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을 일이 거의 없었다. 아침은 먹지 않고 등교해서 점심과 저녁과 귀갓길 야식까지 아이들은 바깥 음식으로 식사를 때웠다.
남편도 직장일 때문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 일이 가끔이었고, 가뜩이나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것에 별 애착이 없는 내가 나 혼자 먹기 위해 저녁밥을 짓는 일은 아주 귀찮은 일이었다. 그러니 나는 종종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간편식이나 밀키트, 아니면 주변 식당을 이용해서 저녁 끼니를 때우고는 했다.
김치는 몇 번 담가보았으나 배추가 잘 절여지지 않거나 간이 맞지 않아서 먹지 못하게 되곤 해서 내가 만드는 것보다 맛있는 것을 사서 먹는 것으로 일방적인 합의를 보았다.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서는 식사시간에 가족이 함께 모일 일이 더 적어졌으므로 먹어주는 사람이 없는 나의 음식을 만드는 횟수는 더 줄어갔다.
음식 맛을 내기 위해 필요한 조미료도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버리고 난 뒤 다시 사지 않았으니 가끔 만드는 음식의 맛이 있을 턱이 없었기에 아이들도 남편도 가끔 가족이 모인 식사자리에 외식이나 배달음식, 포장 음식을 먹는데 별 이의를 달지 않았었다.
퇴직을 한 뒤부터 하루 세끼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 나는 이제까지 해 보지 않은 노력을 해야 했다.
냉동실에 멸치와 다시마 같은 재료를 채우고, 냉장실에 신선한 채소를 채우고, 굴소스 같은 조미료와 시즈닝 재료를 하나씩 채워 넣으며 가끔 집에 들르는 아이들의 입맛에도 맞는 음식을 만들어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곤 했다. 가끔.
직장출근 3주 차인 딸이 점심을 식당에서 먹는데 저녁까지 외식은 하기 싫다면서 혼자 사는 자취방에 가기 전에 집에 들러서 저녁을 먹고 갈 수 있는지 물었다. 엄마에게 밥을 해 달라는 말을 그렇게 정중하게 하는 딸이 많이 안쓰러워서 엄마한테는 '밥 해 줄 수 있어?' 하고 묻는 것이 아니라 현관문 열고 들어오면서 '엄마, 배고파!' 하는 거라고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약간의 뜨끔함이 있었다. 이제부터 가끔이 아니라 자주 저녁밥을 지어야 하는데 큰 소리만 치는 허세가 되지는 말아야 하는데.... 하는 걱정도 함께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음식 솜씨가 어떤지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어떤 일들을 나는 때를 달리 해서 소란스럽게 익혀가고 있는 중이다.
딸은 약속이 없는 저녁이면 퇴근길에 들러서 밥을 먹고 가겠다고 연락을 한다.
나는 미리 만들어둔 육수에 채소를 썰어 넣어 수제비를 만들고, 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굽고, 두부를 졸이고, 계란찜을 만들고, 로켓배송으로 받은 맛있는 김치를 썰면서 내일은 또 어떤 음식을 만들까 궁리를 한다.
인터넷으로 필요한 것들을 골라 담아 주문하면 새벽에 어김없이 배달을 해 주니 식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로 나갈 일 같은 건 없는데도 마음은 늘 분주하다.
만들고 싶은 음식 이름을 검색해서 요리 과정을 보기 쉽게 정리해 놓은 영상들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음식을 만들어 놓으면 '배고파, 배고파' 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딸이 식탁에 앉아 하루 지낸 이야기를 하면서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그렇게 서툴게 만든 내 음식을 잘 먹어주는 딸이 고맙고 신기해서 '내일은 뭐 해줄까? 뭐 먹고 싶어?'하고 물으면 딸은 또 말한다. '뭐 먹을까 고민하는 건 식당에 갈 때밖에 없어. 난 엄마가 해 주는 거 뭐든 잘 먹잖아.'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음식을 하는 식당을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먹이는 일이 보람이라고 여겼던 나에게 딸의 그 말 한마디는 또 마음 한켠을 두드려 울림을 내고야 만다.
다행이다.
더 늦지 않은 때에, 딸이 한창 필요로 할 때에 저녁밥을 지어줄 수가 있어서.
분주함이 정리된 아들이 가끔 들를 때에 얼른 밥을 지어줄 수가 있을 만큼은 이제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