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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Oct 23. 2022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감사하는 삶을 향해

호주

 다윈의 번화가 한쪽 구석에서 호주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집주인 부부는 친절했고 룸메이트는 아침에 일을 나가서 저녁에나 들어왔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 다윈의 날씨는 내내 화창했다. 지척에 해변이 있었고 거리는 깨끗하고 여유로웠다. 동남아의 어수선한 분위기와는 다른 이곳의 정리된 분위기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나의 하루 패턴은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면 노트북 컴퓨터를 켜서 한국 뉴스를 보고 메일을 확인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오전에는 바닷가 산책로를 걸었다. 산책로 끝에는 노던준주 도서관(Northern Territory Library)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보면 정오가 넘었다. 오후에는 다윈 워터프런트(Darwin Waterfront)의 잔디밭에 누워 썬텐하는 사람들 옆에서 일기를 썼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대형마트인 콜스(Coles)나 울워쓰(Woolworths)에 들러 저녁거리를 샀다. 저녁식사를 하고 쉬다가 출근을 했다. 저녁 9시까지 콜스(Coles)에 가서 마트 청소를 하였다. 3시간의 일이 끝나면 밤 12시가 되었다. 출근 때와 달리 조용해진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서 좀 놀다가 잠자리에 누웠다.


 누군가는 호주에 학비를 벌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오고, 다른 누군가는 영어실력을 늘리겠다는 마음으로 오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왔다. 각기 천차만별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 중 나는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겠다는 쪽에 가까웠다. 겨우 생활 가능한 정도의 영어실력과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는 멋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한 경력과 만 서른의 나이는 오히려 구직의 장해물이었다. 그나마 어떤 일이라도 경험으로 여기고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니 직장이 구해졌다. 호주 사람들이 3D라 꺼리는 세탁, 청소 등의 일자리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진출해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 게시판이나 시내 게시판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구인 공고를 보고 연락하여 마트 청소 일자리를 구한 것이었다.


 마트 청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밤 9시에 맞춰 출근하면 복장을 갖추고 2층 사무실의 쓰레기 통을 비웠다. 의자를 빼고 책상 아래와 라커룸 바닥을 물걸레로 닦고 나면 대략 10시가 되었다. 마트 폐장시간을 알리는 음악이 울리면 1층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1층 매장을 바닥청소 기계로 닦는 것이 업무의 하이라이트였다. 청소기를 돌리기 전에 큰 쓰레기들을 먼저 쓸어내고 기계에 세제를 푼 물을 넣었다. 기계는 무거웠지만 전원을 켜면 스스로 바닥을 닦으며 앞으로 나갔다. 사람은 뒤에서 방향만 정해주면 되었다. 이런 식으로 넓은 매장을 파트너와 같이 2명이서 청소하였다. 1층 바닥 청소는 2시간이면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사무실 청소와 바닥청소를 하고 나면 금세 3시간이 지나있었다. 청소하는 도중에 가끔 매대(賣臺)에 부족한 물건을 채워 넣는 아르바이트 생들과 얘기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들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와서 단기 아르바이트(Part-time Job)를 하고 있었다. 아시아인은 잘 뽑지 않는지 유럽이나 남미에서 온 젊은이들이었다. 각자 일을 하면서 힘든 점이나 어느 지역에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등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들의 손놀림은 빨랐다. 수많은 상품을 창고에서 가져와 일일이 매대를 채우는 그들을 보면 저 일도 쉬운 일 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가 끝나고 반짝반짝 광이 나는 매장 바닥을 보고 있으면 뿌듯했다. 업무복을 벗고 집에 가는 길은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마트 청소일은 주 7일을 전부 일을 하는 대신에 낮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여행사에서 진행하는 당일치기 악어 투어를 다녀와도 업무시간에 늦을 일이 없었다. 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는데 주급을 받으면 사는 집에 방값을 주고 매일 장을 보며 가끔씩 투어를 다녀도 1/3은 저축할 수 있었다. 다른 워홀러들은 돈을 버느라 힘들게 일하고 세컨드 비자까지 얻기 위해 일부러 공장과 농장을 찾아다녔다. 나의 청소 파트너 동생도 주 4일은 낮시간에 음식점에서 일을 하는 투잡족이었다.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호주로 왔기에 상황이 되면 쓰리잡을 하려고 알아보고 다녔다. 내가 아는 다윈의 한국인 중 나만 홀로 여유로웠다.


 가끔 따분한 날은 평소 잘 가지 않는 곳을 찾아 산책하였다. 다윈 바닷가 앞 낚시 포인트, 플리마켓, 게스트 하우스 등을 탐방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그들이 잡은 고기, 파는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천천히 둘러보며 걷다 보면 주택가를 지나쳤다. 호주의 주택은 한국처럼 아파트 형태가 아니라 마당이 딸린 1층 혹은 2층의 단독주택 형태였다. 넓은 땅을 가진 나라답게 집들은 크고 외관도 깨끗했다. 다만 낮시간이라 인기척이 없었다. 간간히 마당에서 서너 살 먹은 꼬마들과 놀아주는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낮에 아이들과 물총놀이를 하며 같이 신나 하는 그를 보며 한국에는 이 시간에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가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의 상식으로는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의 모습이 재미있어 보이긴 하는데 한편으로는 뭔가 이질적인 느낌도 들었다. 주변의 집들은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한데 아이 있는 집들만 활기차 보이는 것이었다.

이래서 여기 사람들은 결혼하면 아이를 많이 낳으려 하는 건가?


 여유가 있는 생활이 좋기는 하지만 가끔씩 느껴지는 따분함은 나도 견디기 힘들어 일부러 산책을 다니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같았다. 내가 호주인이고 이런 넓은 주택에 산다면 아이를 많이 낳아야  외롭겠다고 생각했다. 3자의 시점에서 호주 다윈은 인프라는  갖춰져 있는데 사람이 없는 느낌의 도시였다. 호주 사람들의 여유롭고 사람들을 환대하는 모습은 이런 생활의 산물로 보였다. 그들의 생활을 동경하던 마음이 옅어졌다.


 호주에 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보금자리를 얻었고 직장도 가지게 되었다. 얼마 안 되지만 혼자서 먹고사는데 아무 지장 없는 돈을 벌고 있었고 자립을 이뤘다. 누가 봐도 나쁘지 않을 상황인데도 공허했다. 호주에 온 지 한 달 만에 호주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호주에 정착하기라는 목표가 있어서 모든 것이 신났는데 목표를 이루고 나니 다음 목표가 없이 붕 떠 있었다. 더 높은 목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직장에서 화가 나는 일이 생겼다.


 기본적으로 마트 청소는 한국인 매니저의 지시를 받아서 하는 업무였다. 어느 날 매니저로부터 오늘은 마트의 냉장 용품 진열대 아래 받침대까지 닦으라는 연락이 왔다. 마트에서 한 달에 한번 청소 검수를 하는데 바로 그날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보다 조금 빨리 기계를 돌리고 나서 냉장고 받침대를 걸레로 일일이 닦았다. 받침대는 까맣게 찌든 때가 묻어있었는데 박박 닦아도 검정 얼룩이 잘 지워지지 않았다. 할 수 있는 한 깨끗하게 하고 검수를 기다렸다. 마트 직원이 내려와서 체크를 하였는데 그는 왜 검정 얼룩이 다 지워져있지 않냐며 우리를 불렀다. 그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자기 몸의 무게를 보태 걸레로 검정 얼룩을 벗겨냈다. 그는 용을 쓰며 받침대를 하얗게 만들어 놓고는 우리에게 다른 받침대들도 이렇게 만들어 놓으라고 하였다.


 퇴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 이제 와서 한두 개도 아닌 받침대를 저렇게 닦는 다고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다. 그나마 혼자 닦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이 위안이었다. 파트너와 둘이서 닦아내고 있는 모습을 한참을 보고 있던 직원이 사무실로 올라갔다. 우리는 그가 가고도 30분은 더 닦아내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누구 탓인가?

   

 자정이 지난 시간에 마트 바닥에서 찌든 때와 싸우고 있는 게 우스웠다. 이것은 일을 시킨 한국인 매니저, 방금 시범을 보여주고 간 마트 직원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호주에 와서 이런 일을 선택한 나의 탓이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면 카페, 호텔, 음식점 어느 곳에서도 환영하는 곳이 호주였다. 나는 현지인들을 호객할 만한 영어 말솜씨가 있지 않았고 호주 억양을 잘 알아듣고 응대하기도 힘들었다.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면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을 기며 받침대를 닦는 상황은 과거의 내가 만든 것이었다. 대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말고 어학실에 앉아 말하기 연습을 더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었고 단순히 졸업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취업 후에 회사를 다니면서 영어 말하기를 등한시한 것도 후회되었다. 몸은 받침대를 닦으며 머리는 이런 생각을 한참 하고 있는데 파트너 동생이 나를 불렀다.  


 "형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매니저도 퇴근을 했고 밤새도록 닦아도 다 못 끝낼 거예요."

 "그래, 새하얗게는 못 닦겠네.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깨끗해졌으니 우리도 퇴근하자!"


 이렇게 그날은 평소보다 1시간이 늦은 새벽 1시에 퇴근을 하였다. 동생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까지의 삶을 내가 어찌 바꿀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불어 오늘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힘들게 했지만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듣도록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의 어설픈 영어를 손보는 목표를 세웠다. 집에 가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갈만한 어학원을 검색했다. 대도시에는 어학원 시스템이 잘 되어있었다. 다윈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은 브리즈번이었다.


그래 다윈 생활은 이 정도면 되었어.
더 안주하지 말고 다시 낯선 땅에 처음 발을 디뎠던 때로 돌아가자!


 며칠 뒤 나는 다윈의 안정적인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브리즈번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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