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두툼한 외투와 모자를 챙겨 중앙역 주변 산책을 나섰다. 어제 아침 일찍 문을 열었던 편의점 카페의 문이 굳게 닫혀있다. 24시간 영업한다는 케밥집 두 곳 중 한 곳의 문도 닫혀있다. 일요일이었다.
오늘 영업은 쉬기로 한 듯 주차돼있는 푸드트럭이 예뻐 보였고 우리네 초등학교와 비슷한 모양으로 서 있는 문 닫힌 학교 건물도 정겨워 보였다.
내일 아침 크라쿠프로 이동하기 위해 캐리어를 끌며 걸어가게 될 길을 파악하면서 플랫폼 구역까지 확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어제 사 두었던 빵과 과자로 아침을 대신하고, TV 미러링으로 넷플릭스 한국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까르푸에서 컵라면이라도 사려고 했지만 문이 닫혀있었다. 중앙역 쇼핑몰은 분주할 테지만 오늘은 어쩐지 갈 곳 없는 여행자가 되어 일요일의 골목에 남아있어 보려고 무척 애를 썼다.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았는데 때마침 문을 열고 있는 인도 음식점이 보여서 얼른 들어가 브런치메뉴를 시켰다. 주문을 받은 점원이 가져갈지 두고 갈지 묻는데 그 말이 식당에서 먹을 건지 포장을 할 건지 묻는 말로 이해한 나는 '여기서 먹을 거'라고 내가 앉아있는 식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랬더니 화사한 금발에 귀여운 미소가 매력적인 그녀가 활짝 웃으며 귀여운 손동작으로 '메뉴판'을 말한다고 다시 말했다.
난 겸연쩍게 웃으면서 두고 가라고 말하고 나서 메뉴판에 나와있는 음식 설명을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내가 주문한 '델리'세트는 '참깨가루가 첨가되어 고소한 맛이 나는 플랫빵'에 옐로야채카레가 곁들여진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플랫빵이 '난'이란 건 알겠는데 The nutty flavor of sesame seeds 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밥 하나를 추가로 주문할까 망설이고 있는 동안 음식이 나왔다.
식탁에 놓인 음식이 올려진 플레이트의 정체에 웃음이 나왔다. 아, 나... 급식을 먹게 되었구나...
음식의 양은 적지 않아 보였으므로 밥을 추가주문할 필요는 없어 보였기에 메뉴판을 돌려주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제와 같은 현상. 첫 숟가락을 떠먹는 순간 입에서 '맛있어' 소리가 저절로 나왔지만 다음 숟가락부터 첫 미각의 감동은 흔적만 남아버렸다. 야채튀김, 오이 볶음, 토마토 볶음,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빵.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맛이었다. 하지만 배고픈 상태에서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는데 이상하게도 음식이 먹어지질 않는 이해 못 할 상황이었다.
왜 이럴까? 물? 향신료? 반죽에 들어가는 첨가물? 기름?
추운 지역이라 체온 상승에 도움을 주는 식재료와 특유의 조리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무겁게 느껴지는 진한 식감이 저절로 천천히 조금씩 음식을 먹게 하고 있었다.
내가 천천히 밥을 먹는 동안 볼트와 글로보 가방을 든 배달맨 두 명이 식당 안으로 차례차례 들어왔다가 음식을 가방에 담고 밖에 세워두었던 자신들의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
29즈워티. 9000원 정도의 음식값을 지불하려 하는데 점원은 내가 내민 신용카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주방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물었고 난 얼른 현금으로 지불을 하겠다 말하며 20즈워티 두 장으로 계산을 마치고 나와서 거리 산책을 계속했다.
굴뚝 커버와 정원 장식을 만드는 공방인 것 같다. 쇠붙이를 세심하게 손본 멋진 조형물이 한참 동안 눈길을 끌었다. 사자 얼굴에 햇살같은 갈기를 두른 형상의 모빌 조형물은 얇은 철판을 종이처럼 정교하게 오려 붙인 모양으로 공기의 흐름을 따라 금빛 은빛 색깔로 반짝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난 어째서 이 쇼윈도 앞에서 명품 가방을 볼 때의 설렘을 느끼고 있는 건지? 웃음이 나왔다. 일요일이라 상점은 문을 닫았고 닫힌 유리와 어스름한 오후의 햇살이 사진을 찍기엔 적당하지가 않아서 근사한 조형물들의 선을 잘 드러나게 옮겨 볼 수는 없었다. 다음에 다시 지나가게 되면 제대로 사진을 찍어보려고 한다.
주변의 편의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는데 한 곳에서 빵을 굽는 냄새가 났다. 유레카! 얼른 들어가서 샐러드와 주스 한 병을 사서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아저씨가 갓 구운 빵도 필요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맞는 말이었다. 빵 한 개를 추가해서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일찍 해가 지는 일요일 저녁 산책은 생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