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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Oct 19. 2022

꿈꾸던 일은 예고 없이 다가온다

호주

 사람은 누구나 버킷리스트가 있다. 보통의 버킷리스트들은 하고 싶은 일의 대부분이 내가 아니라도 누구나 하고 싶어 할 만한 내용들인 경우가 많다. 내 버킷리스트에서 그런 것들을 솎아내면 바로 이 꿈이 있었다. 


 한집에 12명이 살아가니 셰어 동료들 때문에 생기는 즐거움보다는 힘듬이 많았다. 한 녀석은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가면 1시간 동안은 나오질 않았다. 욕조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그 1시간을 계속해서 뜨거운 물을 틀었다. 잠시도 물을 끄지 않았다. 어떤 녀석은 냉장고에 있는 남의 음식에 조금씩 손댔다. 본인은 티가 안 난다고 생각했겠지만 피해자들은 물건이 없어지거나 양이 줄어있는 것을 바로 알아냈다. 그 외에도 집에 들어오면 내 방 말고는 쉴 곳이 없었다. 자유시간을 보내라고 있는 거실은 거실 셰어 하는 녀석들의 이불과 가방으로 항상 엉망이었다. 자신이 사용한 주방도구를 제대로 정리해놓지 않거나 식사를 하고 뒷정리를 바로 하지 않는 것은 애교 수준이었다. 이런 혼돈(chaos)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어학원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면 오후 늦은 시간에야 집에 들어온다는 사실 하나였다. 씻고 저녁을 먹으면 방문을 닫고 생활을 하니 견딜 수 있었다. 룸메이트 동생도 조용히 자기 공부하는 녀석이라 방문만 열어놓지 않으면 바깥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 집은 출입용 카드 열쇠(Card Key)가 4개였다. 큰방, 작은방 1, 작은방 2에서 각각 하나씩 쓰고 예비용 카드 열쇠는 거실 및 발코니 셰어 5명이 돌아가며 사용하고 있었다. 카드 열쇠로는 집뿐 아니라 아파트에서 제공하는 수영장이나 헬스장, 사우나 등을 출입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이 터져 버렸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 들러 공부를 하고 있었다. 룸메이트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어디예요?"

"시티 도서관에 있어. 왜?"

"저 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경비원이 입구에서 열쇠를 뺐어갔어요?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형은 모르죠?"

"그래, 무슨 일이지? 암튼 나도 얼른 올라갈게."


 서둘러 짐을 싸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 입구에는 셰어 식구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을 통해 자초지종을 들었다. 사연인즉슨 거실 셰어를 하던 한 명이 아파트의 복지시설을 이용하고 싶은데 열쇠가 부족하자 아파트 관리실에 열쇠 추가 발급을 신청을 하였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평소에도 우리 집에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추정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열쇠를 4개나 쓰면서 한 개를 더 받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수상하게 여긴 경비원이 같이 집으로 가자고 했다. 경비원 2명이 집 문을 열자 빼곡하게 들어찬 신발이 보였고 경악한 그들은 집으로 들어가 거실에 놓인 짐과 방마다 가득 찬 사람들을 보고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하였다. 식구들은 모두 간단한 소지품만 챙긴 채 쫓겨났고 현재는 경찰이 집에 출입금지를 붙여두어 집으로 들어갈 수 없던 것이었다.


 불법으로 한집에 셰어를 12명이나 주고 이익을 취한 것은 셰어 마스터인데 억울하게 우리가 쫓겨나버린 것이었다. 당장 곤란해진 마스터는 자업자득이지만 우리의 살길을 찾아야 했다. 일단 경비원과 그들이 부른 경찰 측에 지금 귀가한 사람들은 소지품이라도 챙기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경찰은 우리가 오늘 밤 잘 데가 없다고 하니 5분만 들어가게 해 주겠다고 하였다. 5분 동안 지갑과 몇 가지 소지품만 챙겨서 나왔다. 경찰은 오늘은 집을 폐쇄하니 각자 알아서 자고 내일 오전에 문을 열어줄 테니 짐을 모두 챙겨서 방을 비우라고 하고 돌아갔다. 


 아파트 입구에서 서있는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브리즈번 시내로 이동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인 헝그리 잭(Hungry Jacks)의 구석에 모여 각자 오늘 밤을 보낼 방법을 모색했다. 동생들은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2명씩 짝을 이뤄 호텔에 방을 구하거나 아는 친구의 셰어하우스로 각기 흩어졌다. 나도 아는 누님에게 전화를 했지만 오늘 잘 빈방을 구할 수 없었다. 동갑내기 어학원 친구가 있긴 했지만 아직 서로 이런 일로 연락할 정도로 친하지 않았다. 하루를 재워달라고 할 용기도 없었다. 그렇다면 숙박시설을 이용해야 했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는 방이 없었다. 그렇다고 100불이 넘는 호텔에서 잘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할지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갑작스럽게도 버킷리스트 항목이 생각났다. 나는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제대로 된 노숙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A형 텐트에서 핫팩으로 견디던 혹한기 훈련의 아쉬움이 남아있는 것인지, 1박 2일과 같은 야생 버라이어티의 영향인지, 혹은 그저 객기인지는 모르지만 그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선 노숙을 하기에는 따뜻한 집이 있었고 사회에서 쌓은 나름의 위치가 있었다. 노숙을 해서 내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으니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호주 아닌가!

 오늘 집에서 쫓겨난 것은 하늘이 준 노숙의 명분이었다. 먼 타국인 호주에서 노숙을 한다고 해서 누가 손가락질할 리 없었다. 노숙을 함으로써 하룻밤 숙박비를 아낄 수 있는 것은 덤이었다. 갑작스럽게 버킷리스트에 있던 한 가지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동생들은 모두 각자의 숙소로 떠났고 나는 좀 더 어두워질 때까지 내일 수업에 활용할 자료를 훑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12시가 넘자 거리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곳곳에는 딱 필요한 가로등 불빛들 만이 남았다. 헝그리 잭을 나와 걸었다. 여행자용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거리는 그 시간에도 우르르 모여 술을 마시고 떠들고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들러 브로셔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브리즈번 강 쪽으로 걷는데 파출소 뒤편에 바람이 없으면서 사람들 이목이 쏠리지 않는 자리가 보였다. 노숙 전에 괜히 의식처럼 집이 있는 로마 파크까지 걸어갔다가 초인종을 한번 눌러보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왔다. 아까 봐 둔 자리에 브로셔를 깔고 앉았다. 


 한참 앉아서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쪼그려 누웠다. 한국으로 치면 4월의 날씨라 남위 27도 근처의 따뜻한 브리즈번이라도 밤기온은 쌀쌀했다. 3~4시간만 자면 서서히 해가 떠오를 거라는 기대를 하며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눈을 감았다. 땅에서 한기가 올라왔다. 


이래서 서울역 지하도의 노숙인들이 박스와 신문지를 잔뜩 가져다 놓았구나...


 한 시간 겨우 눈을 붙였는데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초짜라 밖에서 잘 준비가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덜덜 떨면서 시내 중심가로 돌아왔다. 어디 따뜻한 곳이 없을까 둘러보았다. 평소 자주 가던 메이어 상가 입구가 열려있었다. 입구로 들어가니 잠겨 있을 거라 생각했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문을 닫으니 따뜻했다. 그냥 여기에 앉아 눈을 붙이고 싶었다. 잠시 고민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새벽에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포기하고 다시 헝그리 잭으로 이동했다. 이때가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가게 계산대 앞에는 사람들이 꽤 서있었다. 햄버거 세트 하나를 시켜 빈자리가 많은 2층으로 올라갔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가져온 브로셔를 읽으며 최대한 천천히 식사를 하였다.


 새벽 5시 20분이 되니 서서히 거리에 빛이 들어왔다. 주변에서 새벽까지 떠들던 사람들이 돌아갔다. 사람들이 자리를 비우자 직원이 올라와서 아침맞이 청소를 시작했다. 이 시간을 기다린 비둘기들이 직원이 열어둔 2층으로 창으로 날아들어와 사람들이 먹다 흘려놓고 간 감자튀김을 주워 먹었다. 직원은 비둘기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를 한 번씩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그가 청소를 하든 말든 노트북 컴퓨터를 켜 놓고 자리를 사수했다.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으면 어학원 문을 여는 아침 8시까지 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가지 않던 시곗바늘이 드디어 8시를 가리켰다. 경찰이 오늘 오전 9시에 집 문을 열어준다고 했기에 어학원에 일찍 등원하여 교실에 가방을 부려놓았다. 집으로 이동하면서 아직 등원하지 않은 짝꿍에게 전화 걸어 자리 비우는 사유를 설명하였다. 정리되는 데로 바로 다시 등원할 테니 선생님께도 그리 전해 달라고 하였다. 


 집 앞에 도착하자 각자 밤을 보내고 온 동생들이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9시가 되자 셰어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관리 사무소의 매니저가 입구에 서서 우리에게 1시간 동안 각자 챙길 것 챙겨서 나오라고 안내하였다. 이후에는 다시는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후 3시에 셰어 마스터를 여기로 오라고 해놨으니 그때 와서 보증금을 받으라고 하였다. 그는 모두가 그의 말을 이해하였다고 말해주자 문을 열어주었다. 다른 셰어 메이트들이 짐을 챙기고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을 때 나는 라면을 하나 끓여먹었다. 그러고 나니 씻을 시간도 장소도 없어 잠시 욕실이 빌 때 세수만 했다. 그리고는 윗옷만 갈아입고 가방을 싸서 나왔다. 벌써 10시 반이 되어 있었다. 짐을 들고 어젯밤에는 자리가 없다던 게스트 하우스로 이동하니 빈방이 났다고 하였다. 집을 구할 동안 며칠 살기로 하고 짐을 풀어두었다.


 짧은 노숙 체험으로 난 노숙이 낭만적이 아니란 것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만약 그날 그렇게 춥지 않았다면 파출소 옆 공터에서 해 뜨는 아침까지 잘 수 있었을까? 박스든 신문이든 노숙할 준비를 제대로 갖추고 했다면 따뜻하게 자고 일어나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까?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명확했다. 나의 버킷리스트에서 한 가지 소원이 지워진 것이었다. 어학원으로 발길을 옮기며 결심을 했다. 이제 다시는 나 자신을 노숙을 할 상황에 놓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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