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봉사 항목에서 고아원 봉사는 최근 줄이는 추세라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니 그 부분은 생략하고.. 운이 좋게도 나는 케냐 시골마을 고아원 두 주 활동을 허락받았다. 미리 보낸 제안서가 환영받게 되어서 기뻤다.
유독 붙임성 있고 개궂은 남자아이 하나...
천상 리더감이다.
바깥놀이를 할 때였다. 구슬치기 놀이를 가르쳐주고 싶어서 가지고 있던 주머니에서 구슬 아홉 개를 꺼내 아이들과 함께 세어보고 땅바닥에 표시된 과녁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구슬을 다 던지고 난 후 내게 돌아온 건 여덟 개. 한 개는 어디 갔냐 묻자... 이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원래 여덟 개였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 아프리카!!!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장면... 하지만 너희들은 아직 초등학생이잖아... 마음이 아팠지만..
오케이 좋아 여덟 개... 이 놀이 다 끝나고 나면 내게 여덟 개 구슬을 돌려줘야 해 하고 놀이를 계속했다.
아이들은 정확히 체크하면서 놀이를 마쳤고 난 구슬 여덟 개를 돌려받았다.
목요일과 금요일에 풍선놀이를 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목요일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게 되었다고 켄이 말했다.
아이들에게 목요일에 주기로 약속했던 풍선 한 개씩을 미리 나누어주고 싶다고 말했더니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고 풍선을 받기 위해 내 주변에 모였다. 첫날 풍선을 나눠줄 때 여기저기 감추고 자꾸만 와서 받아가던 아이들이었기에 잠시 생각하다가 요 꼬맹이를 불렀다.
'네가 나 좀 도와줘. 내가 가진 풍선 무더기를 줄 테니 네가 아이들에게 꼭 한 개씩만 나눠주고 남은 건 내게 돌려줘.'
아이는 차분하고 강하게 장난기를 빼고 하나 더 달라는 친구들 꼬임도 거절하고 정확하게 한 개씩 나눠주고 남은 것을 내게 돌려주었다.
나는 너를 믿어 난 너를 위해 기도할 거야 말해 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내 주머니 속에는 구슬이 아홉 개가 들어있었다.
행동수정을 할 때 초콜릿은 절대로 강화제로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극강의 맛이기에, 초콜릿 이상의 맛을 찾을 수는 없으므로 초콜릿에 길들여진 이후의 강화물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봉사활동 중에서 풍선은 초콜릿만큼 극강의 존재인 듯싶다.
우모자 고아원에서 첫날 수업을 마치고 풍선을 만지게 해 준 뒤부터 아이들은 어떤 활동도 풍선만큼 재미있어하지 않았다.어떤 활동이든 마친 후엔 "풍선은?" 하고 물었으며색종이도 색볼펜도 색연필도 사진도 모두 다 뒷 순위가 되어버렸다.
봉사활동 프로젝트로 준비할 때부터 가장 신났던 풍선은 봉사활동 기간 내내 고민거리가 되었다.
환경문제로 비닐봉지를 드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는 대륙. 비닐봉지를 쓰면 벌금을 내야 하는 나라가 하필이면 가장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장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라는 아이러니함에 당황했지만 돌아올 무렵이 되어서는 나 역시 그 제도를 찬성하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음에 입을 다물게 되었다.
아이들은 정말 홀린 듯이 풍선을 좋아했다.
두 주가 지난 후 학교 봉사를 시작했을 때 다음날 풍선 놀이를 할 거라고 예고를 하자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아기를 안고 와서 풍선을 받게 할 만큼 인기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람이 되지는 못한 채로 간간히 마음이 아픈 순간을 맞이해야 했다.
색색의 화려함으로 아이들의 혼을 빼앗아버린 풍선은 터지는 순간 미련 없이 사라져 버려서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터진 풍선이 던져진 풀숲으로 강아지들이 달려와 그 조각을 입에 넣으려 했다. 강아지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부풀려진 풍선의 감촉에 홀린 듯 입으로 핥고 빨고 했기에그때마다 나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곤 했다.
'풍선을 입에 넣으면 위험하다. 호흡이 막혀 죽을 수도 있다.' 하는 설명과 함께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풍선이 터지면 다 주워 모아서 (동물들이 먹지 않게) 잘 버려야 한다고 자꾸만 자꾸만당부해야 했다.
아프리카에서 풍선은... 풍선은... 풍선은... 없어야 할 물건이었다.
그것을 가져간 나의 불찰을 아프게 반성해야 했다.
케냐에서 돌아온 이후로 난 제로 웨이스트까지는 못할지언정 나름대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필수품이 아닌 예쁜 쓰레기들, 자잘한 소품들과 옷 같은 것을 덜 사려고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엄청난 양의 생활쓰레기를 버릴 때마다여러 가지 이유로 일회용품을 사용할 여건이 되지 않아 그 편리성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영원히 그 물건들의 유용성을 알지 못하게 강제된, 여전히 건강하고 푸른 대지를 지켜주는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을 함께 느끼곤 한다.
여전히 풍선을 달라고 하는 아이들과 수업을 마친 우모자의 교실. 웃고 있지만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