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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ul 31. 2022

한 집에 12 명, 그 속의 나

호주

한국에선 간간이 저개발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닭장 같은 곳에서 살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좁은 기숙사 방에서 몇 명씩 새우잠을 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일부는 한국인 고용주를 욕하지만 일부는 못 사는 나라에서 와서 돈 아끼려고 저런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피해자일지 모른다.


브리즈번에서 어학원을 10주 정도 다닐 동안 머물 숙소를 찾았다. 찾는 동안 하루 40불이 드는 백패커(게스트하우스)에서 계속 묵기에는 불편함이 만만치 않았다. 온라인 카페에서 1주일 단기 셰어가 올라왔기에 방을 옮겼다. 7일간의 여유가 확보되었다. 그 사이 어학원 수업이 시작되었다. 브리즈번이 처음인 나는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사는지가 궁금했다. 그들은 모두 시내와는 좀 떨어진 5 존과 6 존 정도에서 살고 있었다. 브리즈번은 시내에서 떨어진 거리에 따라 1 존부터 23 존까지 나뉘어 있는데 존(zone)이 멀수록 대중교통 비용이 점점 비싸질뿐더러 통학시간도 더 걸렸다. 그럼에도 그들이 1 존이나 2 존에 살지 않는 것은 방세가 살벌하기 때문이었다. 6 존에서는 1주에 200불(호주$)이면 혼자서도 넓은 방을 쓸 수 있지만 시내는 400불이라도 그다지 넓지 않은 방을 둘이서 같이 써야 하는 차이였다. 비용을 생각하면 좀 떨어진 곳에 집을 구해야 했지만 기왕 공부를 하려면 동선이 짧아야 몰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시내를 계속 물색했다.


방을 빼야  날이 임박할 때까지 시내 인근에 적당한 셰어가 나오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져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데 시내 윗동네인 로마 스트리트의  아파트에 방이 하나 났다. 큰방 하나, 작은방 2개가 있는 아파트에 작은방을 2명이서 셰어 하는 조건이었다. 셰어 아파트 공고를 올린 셰어 운영자에게 바로 전화를 넣었다. 한국인이었고 나와 동갑이었다. 호주에서 결혼하여 아기  있고 이런 셰어를 여러  운영한다고 하였다. 자신이 운영하는 아파트  가장 시내와 근접한  아파트는 큰방에 3, 작은방에 2명씩 사는데 모두 한국인이라고 하였다.  방에  카드를  장씩 주기 때문에 같은 방을 셰어 하는 사람과  배분해서 출입을 하여야 한다고 했다. 보증금(deposit) 호주의 보통 셰어처럼 2 치를 걸면 된다고 하였다. 집을 직접 보기로 하고 시내에서 걸어서 5 거리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키가 크고 반바지에 티를 걸치고 한쪽 어깨에 치는 돈가방을  운영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보자마자 750불을 요구했다. 1주에 250 보증금 500,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었다.


집을 보고 주겠다고 하니 여기서는 원래 그렇다고 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돈을 건네줄 수는 없었다. 완고한 태도에 운영자는 알겠다면서 집으로 안내했다. 통화할 때와 다르게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가니 현관에 신발이 가득했다. 낮이라 다들 어디로 나갔는지 거실에 2명이 누워 있는  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거실을 보니 MT  가방들을  쪽에 놔두듯이 곳곳에 가방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7명이 산다고 했는데 그게 아닌  같았다.  가방들은 뭐냐고 물었다. 운영자는 잠시 거실에서 묵는 사람들이 있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내가  방은 현관에 들어가서 바로 나오는 작은 방이었다. 50(165m²) 정도 되는 집의 큰방은 현관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나오는 욕실 다음 있었다. 큰방의 옆에  작은방 하나가  있었다. 부엌은 내가 있는 작은 방과 벽을 맞대고 있고  양문형 냉장고가 2 있었다. 부엌에 있는  식탁 너머에는 거실이 있었고 끝에는 발코니가 있었다.

지금은 일을 하러 갔다는 방을 같이 쓸 친구의 이름과 연락처를 받았다. 운영자는 우리 방에 배정된 키를 그 친구가 가지고 있으니 이따 짐을 옮길 때 그 친구에게 전화하면 된다고 하였다. 어수선한 느낌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깨끗했고 집이 넓어 여기서 살기로 하였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보증금과 일주일치 방세를 건넸다.


어학원 수업을 마치고 단기 셰어에서 방을  새집으로 짐을 옮겼다. 방을 같이 쓰는 친구가 문을 열어줘서 짐을 풀었다.  친구는 헤드폰을 목에 걸고 있었고 나보다 서너  어렸다. 금세 형이라 부르며 시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친해지자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거실에  이렇게 가방이 많냐고 하니 거실 셰어와 발코니 셰어를 하는 사람들 가방이라고 하였다. 처음 듣는 용어에 어리둥절하자 그는 시내 집들은 워낙 렌트비가 비싸서 셰어 운영하는 사람들이 수익을 많이 내기 위해 보통 거실 셰어   명씩 한다고 했다. 우리 셰어 운영자는 욕심이 많아서 거실 셰어 4, 발코니 셰어 1명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의문은 해결되었지만 운영자가 이런 사실을 얘기해주지 않은 것이 괘씸했다. 그렇다고 짐까지 옮긴 마당에 다시 나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환불받는 것도 번거롭고 무엇보다 다시  곳을 찾아야 한다는 피로감에 그냥 살기로 했다.


저녁은 단기 셰어에서 먹다 남아 가져온 빵과 우유로 대신하였다. 대형 냉장고가 2 있었지만 내가 사용할  있는 공간은 선반 반칸이 전부였다. 방을 쓰는 7명에   5 해서 모두 12명이 같이 생활하니 냉장고 선반   차지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큰방에 사는 여자 3명을 제외한 나를 포함한 나머지 9명이 남자였다. 아무리 사람이 그리운 호주라지만 남녀가 뒤섞여 10명이 넘는 사람이 한집에 산다는 것에 허탈한 웃음이 났다.


일단 살기로 했으니 적응해서 살아야 했다. 아침시간은 간단히 빵과 우유를 먹고, 일찍 일어나 얼른 씻고 나오면 동선이 겹치지 않으니 문제없었다. 어차피 대부분의 시간은 학원과 도서관에서 보낼 것이기 때문에 낮시간도 문제없었다. 문제는 셰어 하는 12명이 모두 모이는 저녁이었다. 요리하나 하려면 백패커보다  어수선한 부엌에서 다른 사람들과 시간차를 두어야 했다. 욕실은  명이 샤워라도 하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지켜보고 있지 다면   사람이 나와도 이미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 있기도 했다.


힘들게 저녁식사를 하고 씻고 나서 방에 들어오면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집이 꽤 고층이라 방 창문 블라인드를 올리면 브리즈번 강이 내려다 보인다는 점과 같은 방을 쓰는 동생이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이 위안이었다.


한정적인 정보와 집을 빨리 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본주의 셰어 운영자와 만나 한번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았다. 셰어 아파트가 닭장 같을 것이라 생각을 못하고 들어온 피해자이면서도 당장 비슷한 조건의 아파트를 구할 엄두가 나지 않아 운영자에게 나가겠다는 소리를 못 하였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자의(自意)로 이런 생활을 하는 호주 거주 외국인 중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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