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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Sep 12. 2022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

호주

브리즈번의 마운트 그라바트 주변은 시내와  떨어져 있었다. 거리가 한적했다. 가끔 산책하면서 1시간 동안 걸어도 만나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있을 정도였다.


셰어 하우스에서 함께 사는 사람은 나까지 총 6명이었다. 나를 제외한 5명은 같은 세차장에서 일을 하는 관계로 저녁시간 외에 그들과 만날 일은 잘 없었다. 낮시간의 대부분은 혼자 보내다가 저녁시간에 부엌에서 만나 각자의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전부 나보다는 나이가 어렸지만 호주에서 경험은 더 많았고 내가 잘 모르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TESOL 과정은 끝났지만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던 습관이 있었다. 일자리 소개소에 이름을 등록해두고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매일 시내로 나갔다.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오후 늦게까지 책을 읽고 돌아오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간간히 구인 공고를 보면 작성해둔 이력서를 수정해서 내곤 했다. 직장을 얻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했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나름 바쁘게 지냈다.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 중에 아직 브리즈번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연락을 하면서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하고 함께 쇼핑을 하러 다녔다. 현지인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으면 PUB에도 다녔다. 일정한 날에 스테이크를 5불에 파는 5불 스테이크 식당에서 외국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사람들과 약속이 없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방에서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았다. 머지않아 어디에서든 일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겉으로 덤덤했지만 속은 초조한 시기였다.


얼마 전까지 같이 수업을 듣던 사람들이 하나둘 한국으로 돌아갔다. 일자리를 구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직장을 구해 일을 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을 뿐이라 생각하고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현재에 감사하자는 생각을 하니 셰어 메이트들에게 음식을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급히 집을 구해야 했을 때 물심양면 신경을 써 줬고 세차장 일이 끝나고 피곤할 텐데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 고민거리를 함께 걱정해주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친절한 셰어 메이트 5명에게 한식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김밥이 생각났다.  번도 만들어  적이 없지만 왠지 자신이 생겼다.  줄만 먹어도 든든하고 한국 생각도  나게  것이었다. 도서관에서 보던 책을 덮고 한인마트로 향했다. 평소에는 한인마트에서 김치나 라면, 비닐 포장된 즉석요리를 샀지만 오늘은 달랐다. 김밥용으로 나온 김을 담고 냉장 코너에서 단무지, 게맛살, 햄을 샀다. 채소코너에서는 당근과 오이를 샀다. 나오면서 달걀한판, 참기름과 통깨를 샀다.  사람당 2줄은 먹어야 하니 김밥 12 분을 샀는데 오랜만에 장바구니가  무거웠다.


장을 다 보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집에 가는 시간과 김밥을 만드는 시간을 계산했을 때 딱 맞는 시간이었다. 셰어 메이트들이 새차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대략 6시쯤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을 열쇠로 열고 들어섰다. 가방을 부려놓고 손을 씻었다. 장바구니를 풀어 김밥 재료를 꺼냈다.


먼저  잘라져 있는 단무지를 한편에 었다. 게맛살도 비닐을 벗겨 두었다. 다음으로 햄을 살짝 구웠다. 햄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자 맛깔스러운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웠다. 풍미가 오른 햄이 준비되자 햄을 구운 프라이팬에 기름을 충분히 둘렀다. 계란을 몇개 꺼내 그릇에 풀었다. 얇게 구워 지단을 만들었다. 당근은 얇게 채를 썰어서 볶아주었다. 오이는 숟가락으로 씨를 긁어내었다. 길게 잘라 소금에 절였다. 마침 시간에 맞게 밥솥에서 밥이 되었다.  주걱 퍼서 양푼이에 담았다. 밥에 식초와 소금을 약간 뿌리고 참기름을 넣어 섞었다. 끝으로 통깨를 살짝 뿌려 완성하였다.


재료가 준비되었고 이제 김밥을 말 차례였다. 김밥용 김을 깔고 밥을 넓게 펴 발랐다. 단무지, 햄, 계란, 맛살, 당근, 오이를 넣었다. 김말이용 대나무발이 없기에 손으로 둘둘 말았다. 처음 한두 개는 옆구리가 터졌다. 밥양이 안 맞아 모양이 형편없었다. 세 개째부터는 일정한 모양이 나오면서 그럴듯해졌다.


김밥을 만드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을 예상은 했지만 12개를 전부 말고 나니 6시가 좀 넘어있었다. 식탁 중앙에 김밥을 올려두고 스스로를 뿌듯해하며 사람들을 기다렸다. 보통 때면 한두 명씩 들어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김밥 만들고 남은 재료를 정리했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방을 같이 쓰던 룸메이트 테리에게 연락을 하였다. 테리는 오늘 세차장 일을 마치고 PC방에서 동료들과 LOL 게임을 하고 들어온다고 했다. 형 먼저 식사하시라는 그의 목소리에서 게임에 집중하는 사람의 다급함이 느껴져 얼른 끊었다. 옆방을 쓰는 젬마에게 전화하였다. 젬마는 커플인 마르코와 함께 친구의 파티에 초대받아서 늦게 들어온다고 하였다. 건넌방 셰어 메이트 둘 역시 오늘 저녁 약속이 생겨 늦게 들어간다고 하였다.


하필이면 오늘이라니......


생애 처음으로 만드는 김밥이었다. 타국에서 자신도 챙기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보다 나이 많은 형, 오빠인 나를 잘 챙겨준 사람들에게 대접할 김밥이었다. 맛있게 먹어줄 그들을 생각하며 흥이 나서 만들다 보니 시간이 어찌 간지 모를 김밥이었다.


방금 만든 따듯한 김밥을 먹이고 싶었는데......


재료를 사기 전에 아니 김밥을 만들기 전에 미리 그들의 스케줄을 확인하지 않은 것을 그때서야 후회했지만 김밥은 이미 만들어진 후였다. 어쩔 수가 없었다.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김밥을 두 개씩 알루미늄 포일에 싸서 냉장고에 각자의 이름을 붙여 넣어두었다.


노을이 서서히 꺼지며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옆구리가 터진  번째 말았던 김밥을 한입 베어 물었다. 오랜만에 먹는 김밥이었다. 맛난 재료가 가득했다. 간이 알맞았다. 방금 만들어 따뜻했다. 그런데 맛이 없었다. 한입을 먹었는데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누구도 나를 서럽게  적이 없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입에 욱여넣듯 김밥  줄을 겨우 먹고 나니 주변은 깜깜했다.


앞집과 옆집에 불이 켜졌다. 커튼이 쳐진 창문으로 빛이 새어나왔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나는 인기척이 없는 주방에 앉아있었다. 불을 켜려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상태로 홀로 앉아 왜 김밥이 맛이 없는지만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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