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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Sep 29. 2022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호주

 와가와가(WaggaWagga)는 바다를 접하지 않은 호주의 내륙 도시이다. 호주는 보통 해안가를 위주로 도시가 발전하였기에 내륙도시들은 큰 도시로 발달하지 못했다. 시드니와 멜버른의 중간에 위치한 물류의 거점인 와가와가는 인구 4만 5천 명 수준이었다. 한국의 1개 읍 정도의 인원의 이곳은 호주의 내륙도시 중에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 직업소개소(AWX)에서 받은 일자리는 시드니에서 남서쪽으로 450km가량 떨어진 이곳에 있었다.


 호주 곳곳에 축산물 가공공장이 있지만 이곳은 세계 최대의 농축산물 유통업체인 카길(Cargill)의 공장으로 유명했다. 몇 시간을 기차로 달려와 회사에서 배정해준 집에 짐을 풀었다. 집은 와가와가의 중심인 기차역 인근의 콜린스 스트리트에 있었다. 도보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마트가 위치하여 짐 정리를 하면서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기가 편했다. 세간살이 정리를 하는 몇 시간 동안 셰어 메이트들이 속속 집에 들어왔다. 처음 온 셰어 메이트는 3살이 어린 친구였다. 그 뒤로 차례로 도착한 사람들도 전부 동생들이었다. 한 명은 대구에서, 다른 한 명은 서울에서 왔고 안쪽 방에 보금자리를 폈다. 서울에서 온 동생의 차로 기름값을 셰어 하면서 출근하기로 하였다. 각자 정비를 하면서 주말을 보낸 우리는 월요일에 첫 출근을 하였다.


 축산물 가공공장을 처음 가면 공장 견학(Induction)을 하게 된다. 대기실에는 우리를 포함해 그날 처음 오는 사람들이 십 수명이었다. 백색의 방수 옷을 입은 여성을 따라가 회사에서 제공한 장화와 가운을 입었다. 머리에 파란색 망을 쓰고 나니 도살장(Kill Floor)으로 안내했다.


 회사 정문에서부터 공장 입구까지 넓게 펼쳐진 방목지에서 돌아다니던 소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길을 따라  마리씩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면 우주복 같은 옷을 입고 헬멧을   2미터는 되어 보이는 아주  덩치의 장정이 소의 머리에 전기총을  기절시켰다. 쓰러진 소의  뒷다리는 즉시 다른 장정들의 손에 들려 고리에 걸렸다. 천장 컨베어가 움직이면서 소가 거꾸로 매달렸다. 소는  멱을 따였고 피가 어느 정도 빠지면 머리가 분리되었다. 가죽이 벗겨졌고 배가 갈리면서 내장이 분리되었다. 피비린내 가득한 도살장은 대부분 덩치 있는 남성들이 일했다.


 몬스터라고 불려도 손색없는 엄청난 소들은 거대한 전기톱에 의해 좌우 둘로 나뉜 고깃덩어리가 되어 도살장에서 나왔다. 방금 잡아 뜨끈한 살덩이들이 매달려 있었다. 고기를 미는 사람(Pusher)들이 힘껏 3~4개의 고깃덩이를 밀어 냉장창고에 넣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냉장창고를 밖에서 빙돌면서 오팔 룸(Offal Room)이라고 불리는 내장을 정리하는 방을 구경했다. 배를 가르면서 쏟아져 나온 소의 내장은 미끄럼을 타고 아래 있는 오팔 룸으로 떨어졌다. 소의 위나 장에 있는 찌꺼기를 뜨거운 물로 씻어 빼내어 상품으로 만드는 이 방은 소똥 냄새가 진동했다. 간이나 혀와 같은 부속물들은 세척해서 바로 패킹(Packing) 작업을 하고 있었다.


 냉장창고에 들어간 1천 ~ 2천 마리 분량의 소고기들은 그곳에서 하루나 이틀을 보냈다. 이렇게 숙성된 찬 고기들은 반대편 출구에서 또 다른 Pusher들에 의해서 보닝룸(Bonning Room)으로 향했다. 뼈와 살을 분리하고 부위별로 나누는 이곳이 축산물 가공공장의 핵심이었다.


 가장 앞쪽 라인에서 고기용 톱으로 몸통을 반만 잘랐다. 고기가 천장 컨베어를 타고 이동하면 매달린 채로 몇 가지 부위를 떼냈다. 그런 고기를 한 사람이 나머지 몸통을 칼로 슬쩍 잘라내 앞다리 쪽 몸통 부분과 뒷다리 쪽 몸통 부분을 분리했다. 그리고는 뒷다리 쪽 몸통 부분을 고리에서 빼내 몸통과 다리를 톱으로 양분하는 사람 쪽으로 밀었다. 그 고기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컨베어벨트 작업자들에게 갔다. 그동안 계속 바닥 쪽에 위치해 있다 뒷다리 쪽과 분리된 앞다리 쪽 몸통 부분은 앞다리가 고리에 걸려 좀 더 멀리 위치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컨베어벨트 작업자들에게 보내졌다.


 뒷다리 쪽이든 앞다리 쪽이든 아래쪽 컨베어벨트로 떨어지면 또 다른 톱에 의해 세세하게 분리되었다. 사람이 손질 가능한 크기가 된 부위들은 각 라인에서 기다리는 작업자들에 의해 부위별로 나뉘었다. 그들은 능숙한 솜씨로 등심, 안심, 채끝 등 부위를 발라냈다. 이렇게 제품화 전 단계의 고기들은 컨베이어 끝에서 부위별 진공포장이 되어 박스에 봉해졌다.


 박스들은 라인을 따라 이동하여 냉동창고로 들어갔다. 여기서 하루 얼려진 박스는 꽁꽁  상태로 물류실로 이동했다. 팔뚝이 굵은 남태평양  출신의 장정들이 팔레트에 박스를 옮겨 쌓았다. 탑이  박스는 랩으로 싸매 졌다. 지게차가 박스를 집하장으로 가져갔다. 고기 박스들줄을 서있는 물류 트럭이나 기차 화물칸에 차곡차곡 담겼다. 이렇게 소고기는 상품이 되어 공장을 떠났다.


 Induction을 마치니 매니저가 적절한 자리로 배정을 시작했다. 우리들은 공장을 쭉 둘러보면서 공통적인 생각을 했다. 피 냄새가 진동하는 Kill Floor와 똥냄새가 진동하는 Offal Room에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누가 보기에도 가장 쉬운 일은 고기를 포장을 하는 일이었다. 고기들을 잘 살펴 부위별로 나눠 담아야 하고 컨베어의 속도가 빠르긴 했지만 단순 반복일이라 금방 적응할 것 같았다. 하지만 보통 포장은 여자들의 전용 업무였기에 희망만 할 뿐이었다.


 우리 셰어 식구들은 각각 다른 포지션으로 배분되었다. 3명의 동생들은 모두 Offal Room 배정되어 소의 대장을 세척하고 포장하기 좋게 자르는 , 위를 세척하는 , 간과 콩팥을 세척하는 일을 각각 맡게 되었다. 나는 혼자 Bonning Room 배정되었다. 냉장된 고기의 뼈와 살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장비가 필요했다. 추후에 받는 주급 떼어 가기로 하고 장비를 구매하였다. 필수로 구비해야 하는 장화, 헬멧, 쇠사슬(Chain) , 쇠사슬 장갑, 갈고리,  2개와 칼을 가는 (Sharpening Stick), 숫돌을 샀다.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장비값을 빚지게 되었다.


 키가 작지만 땅땅하게 생긴 백인 매니저는 사람이 많은 아래쪽 컨베어벨트에 몇몇을 보냈다. 나는 냉장된 소고기의 뒷다리가 고리에 매달려 오는 공정의 가장 앞부분에 배치되었다. 여기서 하는 일은 뒷다리와 몸통이 이어진 사이에 있는 아롱사태를 떼어내고 전기톱으로 잘린 갈비뼈를 따라 붙어있는 살들을 발라내는 작업이었다. 초짜 작업자라 조금만 칼을 쓰면 무뎌져서 날을 세워야 했다. 칼이 뼈에 닿으면 금방 무뎌졌다. 칼을 뜨거운 물에 잠시 담가 고기 기름기를 빼고 배워둔 적정 각도로 날을 깎는데도 쉽게 날이 서질 않았다. 보다 못한 매니저는 내가 칼을 쓰는 동안 무뎌진 칼을 옆에서 갈아주었다. 손에 익숙지 않으니 근육막을 따라 아름답게 떼어내야  사태살은 넝마가 되기 일쑤였다.


 이렇게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부터는  그래  것처럼 자리에 가서 일을 했다. 새벽 6시에 컨베어가 돌아가면 2시간 반을 작업하다가 15분을 쉬었다. 잠깐  같은 휴식을 취하고  2시간 반을 일하고 30 동안 점심식사를 했다. 오후에도 동일한 패턴으로 15분만 쉬고 5시에 마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어디서나 집에 일찍 가고픈 사람의 마음은  똑같아서 마지막 타임은 컨베어를   빨리 돌렸다. 그러면 일은 고되지만 4시에서 4  사이에 마칠  있었다. 이렇게  4일을 일하고 3일을 쉬었다. 3일의 행복을 위해 10시간 동안의 노동을 견뎌내었다.


 2주가 지났다. 작업 중 점점 무뎌지는 칼날을 빠르게 원상복구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었다. 어떤 날은 칼날을  갈아서 고기가  썰리다가 어떤 날은 같은 방법으로 했는데도 고기가  썰렸다. 일이 숙련될수록 주변에서 가지는 기대감이 압박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하루 9시간을 칼을 잡고 있으니 주먹  손을 펴면 다른 손가락은  펴지는데 약지가 펴지질 않았다. 같이 일하는 파트너가 게으름을 피거나 컨베어 속도가 빠른 날에는 아롱사태는 떼도 갈빗살을 발라내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러면 뒷 순서 위치한 컨베어 작업들이  똑바로 하라며  이름을 크게 불렀다. 내가 못한 일로 인해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힘에 부쳐  쳐내는 내 모습 한심하기도 하였다.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들지도 않는 칼로 씨름하고 있으면 키가 크고 서글서글한 젊은 부매니저가 와서 칼을 갈아주고 능숙한 솜씨로 하나 걸러 하나씩 미리 작업을 해주었다.


 이렇게 때를 보내고 나면 주변에 나보다  편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기 비계만 건성건성 잘라내는 바로  작업자나 내가 손본 고기가 오면 칼을 대서  끊어만 주는 바로  작업자가 그랬다. 처음 인덕션  Kill Floor에만  들어가도 좋겠다던 마음, 냄새나는 Offal Room 피했으면 하던 마음은 어느새 기억 너머로 사라지고 지금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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