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바르샤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으나 중세의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으며, 이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596년 폴란드의 수도가 된 이후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의 바르샤바 역사는 폴란드의 수난사를 그대로 대변한다.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폴란드는 열강들 사이에 끼어 끝없는 간섭과 침략에 시달렸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의 이른바 ‘폴란드 분할’로 나라가 없어진 적도 있었고, 1815년부터 약 100년간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바르샤바에서는 러시아 지배에 대항하는 시민 무장봉기가 수차례 일어났고, 러시아는 철저한 무력진압으로 대응했다. 당시 무장봉기 희생자들을 기린 위령탑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바르샤바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에 의해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4년 독일군 점령 하의 바르샤바에서 무장 독립투쟁이 일어나, 바르샤바 시민들이 독일군을 상대로 두 달여에 걸친 시가전을 벌였다. 이에 대응하여 독일군은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였고, 2차 대전이 끝난 뒤 도시의 80% 이상이 폐허로 변했으며, 시민의 50%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바르샤바를 버리고 수도를 이전하는 논의도 있었으나, 폴란드는 바르샤바를 과거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방법을 택했다. 바르샤바를 재건하는 데는 이탈리아의 화가 베르나르도 벨로토의 그림이 도움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벨로토가 18세기 폴란드 스타니스와프 2세의 궁정화가로 많은 바르샤바 풍경화를 남겼기 때문이었다. 벨로토의 그림이나 과거 건물의 도면을 참조하여 도시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된 지 5년 후 구시가의 대부분이 재건되었다. 1596년 수도가 된 후부터 5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을 5년의 세월에 집약해서 완성한 것이다. 14세기 양식의 성 요한 성당, 수많은 노점상들로 붐비는 시장 광장, 줄지어 늘어선 중세풍의 서민주택들, 폴란드 영욕의 역사를 담고 있는 옛 왕궁, 이외에도 중세의 성터와 유적들이 복원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르샤바 역사지구 [Historic Centre of Warsaw]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호텔 앞쪽 거리에 있는 낡은 건물의 창문이 모두 다 가려져있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준비하고 있는가 보다.
아무 정보 없이 낯선 장소에서 여행을 시작할 때는 베이스캠프를 한 군데 정해놓고 천천히 적응을 시작한다.
이번에도 익숙한 이름의 호텔에 묵으면서 시차 적응을 하고 조금씩 조금씩 외출 반경을 넓혀가면서 거리를 익히고 방향감을 설정하고 있는 중이다.
가까운 편의점, 식당, 버스 정류장, 기차역까지 여러 차례 방향을 달리하며 걷기를 반복하다 보면 낯선 곳에서도 돌아가는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둘째 날은 1킬로미터 반경의 거리를 걸으며 도시의 공기를 익혔다.
낯선 외지인을 향해서 두드러지지 않은 시선을 보내려고 애쓰는 것이 느껴진다. 분명히 강세가 들어간 시선. 하지만 곧 톤다운시켜서 그 시선의 끝을 페이드아웃 시키는 차분한 노련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침 이른 시간 해가 뜨기를 기다려 바르샤바 중앙역까지 걸었다. 구역 정리가 잘 되어있어서 글자를 몰라도 직관적으로 걷기만 하면 중앙역으로 갈 수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초행자도 별로 어렵지 않게 기차를 탈 수 있게 역사 내부가 잘 구분되어 있다.
이른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지하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들어가서 키오스크를 조작해 햄버거세트 하나를 주문했다. 감자튀김 대신 샐러드를 선택했고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다. 통화 화폐를 선택하는 화면에서 폴란드 화폐를 선택하고, 핀번호를 입력하고 초록색 엔터키를 누르자 삐삐삐삐 하는 소리가 났다. 잠시 당황해서 기계를 쳐다볼 때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던 남자 하나가 살짝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시선에서 이 소리는 그다지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사인이 느껴졌다. 그 느낌은 맞았다. 결제가 완료되었으니 카드를 회수하라는 소리였다. 카드를 꺼내자 영수증이 출력되면서 화면에 '26번'이 내 주문번호라고 떴다. 잠시 후 데스크에 내 주문 번호가 반짝거렸고 음식이 든 종이봉투를 받아서 호텔로 되돌아오는 길에 있는 편의점에서 과자 몇 가지를 골라 담았다.
빵은 거칠고 거칠어서 빵 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고기패티가 마른 몸으로 자꾸만 밖으로 삐져나왔지만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식사를 하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노크소리에 깼다. 방을 정리하러 온 메이드가 밖에 서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물 한 병만 달라고 하고 오늘 청소는 안 해도 된다고 말하고 돌려보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거리 산책을 나가서 아침과는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큰길 건너편에 벽돌로 쌓은 굴뚝 모양의 조형물이 보였다. 건너가 보니 박물관 표지판이 보이는 골목 안으로 제법 정교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고 회전목마가 돌고 있는 골목에 어린아이와 부모와 노년의 사람들이 조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견고한 바닥에 심겨진 레일. 그 레일 위에 고정되어 있는 철제와 목재와 유리가 아름답기 그지없게 어우러진 조형물들 몇 가지가 코너를 돌 때마다 나타나고 전시된 큐알코드를 열어보면 노블린 공장 창립자인 베르너와 노블린 박물관에 관련된 내용이 나타난다. 심지어 이 박물관에는 애플박물관도 조성되어있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식료품과 그릇, 공예품을 파는 자그마한 가판대가 모여있는 시장이 있고 롯데월드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의 푸드코트가 있다.
어제 먹으려다 실패한 볶음쌀국수를 시켰다. 두부가 올라간 옵션으로 주문을 했고 약간 매콤하게 만들어달라고 했다. 무척 배가 고팠기에 순식간에 다 먹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약간 짠 간장의 풍미 속에 식초의 신 맛이 살짝 남겨지는 첫맛이었다. 입에서는 괜찮게 느껴졌는데 반 정도 먹었을 때 어쩐지 목에서 위장으로 넘어가는 길이 뻑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배가 부른 것도 아닌데도 내 위장이 음식을 그만 먹었으면 좋겠다는 사인을 주기 시작했다. 두부와 곁들인 야채는 정말 훌륭한 맛이었음에도. 그리고 나는 웬만해서는 음식을 남기는 일이 없는 성격인데도.
식사시간이 빠른 편인 내가 면 가닥을 하나씩 하나씩 집어가며 오래오래 천천히 먹다가 반 이상을 남겨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켓에서 빵 두 개를 포장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하루 내내 여러 개의 카톡방에서 알림이 떴다.
함께 근무했던 분들과 관련된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받았다. 혹독한 시기를 지내고 있는 분들의 무탈함을 기원한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관련된 몇 가지 경사스러운 소식을 겹쳐서 받았다. 내리내리 좋은 일만 생기길 기원한다.
시차 적응이 덜 끝난 상태로 흐린 차창 밖 초저녁 경치를 보면서 이러 저런 생각들로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