산할지를 얘기해주었어야 했다. 그런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서는 디파짓 형식으로 선금은 얼른 받아 챙겼다. 우리는 첫날 생필품 사는 것 외에는 외출 시간도 없었다. 일을 빨리 마쳐야 외출을 할 텐데 이렇게 늦게 마치니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다. 우린 차도 없었고 정확히는 여기가 어디인지도 감이 없었다. 게톤(Gatton)이라는 지역 이름만 알 뿐이었다. 평소 상식을 외치는 나는 여러 가지로 설명이 부족한 현재의 상황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잠을 청하는데 메시지가 왔다. 직업소개소에서 곧 일자리가 날 것 같으니 내일 오후에 소개소로 방문을 해 달라는 문자였다.


 1달을 기다려야 한다더니...... 


이렇게 빨리 일자리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직업소개소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바로 매니저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매니저는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집 밖으로 따라 나왔다.


"오늘 일을 해보니 농사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네요?"

"......"

"내일 우리는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오늘처럼 레몬그라스를 뽑나요?"

"아니요. 내일은 방울토마토를 따러 갈 겁니다. 일찍 자 둬야 새벽에 늦지 않게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우리가 이번 주 어떤 일을 할지 계획이 있다는 건데 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습니까?"

"저희가 일하는 장소까지 데려다주고 숙소도 케어해주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그래도 상식이란 게 있지. 새벽에 가서 저녁에 가게들 문 닫을 때 돌아오면 어떡합니까? 내일 점심도 빵으로 때워야 합니까?"

"그러게 마트에서 장을 많이 보시라고 얘기했잖아요?"


 평소라면 대화가 계속될수록 자기 입장만 얘기하는 그에게 질문하는 내 목소리가 점점 커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운이 없었고 대안이 있었기에 쥐 죽은 듯 조용한 호주 시골에서의 대화는 차분하게 계속되었다.


"저는 계속해서 이렇게 일을 할 거면 더 이상 일을 못하겠으니 환불해주십시오."

"하루 일을 하고 그만하겠다는 겁니까? 아이~씨 X"

"지금 욕했습니까? 최초 얘기와 다르잖아요? 그리고 오늘 일한 건 일당이 얼만데요? 그것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잖습니까? 오늘 일당은 안 받을 테니 내가 낸 비용 다 돌려주고 브리즈번에 다시 데려다주세요."


 그는 직접 손으로 돌돌 말아놓은 수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내가 호주에 아는 사람들 풀면 당신 하나 땅에 묻는 건 어렵지 않아요. 이러지 맙시다."

"협박하는 겁니까? 지금 건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어쨌든 나를 내일 브리즈번에 데려다 놓으세요."


전화기를 들고 호주 폭주족들 부르니 마니 협박을 계속하던 그는 돈은 돌려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미 방값은 디파짓을 내는데 다 썼다고 했다. 이것도 신뢰할 만한 말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틀 자고 480달러를 날릴 수는 없었다. 그는 나의 강경한 태도에 한풀 꺾였다.


"일단 내일 아침에는 차가 없으니 오전에 토마토 따는 일을 하고 있으면 차가 오는 데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짐을 챙겨두겠습니다."


방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내게 물었다. 나는 이렇게는 일을 못하겠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얘기해주고 내일 브리즈번으로 다시 돌아갈 거라고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그들은 남아서 워킹 본드로 매니저가 내건 1달 동안은 일할 것이라고 했다. 돌아가 봐야 할 것도 없고 곧 시즌이 되는 작물들이 있다고 하니 거기에 기대를 걸어본다고 하였다.


'이런 노예 같은 생활을 4주를 더 견뎌가며 한다고? 노동자를 사람 취급도 안 하는 저 놈들과?'


한번 마음을 틀어버리니 한 순간도 여기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돌아갈 준비를 다 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이 밝았고 우리는 역시나 봉고차에 실려 어딘지 알 수 없는 방울토마토 밭에 내려졌다. 4명이서 한 조를 짜서 토마토 한 줄 식을 맡았다. 흰색 원통 상자를 들고 다니며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를 따서 담는 일이었다. 한통이 가득 차면 농장의 매니저 확인 후 내 실적이 되는 것이었다. 한통에 7불 정도 쳐 준다고 농장주가 알려주었다. 일 시작 전에 농장주가 일은 어떻게 하는 건지, 실적에 따른 정산금은 얼만지를 얘기해주니 이제야 제대로 된 곳에서 일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 레몬그라스의 개념 없는 업무 지시와 비교가 되었다. 여기서는 일이 익숙해지면 1시간당 10 상자까지도 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줬다.


 이렇게 시작이 좋았지만 아쉬운 건 아직 방울토마토 시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제야 슬슬 초록색의 과실이 주황색 빛을 머금어가고 있었다. 성질 급한 토마토 몇 개만이 붉은빛을 띠었기에 그것을 빨리 찾아 상자에 넣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길이었다. 그렇게 한 상자를 채워가면 배 나온 호주인 농장 매니저가 새빨갛지 않은 토마토를 보며 지적을 했다. 내 눈에는 주황색보다 빨간색에 더 가까운 토마토인데도 한 소릴 들었다. 사실 새빨간 토마토는 100알 중에 1알 있을까 말까 했다. 여기도 일을 하면 할수록 욕을 먹고 돈도 안 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2통을 따고 나서는 손을 멈췄다. 어차피 돌아가면 오늘 수당을 받을 길이 없었다. 빨간 토마토를 찾으려고 고개 한번 못 들고 일하다가 일을 놔버리는 순간 눈에 그림 같은 주변 풍경이 들어왔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드넓은 토마토 밭에서 한 통이라도 더 따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들과 내가 분리되었다. 같은 공간인데도 나는 치열한 작업공간 속이 아니라 조용하고 상쾌한 시골 풍경 속에 있었다. 이렇게 된 거 토마토나 따 먹으며 데리러 올 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입속으로 들어가는 토마토의 싱그런 느낌과 덥지도 춥지도 않은 시원한 바람이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했다.


 차는 내가 생각한 시간보다 1시간을 늦게 왔다. 그 1시간은 차가 오지 않는다는 초조함보다는 언제 호주 시골에서 이렇게 있어보겠냐고 생각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집에 잠시 들러 작업복을 일상복으로 바꿔 입고 가방을 들고 다시 탔다. 매니저는 브리즈번으로 가는 내내 엊그제와 같이 사람 좋은 말투로 얘기했다. 어제의 협박조의 말투가 귓가에 맴도는 나는 헛웃음이 났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들어줬다. 조금 있으면 시즌인데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느니, 자기들도 일하는 사람들 관리하는 게 힘들다느니, 다 자기 입장에서 하는 푸념이었다. 정작 나에게는 배부른 소리로만 들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니 익숙한 브리즈번 시내가 나왔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엊그제 차를 탔던 장소에서 차가 섰다. 매니저가 70불을 건넸다. 보증금 100불에서 픽업비 30불을 빼고 준다고 했다. 2주 치 방값과 워킹 본드 명목의 돈은 결국 돌려주지 않았다. 

  

 끝까지 그들은 나와 협의되지 않은 그들의 룰을 내세웠다. 돈을 벌러 갔다가 이틀 동안 한화 40만원 돈을 잃고 돌아온 것이었다. 그저 무사히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온 것에 만족해야 했다. 저 사람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봉고차 바퀴에 펑크나 났으면 하는 애꿎은 소원이나 빌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세상엔 나와 맞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이틀 만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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