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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한 겨울 끝자락의 경남 고성여행 1/2

상족암군립공원

by CJbenitora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나서 초등학교 입학까지 일주일이 비었다. 작은 애도 방학이었지만 부모님께서 봐주시기로 해서 본가로 보내고 큰 애와 같이 단둘이 여행을 계획했다. 집에서 보내는 일상과는 다른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 지난 경험으로 보아 여행은 그게 어떤 목적을 가지던, 어디를 가던 배울 것이 많았기에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 기대가 많았다.


아이에게 전국지도를 보여주며 어느 곳으로 놀러 가면 좋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경남 고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재작년에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다녀왔었다. 그 이후 고성이란 말을 들으면 자기가 아는 지명이라며 좋아했다. 그러다 경남에도 고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나라에 고성이 2개가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성에 대한 동경이 여행지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나 역시 경남 고성은 통영 여행을 가면서 지나가거나 업무 때문에 잠시 방문한 적이 있을 뿐이었다. 여행으로 간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아 무엇을 보고 체험할지 막막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경남 고성의 상징인 공룡발자국을 보러 가기로 했다. 공룡발자국이 남아있다는 상족암 군립공원을 목적지로 정했다. 2시간 30분 정도 거리라 그리 가깝지는 않았지만 강원도 고성의 6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전 11시쯤 출발했는데 12시 30분이 넘어가니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하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멈췄다. 휴게식당에서 제육볶음과 돈가스를 시켰다.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면서 아이에게 이제 초등학생이 되니 혼자서 해보는 연습을 하자고 말했다. 음식을 가져올 때는 무겁고 뜨거워 아빠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다 먹고 빈 그릇을 수거용 카트에 올리는 것은 아이가 직접 하였다. 처음으로 퇴식구에 그릇을 가져다 놓는 모습은 동영상으로 담았다. 식당 사람들도 조그만 녀석이 혼자 식기를 반납하는 모습을 기특하게 쳐다보았다.


휴게소에서 배를 채우고 다시 달려 상족암 군립공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반겼다. 언제 도착하냐고 재차 묻던 아이는 바다를 보자 기운이 났던지 성큼성큼 앞서갔다. 해변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모래 장난을 치고 있었다. 평일이라 공원 전체가 한산했다. 해안 바위절벽을 따라 이어져 있는 나무데크를 따라 걸었다. 공룡발자국이 찍힌 바위가 나왔다. 아이는 데크를 내려가 공룡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를 뛰어다니며 자신이 공룡이 된 듯 신나 했다. 아빠 욕심으로 이건 어떤 공룡의 발자국이고 언제 만들어졌는지 안내문을 읽으며 설명해주고자 했지만 아이는 뛰어다니기 바빴다. 공룡발자국이 몇 개 있는지를 세면서 공룡처럼 걸어 보는 것이 더 신나는 일으로 보였다.


한참을 놀고 다시 나무데크로 올라온 아이와 함께 사진 명소로 유명한 상족암으로 향했다. 아이가 누가 상족암까지 빨리 가는지 대결을 하자고 했다. 아이 보폭에 맞춰 같이 뛰어주었다. 실수로 아이에게 이기기라도 하면 한참을 달래야 하기 때문에 근소하게 져주면서 목적지로 향했다. 테크 끝에서 계단을 잠시 오르니 상족암이 나왔다. 상족암 주변은 암석들이 많았다. 아까의 달리기로 지쳐있던 아이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암석들을 종횡무진 다녔다. 내가 상족암을 둘러보고 사진 찍을 장소를 찾을 동안에도 아이는 쉴새가 없었다. 암석에 올라가 바닥으로 뛰고 바위 사이를 내달리며 즐거워했다. 노는 아이를 잠시 불러 사진을 몇 장 찍고는 마음대로 놀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이에게는 상족암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철썩이는 파도의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아빠가 자신이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주길 바랐다. 휴대폰의 슬로모션 카메라 기능으로 찍어 보여주니 10번도 넘게 뛰어내리며 그때마다 아빠가 찍어준 영상을 보며 낄낄거렸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아빠를 찍어 주겠다며 아빠가 뛰는 모습을 찍었다. 휴대폰 영상 촬영이 처음인 아이의 영상에는 아빠의 다리만 나왔지만 그걸 보면서 다시 잘 찍을 생각보다는 아빠의 어이없는 반응에 배꼽을 잡고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사람들이 해변 돌밭에 소원 돌탑을 쌓아 놓은 걸 보았다. 아이는 가는 길을 멈추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돌탑을 훑어보더니 자신이 여기서 가장 높은 돌탑을 쌓을 거라며 넓고 큰 돌을 아래에 깔고 작은 돌을 차례로 쌓아 올렸다. 처음에는 옆에서 보며 저렇게 쌓아서 높게 올리겠나 싶었지만 아이는 돌탑이 무너지면 또 쌓고 무너지면 또 쌓았다. 그렇게 한자리에서 30분이 그냥 지나갔다. 아빠는 그걸 타임랩스로 찍어서 남겼다. 어느덧 노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재촉했다. 가장 높은 돌탑을 못 쌓아 아쉬워하는 아이가 자기가 쌓은 돌탑 앞에서 소원을 빌었다. 차로 돌아가면서도 3중 뛰기 연습을 한다며 줄넘기 점프를 흉내 내는 아이를 보며 저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상족암군립공원에 우리와 비슷하게 도착했던 사람들은 벌써 한참 전에 관광을 마치고 가고 없었다. 어두워져 가는 해변에는 아까 놀던 아이들도 없었고 그나마 몇몇 있던 관광객도 보이지 않았다. 어른의 입장에서 여기는 공룡발자국을 보고 바위에서 사진을 찍고 나면 오래 머물 하등의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에겐 이곳은 하루종일도 놀 수 있는 곳이었다. 아빠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이곳은 탐험할 것이 많은 놀이터였고 수많은 동영상을 남긴 곳이었으며 해가 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재밌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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