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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일지 Jan 13. 2021

내/네 탓이오

배곧동 라이더 1

다사다난이라는 말로 다 채워지지 않을 2020년은 개인적으로도 기억에 남을 해였다.

십 년 남짓한 운전생활 중 주행 중 사고를 처음 경험하고, 한 해 동안 주행 중 사고 세 번!

그중 둘은 보험사에서 내 차 블랙박스 영상은 챙겨가지도 않고 판단할 상대방 100%의 사고였고,
한 번은 '차라리 입원하면 삶이 좀 편해질까?' 싶은 생각 중에 길에서 혼자 나자빠진 사고였다.


그리고 그 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미 경험치가 만렙인 선배에게 연락해 '정신과 상담' 경험담을 물었다.
혹독한 사계절 중 몇 안 되는 볕 좋은 가을날, 진단받은 병명은 '불안장애'였다.


귀에 에어팟을 끼고 살면서 오는 전화에 모두 응대해야 한다는 강박, 수시로 들어오는 메시지에 최대한 빠르게 답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회신이 늦어 죄송합니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본론에 들어가야 마음이 놓이는 을 of 을의 심정이 '불안장애'라는 정식 진단명으로 정리되었다.


"원래 이런 곳에 오시는 분들은 본인들이 피해자예요. 가해자들은 본인들이 가해하는지도 모르고 잘 살아요."

스치듯 던진 의사의 말 한마디가 14일 치의 약을 받아 나오는 길에 내내 맴돌았다.


지금껏 지 성질에 못 이겨 종종거리다 제 풀에 꺾여 넘어가는 거라고 타박해왔는데 남의 입을 빌어서라도 남 탓을 할 수 있어 기뻤달까? 이제 나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환자이니 멘탈이 흔들릴 때 "ㅇㅇ, 그럴 수 있어 나는 환자니까 그래도 돼"라고 위로할 수 있어 좋았달까?


14일에 한 번씩 병원에 들러 20분 남짓한 상담을 하고 약을 받아오는 걸 반복하는 사이 어느덧 2020년은 2021년이 되고, 내 호적 나이는 공식적으로 마흔으로 넘어왔다.


여전히 '불안장애'를 안고 사는 '불혹'의 나이,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아도 불안한 마음은 안고 사는 그런 상태로 새해를 맞았다. 여전히 아침 / 저녁 / 자기 전 약을 쥐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회사-집을 오가는 삶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이제는 "모든 게 내 탓, 내 약한 정신력 탓"이라는 생각 하진 않으려 노력한다.


"내 성질이 아니라... 네 성질 탓이다. 나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야박한 삶을 살리라" 생각한다.
남들은 나이를 먹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는데 난 더 쪼잔하고, 매서운 중년이 될 것이라 다짐해본다.



배곧동 라이더

여럿이 살아도 어차피 인생 독고다이

혼자서도 잘 사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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